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도좋아 - 비치코밍 페스티벌] 순환장애의 세상 벗어난 그들이 바라던 바다는?
▲감귤 선과장을 개조해 만든 '재주도 좋아'의 공간 '반빡반짝 지구상회'.(사진=하라 스튜디오)
(제주=김연수 기자) 제주도의 한적한 농가 마을에 도착한 것은 꽤 이른 아침이었다. 주말의 비싼 비행기 편 중에서도 그나마 싼 것을 찾으려다보니 새벽부터 부랴부랴 출발했기 때문이다. 남쪽이라 겨울의 기미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노랑에서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귤들이 농가마다 가득 찬 나무에 그득그득 매달려있고, 아침부터 따가운 볕이 내리쬈다. 서울에서 들쭉날쭉한 이른 추위를 대비해 습관적으로 입던 기모 티셔츠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비치콤브: '해변를 빗다'
제주 애월읍 봉성리 농가 주택 사이에 자리 잡은 예술인들의 공간은 원래 감귤 선과장 자리였다. 복층 없이 높은 창고 형태의 건물을 나눠 유리 공방과 나무 작업 등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각종 공연과 강연,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놨다. ‘재주도 좋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의 예술 프로젝트들은 아이들의 교육부터 방문객을 위한 제작 워크숍 및 기업과의 협업 작업까지 꽤 복잡다단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열린 ‘비치코밍 페스티벌’은 이들이 해마다 여는 행사 중에서도 가장 주목도가 높고 신경 쓰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전시와 워크숍 등이 열리는 공간 내부.(사진=하라 스튜디오)
제주도에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제주바다의 맑고 푸른빛에 감탄하기 마련이다. 또한, 조금 더 머물다보면 도시에서와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 느껴진다. 그곳을 떠날 때 아쉬운 것은 육지와 다른 형태의 나무가 자라는 그 토양만이 가진 독특한 에너지와 이국적인 풍광도 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삶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로움을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재주도 좋아의 구성원들 역시 제주도의 풍광과 여유가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본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다와 바다 속을 점령해가는 쓰레기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제주에 남기로 선택했다.
그렇기에 ‘비치코밍(beachcombing)’은 이 단체의 핵심 키워드이자 활동 방법이기도 하다. 판매를 하거나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해변에서 쓸 만한 것을 줍는 사람을 뜻하는 비치코머(beachcomber)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이들이 마련한 워크숍과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비치코밍을 기반으로 한다.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한 비용을 현금 대신 해변에서 주운 유리조각 한 컵으로 받는다던지, 그 유리조각을 재활용해 만든 액세서리를 개조한 선과장 한켠에서 팔기도 한다. 그때 이 공간의 이름은 ‘반짝반짝 지구상회’가 된다.
▲플리마켓 '엿바꿔먹장'이 마당에서 진행되고 있다.(사진=김연수)
어린 주민들
‘비치코밍 페스티벌’은 1시경부터 시작됐다. 지역 예술가들이 각자 만든 공예품 등을 들고 나와 마당에서 판매하는 벼룩시장과, 공방에서 방문객들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는 워크숍이 동시에 진행됐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전시와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시작 시간이 다 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마당과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적한 마을에 있는 이 공간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싶을 정도로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었다. 마당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외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챙겨 나온 아름다운 찻잔세트에 담겨져 나왔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기 위해 수고를 감수한 것이었다. 동네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뒤섞여 주최 측에서 준비한 떡을 나눠먹는 동네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시간이 떠들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 모습에서 무엇보다 고무적으로 보였던 것은 사람들 사이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근처에서 놀러온 아이들은 공간의 운영자들과 익숙한 장난을 쳤고, 태어난 지 얼마 되니 않은 아이를 안고 온 젊은 부부들의 모습 또한 많이 목격됐다. 어느 모로 봐도 생활 편의 시설이 풍족하지 않은 이곳에서, 어느 세대보다 교육비를 많이 들여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세대의 출산율이 눈에 보일 정도라는 사실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
▲만든 달을 배에 싣고 어두운 제주 밤바다를 밝힌 허강 작가의 작업.(사진=유투브 채널'재주도 좋아' 캡쳐)
순환이 멈춘 것은 쓰레기 문제뿐?
이번 행사에서 작품을 선보인 예술가들은 지난여름 진행한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일주일 제주바다 레지던시’의 참여 작가들이다. 재주도 좋아는 전국 공모를 통해 예술가들을 모집하고 총 세 번의 초청을 한다. 첫 번째 초청에서는 비치코밍의 개념 및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워크숍을 하고 두 번째 초청에서는 예술가들이 일주일간 이 공간 근처의 레지던시에 머무르며 작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초청인 비치코밍 페스티벌에서 결과 보고전 성격의 전시를 연다.
지난 번 재주도 좋아의 CNB저널 인터뷰 당시, 운영진 중 한 사람인 조원희는 이 단체의 운영 취지에 대해 “쓰레기 문제는 듣기만 했을 때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직접 경험을 하면 그 심각성을 잘 알게 되는데, 예술의 방법을 통해 부담스럽지 않고 놀 듯이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고 전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예술가들의 작품과 말에서도 역시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을 때와 직접 봤을 때의 차이 속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비치코밍이라는 개념을 머리에 입력하고 작업 계획을 세워왔던 작가들마저 실제로 쓰레기들을 목격한 뒤 작업 계획을 변경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작가들은 “쓰레기가 허무할 정도로 많았다”고 표현했다.
▲외면 받은 쓰레기들을 몸의 움직임으로 기록한 주희, 윤상은의 퍼포먼스.(사진=유투브 채널'재주도 좋아' 캡쳐)
사진, 영상, 설치, 무용, 애니메이션, 음악, 공예품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나타난 그들 작업의 공통점은 쓰레기를 줍고 바라보며, 재현하고 만지는 과정을 통해 ‘과연 쓰레기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는 것이다. 쓰레기가 단순히 처리해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각자가 가진 역사와 생명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 예술가들에 의해 그 역사성과 특성이 발견돼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쓰레기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그 가치를 정한다는 것이다. 가치를 정하는 작업 역시 자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부임을 생각할 때, 그것은 결국 존재와 존재들끼리 순환하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
재주도 좋아는, 시각적으로 보이는 주민들의 높은 참여도만 봐도, 제주도 안에서 공공 정책에 의해 ‘문화 이주자’라고 명명된 사람들 중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람들로 평가되는 듯하다. 하지만 서울 홍대앞 다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서 예술가인 이들은 자연의 순환에 관한 문제가 단순히 쓰레기에 국한돼 있지 않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다르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자본에 의한 사회시스템 안의 삶은 불행히도 계속되고 있으며, 쓰레기는 계속 밀려올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좋고 제주가 좋아 모인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해를 넘기면 4년째, 그들은 제주 발전에 따른 부작용들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목소리를 더했다. 더 이상 스스로 ‘육지것들’이 아닌 제주 안의 이들은, 본격적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색을 내보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듯하다.
▲버려진 부표로 바다의 여러 소리가 나는 전자 악기를 제작한 다이애나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사진=유투브 채널'재주도 좋아' 캡쳐)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