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이자 평론가인 저자 심상용이 현대 한국 미술에 대한 비판을 날카롭게 전개한 책이다.
심상용은 서문에서 “(이 책의) 논의는 현 상황에 대한 보고이자 질문이며 종종 질타이기도 하다. 이 논의가 독자인 당신에게 이제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표하고, 그저 묻어두고자 했던 것들로 다시 시선을 돌리도록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한국 미술은 매우 어려운 미래를 경험할 것"
저자의 ‘한국미술, 길을 잃다’라는 논의의 전제는 ‘미술 한류’라는 신조어로 포장된 문화적 강박증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신조어를 읊는 대열에는 정부 기관들이 대거 포함돼 있으며, K-POP이라는 특정 장르 음악의 산업적 성과에 고무돼 미술을 올림픽 메달이나 월드컵 순위 경쟁과 다르지 않은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마케팅 전략으로 조야한 미학 노선들을 뒤섞어 놓은 ‘새로운(?) 예술’에 조명이 비춰지고 있는 반면, 사회의 공적 기제로서 예술의 위상은 심각하게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대학, 학회, 현대 미술관의 증가 및 감상과 교육의 기회 증가, 예술 창작 지원기금 등 소통과 거래의 생태계가 구축-확장됐고, 매매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거래 규모가 커지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그런 물량적 성과로 숨겨진 진실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 진실은 현재의 한국 미술에는 다양한 종류의 ‘부재(不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감상의 부재’는 대표적인 예다. 감상과 오락-브랜드 소비의 차이점은 고려돼지 않으며, 예술 애호의 이름으로 잔뜩 낀 거품을 매도-매수하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작가들은 이 생산 공정에서 중요한 원료 요소로 재정의 되는데, 그들은 보상에 취해 자신들이 취향업의 불리한 피고용인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며, 여전히 자신들을 저항가로 인식하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장치로서 예술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두 경쟁적인 가치체계"
한국 미술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그의 논의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장치로서 예술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두 개의 경쟁적인 가치체계에 따라 진행된다. 그 첫 번째는 정치다.
검열과 선전 미술 그리고 국정 예술의 예시가 되는 사건과 작품을 열거하며 펼치는 저자의 논의는 민주주의에선 사회적 합의에 걸맞은 표현이나 소통의 외적 수준을 판정하는 역할을 맡을 필요가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미술사에선 늘 ‘사회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가 동반됐고, ‘올바른’ ‘합의’ ‘질서 유지’ 등의 용어로 서술되는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면 국가가 심판자로 나서 사법 조치를 내렸다. 정치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 터부시되며 예술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전위적이나 실험적인 예술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으며,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하면서 속 빈 수사를 남발하는 재앙적 상호성”이 그 결말로서 제시된다.
심상용은 더불어 “예술이 국가 운영장치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은 오늘날 서구 국가들에서도 결코 덜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이것은 ’외부의 힘 앞에서 (한국 예술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위상에 대해 어떻게 답해 왔는가‘라는 질문과 연관돼 있다.
그는 한국 미술의 미학적 자율성 기반이 의심될 때 그 정당성의 기반은 서구, 특히 미국의 미술 담론으로부터 왔다고 지적한다.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사회적 배경과 경제-군사에 이어 문화 헤게모니까지 손에 넣기 위해 전후 미국이 제시한 세계 미술 담론 앞에서 편승과 추종이 유일한 선택지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치체계는 경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장에선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술만 논의할 가치가 있다며, 자본을 창출하지 못하면 예술은 사회적 유지비용만 소모하는 무용지물이라고 소개한다. 더구나 거대기업과관련된 재단 산하의 미술관들만 활기를 띄고 있는 특성 때문에 한국 미술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에 훨씬 더 친화적이고 동조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데이비드 뱃스톤(David Batstone) 교수의 말을 인용해 오늘날 기업의 위기는 재정적 차원의 위기인 동시에 ‘영적 차원의 위기’라고 전한다. 기업들이 정신적 믿음을 제공하기 위해 예술 후원에 나서면서 결국 기업의 병든 영혼이 예술정신으로 이전되고 만다.
책의 후반부에는 창조경제론에 대해 살펴본다. 2015년 정부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국정기조로 선언했다. 문화예술 업종에 과학기술 등을 결합시켜 양질의 고용창출과 고용률 70%를 달성하자는 목표였다. 저자는 “이런 접근은 이미 실패가 예정돼 있다”고 지적한다. 수익성이 궁극의 가치로 선포되는 동시에 상상력과 창조성이 추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심상용은 “민주주의의 위기는 차이의 위기이고 차이가 거부되는 곳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은 질식될 수밖에 없다”며, “한국 미술은 위기해 봉착했다. 위기의 핵심에는 스스로 덧씌워온 위장막으로 인해 아둔해진 인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상함과 경제적 성공을 적절히 배합해 만든 행복과 매스미디어의 선전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심상용 지음 / 1만 8000원 / 옐로우 헌팅 독 펴냄 / 2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