공간은 각 개념과 학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심리학은 공간지각(空間知覺)에 입각해 공간표상(空間表象)을 이야기하고, 철학은 공간표상(空間表象)에서 나아가 특별한 요소에 의해서 성격이 부여되는 선험적 공간이자 필연적 표상으로 구분한다. 칸트는 "공간에서 모든 대상을 제거해, 그 속에 빈 공간을 상상할 수 있지만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표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여기에 표면에 집중된 공간에서 벗어나 실존하는 공간들을 자신만의 순수 직관으로 표현한 작가들이 있다. 아뜰리에 아키가 8월 11일~9월 30일 '이너 스페이스(Inner space)'전을 연다. 다양한 시선과 사유를 통해 자신의 잠재된 의식의 영역을 찾아내는 김도균(KDK), 김수영, 신선주 작가가 참여한다.
김도균은 건물의 내외부를 주로 촬영해 보여준다. 의도한 대상을 자신만의 절제적인 시각으로 화면 안에 구성한다. 작가는 공간의 숨겨진 기하학적 구성을 탐구하며, 사물을 담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테면 건물의 정면이나 익숙한 이미지가 아닌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 공간 자체 등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공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런 그의 작품은 공간과 건축의 관계의 연구를 통해 실재 공간을 재발견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 간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태들은 차가워 보이지만, 작가 특유의 시각과 감각으로 풍부한 색채와 다양한 질감으로 표현돼 온기있고 부드러운 표면이 드러난다. 이처럼 작가는 익숙해진 공간과 사물들의 숨겨진 이면을 찾아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자유로운 이미지와 세상을 선보인다.
김수영은 우리가 잘 아는 건물 면의 일부를 그린다. 빌딩에 반사되는 빛과 반복되는 작은 프레임들을 나열하고 구성하며, 그만의 독특한 색감을 통해 건물을 표현한다. 그리고 다양한 방면에서 빌딩을 관찰하며, 원근법을 벗어나 빌딩의 평면적인 시각을 겹쳐 구조를 고찰한다.
그의 작품은 익숙한 선과 반복적인 창들을 두 개의 화면으로 분리시키며 동시에 건물을 평면성을 더욱 부각킨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건물 구조의 프레임들의 나열은 마치 추상화처럼 느껴진다. 이런 작가의 구조에 대한 연구는 추상화의 구성연구로 이어진다. 작가는 그의 시각에 포착된 실재의 일부를 발췌해 화면으로 옮기고, 또한 각기 다른 질감을 가진 건축물의 표면을 한 화면에 남아냄으로써 실재 안에서 잠재하고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찾는다.
신선주는 장소와 풍경을 검은색의 명암으로 표현한다. 그는 자신만의 선별적인 직관에 기이한 풍경들을 절제된 빛으로 원하는 최소한의 형상을 드러내는 작업 방법을 통해 생경함과 익숙함 사이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흑백의 심상으로 표현된 현상학적 풍경을 작업함으로써 사물 그 자체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 어둠 속 공간의 깊이 주목하며, 독특한 구도를 통해 표현된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동시에 풍경의 본질적인 존재의 구조를 표현해, 존재하는 풍경과 인식하는 풍경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아뜰리에 아키 측은 "이제까지 우리가 공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표면에 집중했다면, 이번 전시는 나와 공간의 공존 관계를 조망한다. 공간이란 사람과 사물이 점하고 있는 장소이자 우리가 활동하는 영역의 장이며, 물체의 움직임이 전개되는 곳"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건축물들의 구조와 보여지는 양식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경험과 시각으로 바라 본 공간의 존재방식과 관계들을 논의하고, 공간의 순수성을 고찰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