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칼럼 - #미술계_내_성폭력] 성과 권력의 밀당
문단의 성추문이 미술계에까지 이어졌다. 그런 문제들은 최초의 사건이 중요하지만, 사건이 담론화되는 과정도 중요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정보공유가 빠르다는 한국에서 SNS는 담론화에 불을 지폈다. 빠르게 이슈화되는 만큼 빠르게 잊히곤 하지만 말이다. 망각은 무한히 반복되는 재발의 원인이다.
그러나 미술계에 속해있는 나로서는 문학계와 약간의 온도 차를 느낀다. 문인들은 주로 말과 글을 다루는 이들이고, 덩어리가 미술보다 크다 보니 조직과 담론에 관한 한 미술보다는 앞서갔던 듯하다. 좋은 점도 앞서갔고 나쁜 점도 앞서갔다. 출판은 미술작품 전시나 판매보다는 좀 더 보편적이라는 것, 붓보다는 좀 더 단출한 펜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잠재적인 문인과 애호가 층도 더 두터울 것이다. 성추문이 문학계에서 먼저 터지지 않았으면 미술계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학에 이어 미술도…’하는 식의 항목화가 얼마나 이슈화되기 좋은 것인가. 얼마 전에는 어떤 미술대학교에서 성추문 때문에 교수가 잘리기도 했지만, 가십거리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문단의 문제 때문에 불똥이 튄 미술계 당사자들은 억울할 법도 하다. 잘못은 똑같은 잘못인데, 문학계와 미술계의 차이를 이렇게 길게 얘기하냐면, 뭔가 문제시 되는 것도 그리고 그 해법도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초의 이슈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든 미술계에도 그 공이 넘어왔다. 흐릿하게 처리되었지만 9시 뉴스에 얼굴도 나오고 말이다. 반성문에 사직서까지… 그가 그렇게도 미술계의 권력이었다면 이 사건 전에 그의 본업이 먼저 대중에게 알려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술계는 보편성의 부재로 권력 편중의 문제를 더 심하게 앓고 있다. 미술계의 구조를 성좌로 표현하여 권력이 집중된 몇몇 미술계 인사들을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로 드러나게 한 작품이 있을 정도다. 그 작품에는 몇몇 ‘별’들이 한국 미술계를 주물럭거리다시피 한 권력의 불균형 문제가 실증적 데이터에 의해 시각화되어 있다. 그 작품의 작가 뮌이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이러한 집중이 미술계 자체가 소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선 획기적인 작품 발표를 포함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보편적 이슈화가 되기 힘들다.
이런 마당에 미술계의 어떤 권력과 그 권력의 수혜를 좀 받아보고자 몰려든 이들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불어진 것은 다소간 실소를 자아낸다. 속된 말로 ‘미술계에서 잘나가 봤자다… 더구나 그런 식으로…’라는 말이 목전에서 맴돈다. 그래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은 미술인의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다. 성은 돈과 더불어 권력의 통로가 된다. 그 통로는 쌍방향이어서 권력이 있는 자는 성과 돈에 대한 접근도 쉽다. 성, 돈, 권력, 그리고 예술 분야다 보니 담론까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이러한 복마전 속에서 차근차근 노력하기보다는 바로 질러가고픈 이들을 위한 지름길에 대한 욕망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 말로 ‘썸타는’ 관계를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더티 플레이어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본업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기 힘들수록 소비적 인간관계에 치중하기 쉽다. 문화 권력의 성추문은 이러한 항시적 절망상태 속에서 드러나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예술은 젖먹던 힘까지도 총동원해야 하는 총력전이다 보니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 구분이 불확실하다. 미술인의 경제적인 취약성과 좋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준의 모호함은 지금 여기의 지배적 규칙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일상의 지배적 규칙과는 다른 해방구로서의 역할인데, 정치·경제적 지배구조가 이 작은 영역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음, 새로움, 진보 등을 내세웠던 문화 권력의 성추문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큰 사건들만큼이나 씁쓸하다.
[필자 소개] 이선영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수료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등단
2009년 제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 평론부문 대상
2005년 제1회 석남미술 젊은이론가상
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
다아트 artindes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