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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추천작가 ⑯ 국민대 이윤서] 사유(思惟) 세계에서 사유(私有)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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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1호 김연수⁄ 2016.11.25 16:29:09

▲이윤서, '사유'. 영상설치, 철 프레임, 96 × 83 × 220cm. 2016.


그의 작업을 단순히 ‘성장기’라는 하나의 시기로 묶을 수는 없다. 자신을 스스로 찾고 정의하는 시간은 사실 평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자아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인정할만한 자아를 만나기까지의 숙성기간은 충분히 필요하다. 현재의 한국에서 이런 숙성을 위한 방황과 탐구, 모험의 시간이 허락된 젊음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그런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의무와 같은 예술대생들에게도 ‘취업률 높이기’ 정부 정책에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술을 하는 학생들은 유복한 집안 자제일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편견은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큰 집단을 구성하는 작은 집단 안의 시스템은 현실 사회의 영향 안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곳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역시 없다. 이윤서의 작업은 그 안에 속해있는 이 시대의 평범한 젊은이로서, 그리고 숙성된 자아를 기다리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의 탐구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어느 집단, 어떤 사회나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 대립이 존재한다. 그리고 속칭 ‘정치질’이라는, 즉 권력을 획득해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구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사회 구조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집단(높은 연령대라든지 직급)에서 더 교묘하게 숨겨지면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회 시스템에 편입하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이해관계의 대립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일 것이다.

시선

이윤서는 “항상 불만이나 서운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말한다. “불만이 많은 데 비해, 그것을 바로 말로 표현하는 성격은 아녜요.” 꾹꾹 눌러 담아놓은 감정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갖가지 생각의 작용으로 연결된다. “결국은 남이 정해주는 나와 그 시선에서 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남에게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모니터와 카메라를 한 공간에 설치했다. 모니터 앞을 가리고 있는 카메라를 보며 관객들은 가지각색의 반응들을 보였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쑥스러운 웃음을 띠며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모니터의 영상을 꾸준히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니터 앞을 지키고 있는 카메라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작 관객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돼 있었던 것. 모니터의 영상은 2~3일 전 가짜 카메라와 모니터 앞 관객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양한 감정이 포함된 시선들이 한꺼번에 생산되는 이 장소에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받는 사람이 된다. 시선이 이해관계나 힘의 은유라면, 어느 누구도 힘의 압박을 받는 피해자나 힘을 발휘하는 권력자가 될 수 없는 동시에 누구나 피해자나 권력자가 될 수도 있다. 이 작업은 결국 힘이나 이해로 구분된 계층으로 이뤄진 사회 구조의 맹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항상 스스로 약자라 위치를 설정했던 사람의 자구노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윤서, '시선 교착의 이동: A Complication'. 카메라, TV모니터, 철제의자, 가변설치. 2015.


호의 

이윤서의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에서 시선이 어떤 종류의 힘에 관한 은유였다면, ‘호의’는 그와 대척을 이루는 행위다. 작가는 호의 역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완벽한 호의가 존재할까요? 호의라는 것에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보답이 전제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내가 베푸는 호의가 진심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친구를 초대해놓고 서로 다른 입 특성을 배려하지 않은 그릇에 음식을 대접해 골탕을 먹인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에서 비롯한 작업은, 따뜻한 재질이 아닌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식탁이다. 식탁의 양끝 그릇과 식기구 모양으로 뚫린 상판의 구멍은 실체 없는 호의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윤서. 'Open Invitation(열린 초대)'. 철판 레이저 커팅, 스테인리스, 아크릴 레이저 커팅, 가변설치. 2015.


신뢰

이윤서는 작업을 진행하며 한동안 자신이 부정적이고 무거운 감정에 침잠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와 함께 호의 다음으로 발전되고 탐구하게 된 것은 신뢰에 관한 것이었다. 일종의 사기 같은 퍼포먼스를 위해 작가는 공기를 팔았다. ‘다정한 공기’ ‘즐거운 공기’ ‘신선한 공기’ 같은 라벨이 붙은 캔은 사실 빈 깡통이었지만 그럴듯한 포장으로 냉장고에 비치돼있었다. 누가 봐도 빈 깡통이라고 알 수 있는 캔을 1만 5000원에 판매했는데, 그래도  많이 팔았단다. 작가는 “신뢰가 없다면 살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했지만, 판매 과정에서 이뤄지는 감정적 교류에서 얻는 것이 더 많았던 작업”이라고 전했다.

▲이윤서, 'Air mood can: How about your feeling?(에어 무드 캔: 당신의 감정은 어때요?)', 혼합매체(철제 캔, 주류 냉장고, 라벨링), 가변설치. 2015.



적응 

이윤서는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탐구하다 보니 스스로 과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과거가 구질구질해도 끌고 가면서 사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더라구요. 그리고 고통스런 과거를 순화시켜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본능이라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기억은 유통기한이 있는 음식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음식은 몸에 들어가서 좋은 역할을 하거나 그냥 부패돼버리기도 한다. 

침대 위를 매트리스 대신 화분들로 가득 채운 작업 ‘Good Old Flowers(좋은 오래된 꽃들)’엔 흰 꽃으로 ‘EXPIRATION DATE(유통기한)’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작가는 “침대는 잠이 드는 공간이며 잠은 개인의 기억을 설명할 수 있는 단위가 된다”고 말했다.  

▲이윤서, 'Good Old Flowers(좋은 오래된 꽃들)'. 철제 침대, 화분, 280 x 150 x 56cm. 2016.



영상 설치 작품 ‘사유’는 전 작업으로부터 잠으로 설정되는 개인의 시간(기억, 경험) 등에 비춘 적응의 문제로 발전된다. 세 면으로 설치된 모니터에 실제 비율에 가까운 인물이 걷고 있는 영상 작업은 한 사람이 새로운 공간에서 적응하는 과정을 비유한 작업이다. “한 사람이 새로운 장소나 일에 적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66일이래요. 그 중에서 21일까지는 뇌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몸을 설득하는 기간이고요. 그 21일의 기간 동안 약 3번 이상의 (심리-육체적) 거부 반응이 일어난대요.”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선 생각의 작용 즉 사유(思惟)가 일어나고, 잠이 온다는 것은 곧 그 공간에 적응했다는 것, 즉 공간을 사유(私有)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모니터 옆에 설치된 타이머는 6분 6초로 설정돼있으며, 3번의 얼람이 울리면 한 방향으로 걷던 모니터 안의 남자는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돌거나 뒤집어져 걸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21초 후에는 잠자기 위한 복장으로 바뀐다. 

솔직한 감정의 내비침이 다양한 사고와 감정의 발견으로 발전해 온 이윤서의 작업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유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하다. “결국, 내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작가의 성격처럼 자기반성-비판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사회 혹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구조의 단면을 생생하게 반추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현재까지 적응이라는 개념으로 주제를 넓혀나간 작가의 작품 세계를 훑어보며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 혹은 세계 안에서 적응하는 기간의 끝이 있을까, 혹은 완벽한 사유(私有) 즉, 잠이 올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윤서 작가. (사진=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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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한 스토리 전개를 이끌어 가는 솜씨가 발군"

이윤서는 환경(공간)과 휴식(잠)을 인간 사유의 적응 과정으로 보고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백남준의 편집적 영상에 반하여 교묘한 스토리 전개를 이끌어 가는 솜씨가 발군이다. 관객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주위를 돌며 감상하게 하는 장치까지 고안하였다. 학부 4년을 마감하는 예비 작가들 중에서 창작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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