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오 마이 갓!” ‘드립걸즈’ 취재 차 현장을 방문했을 때 나온 외마디 탄성이자 감탄사(?)였다. 공식 프레스콜에 참석한 것이었지만 꼭 행사장에 간 느낌이었다. 일단 하이라이트 시연부터 개그우먼들의 무차별 애드리브가 쏟아졌다. 너무 애드리브가 많아 오디오가 겹치는 건 다반사. 김영희가 “한 사람씩 말해!”라고 정리했을 정도였으니.
돌발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프레스콜에서 기자들은 매우 무뚝뚝하다. 박수도 잘 치지 않고, 웃지도 않은 채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며 기사 쓰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평소 관객들의 호응 속에서연기하는 배우들은 딱딱한 분위기의 프레스콜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드립걸즈’ 무대는 달랐다. 사진 촬영 중이던 한 남자 기자를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남자 배우의 엉덩이에 머리를 들이대는 민망한 포즈와 대사를 시켰다. 보통 기자들에게 호응을 요구하다가 도중 포기하거나 관두는 경우는 봤지만, 이렇게 무대 위에 올려놓고 시키는 대로 할 때까지 굴리는(?) 것은 난생 처음 봤다. 곤혹스러운 표정의 남자 기자는 결국 무대 위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님, 그간 우리 사진만 찍었죠? 이젠 기자님이 기사 사진에 나갈 차례예요.” 이 남자 기자가 내려갈 때까지도 개그우먼들의 드립이 이어졌다. 무뚝뚝한 기자에게도 이럴 정도니, 본 공연 때 관객을 얼마나 굴릴지 그 분위기를 짐작해볼 만하다.
이런 분위기는 질의응답 시간에도 이어졌다. 통상 한 개의 질문에 한 명의 배우가 차분하게 답을 하는 것이 프레스콜의 분위기. 그런데 질문 하나에 개그우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질의응답이 아닌, 마치 사석에서 만담을 하는 것과 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랄까. 김민경은 꽉 끼는 옷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도중 자리에서 서서 일어나 있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김영희는 공연을 하며 살이 빠졌다고 느닷없이 배를 공개했다. 그런데 이 분위기가 낯설긴 했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아마 ‘드립걸즈’ 시즌 1 제작발표회 때 이미 맛보기를 경험했던 덕분일지도 모른다.
‘드립걸즈’는 개그우먼들이 꾸려가는 공연이다. 2012년 8월 ‘TV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을 지상 최대의 코믹쇼’를 모토로 시작됐다. 장르는 코미디와 뮤지컬이 합쳐진 '코믹컬’이라 내세웠다. 개그우먼들이 개그를 펼치고 여기에 춤과 노래도 아우르는 형식이다. 초연 당시 안영미, 강유미, 정경미, 김경아가 참여해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다. 짧은 개그 코너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제작발표회가 열렸는데, 평소 개그의 강도도 ‘세다’고 알려진 4명이 모여 분위기가 후끈후끈했다. 공연이 흥행할 경우 비키니를 입겠다는 공약도 걸었는데, 결국 이 공약도 지켜졌다.
‘드림에어’ 콘셉트로 폭탄물 설치한 범인 추리 과정에
개그우먼들의 무차별 개그 드립 조화
시즌 2부터는 두 팀이 꾸려졌다. 초연 멤버인 안영미, 강유미, 정경미, 김경아가 한 팀이었고 이국주, 박나래, 장도연, 서은미가 한 팀이었다. 한 공연 안에 팀별로 다양한 개그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장윤희, 정주리, 맹승지, 홍윤화, 심진화, 안소미 등 수많은 개그우먼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번 시즌 5는 골드팀과 레드팀으로 나눠져 공연이 꾸려진다. 김영희, 홍현희, 허안나, 박은영이 골드팀이고 김민경, 허민, 성현주, 박소영이 레드팀이다.
‘드립걸즈’는 크게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처럼 짧은 개그 코너가 계속 이어지는 방식, 그리고 크게 하나의 이야기를 꾸려 극이 진행되면서 개그를 보여주는 방식이 있었는데 시즌 5는 후자의 방식을 택했다. 시즌 1부터 ‘드립걸즈’의 연출을 맡아 온 오미영 연출은 “코너별 콩트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처음 시작했다가 시즌 3에서 극 형태를 시도했다. 이번 시즌 5도 극이 진행된다. 큰 콘셉트는 ‘드림에어’로,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개그우먼들은 좌충우돌 승무원으로 등장한다. 트랜스젠더, 자칭 미모 담당, 청순 담당 등 캐릭터도 다양하다”고 밝혔다.
시즌 4에도 출연했던 홍현희는 “코너별 개그가 자유로운 스타일이라면, 이번 공연은 극으로 구성돼 관객의 몰입을 높이는 점이 있다. 이야기와 개그를 모두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개그우먼들 이외 또 등장인물이 있다. 로봇기장과 승무원으로 남자배우 임승태와 김용범이 등장한다. 로봇기장에 폭탄이 설치된 것이 발견되고, 내부 관계자가 공범이라는 의심이 퍼지면서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비행기 안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4명의 개그우먼들이 설정된 한 가지의 해프닝을 가지고 연기, 춤, 드립을 통해 관객들과 어울린다. 특별히 폴 댄스도 볼 수 있다.
큰 대본의 줄기가 있지만, 극을 가장 많이 채우는 것은 개그우먼들의 애드리브다. 김영희는 “매 무대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한 번은 박소영이 공연이 시작된 지 10분 만에 마지막 대사를 쳐서 공연의 막을 내릴 뻔 한 적이 있다. 개그우먼들의 애드리브로 계속해서 극을 끌고 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의 동의하에 무대 위로 끌어올려 함께 끌어가는 극이라는 점도 돌발 상황의 연속이다. 한 번은 어머니와 아들이 공연을 같이 보러 왔는데, 무대 위에 오른 아들을 더 괴롭혀 달라고 어머니가 부탁하더라. 관객들의 반응 또한 이처럼 예측할 수 없어 더 흥미진진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민경은 “무대 위에 올라오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관객이 있다. 그런데 연예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농담을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춤? 노래? 개그할 때 가장 빛을 발하는 개그우먼들
예측 불가능한 무대가 공연의 매력
춤과 노래는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그 중간에 인기 가요에 맞춰 마치 뮤지컬처럼 공연이 펼쳐지지만,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열심히는 하는 게 느껴지지만 아쉽다고 느껴질 때쯤 개그우먼들의 개그 드립이 그 허전함을 채운다. 역시 개그우먼은 개그를 할 때 가장 빛난다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드립걸즈’라는 제목으로 처음 공연이 나왔을 때 기존의 유명 공연 ‘드림걸즈’를 잘못 적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드립걸즈’는 코믹컬 드립걸즈만의 차별화를 갖추고 있다. 오미영 연출은 “첫 시작 때는 시즌 5까지 상상도 못했다. 또 고맙게도 시즌 2와 3가 이어졌지만 정말 시즌 4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개그우먼들이 관객과 함께 그 순간을 즐기고, 재치 넘치는 드립을 보여주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개그우먼들의 열정이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한 번 크게 웃어보기도 힘든 세상에 개그우먼들의 개그 드립이 관객들에게 휴식이 되고,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드립걸즈’ 무대의 개그우먼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꿈을 보여주는 드림걸즈이기도 하다. 개그우먼들의 꿈의 무대로 성장했다. 가장 고참인 성현주에게는 다시금 개그 열정을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그는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지 10년이 됐을 때 ‘드립걸즈’ 시즌 1을 봤다. 개그우먼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가 별로 없는데, ‘드립걸즈’는 그 꿈을 실현시켜주는 무대였다. 정말 개그우먼들이 멋있어 보였고, 나 또한 거기에 함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막내였던 박은영은 어느덧 개그우먼으로 성장해 무대에 올랐다. 그는 “개그우먼에 막 합격해서 막내일 때 ‘드립걸즈’ 시즌 1을 봤다. 그 무대를 보고 나도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무대에 올랐다. 꿈을 이룬 셈”이라며 “TV에는 개그우먼들의 드센 이미지가 주로 비춰진다. 이번 무대에서는 TV에서 보여주지 못한 더 다양한 개그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현희는 ‘드립걸즈’를 꿈의 무대로 꾸릴 각오를 밝혔다. 그는 “개그우먼 후배들이 바라는 무대로 ‘드립걸즈’가 성장했다. 매 공연마다 후배들이 공연장에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가 그 꿈을 지켜줄 수 있도록 더 잘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이들은 예의와 겸손은 버리고 짓궂은 개구쟁이가 된다. 어른이 돼서는 할 수 없었던 장난들을 섞은 개그 드립이 펼쳐진다. 그렇게 관객을 웃기는 이들은 동시에 개그쟁이로 빛을 발한다. 공연은 KT&G 상상아트홀에서 11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