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지낸 승효상(64)의 첫 저서이자 그의 건축 철학을 대표하는 책 ‘빈자의 미학’(사진)이 복간됐다. 1996년 첫 출간 이후 20년 만이다.
시집 크기에 100페이지 분량으로 당시 미건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건축학도들에겐 교과서로, 인문독자들에겐 숨은 고전으로 불리며 건축서로서는 드물게 1만 5000부가 팔렸다. 그러나 이후 절판돼 중고서점에서 10만 원 넘는 가격에 거래돼 왔다.
‘빈자의 미학’은 당시 승효상의 ‘자기 선언’인 동시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책이다. 1996년, 대한민국은성장과 팽창으로 내달리던 시기였지만, 그는 이 책을 통해 비움과 절제라는 시대를 앞선 화두를 선언했다.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냈다”는 승효상은, 아파트 한 채 가져보는 게 평생의 꿈인 시대에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더 많이 걷고 나눌 수밖에 없는 건축이 좋은 집이다”라고 말했다.
승효상은 그동안 여러 출판사의 복간 요청을 거절해 오다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눠온 박노해 시인의 청으로 출판사 느린걸음에서 20주년 기념 개정판을 내게 됐다고 후기에서 설명했다. 박 시인은 “그의 첫 마음이 써낸 결정적인 말”이라고 책을 소개하고 “이것은 건축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혁명 선언이다”라고 평가했다.
승효상 지음 / 1만 2000원 / 느린걸음 펴냄 /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