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부터 25년간 위작 논란이 지속되던 고(故)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에 대해 검찰이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배용원)는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62) 씨가 사자명예훼손, 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5명에 대해 모두 혐의없음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19일 밝혔다. 다만 2015년 11월 언론 기고문 등을 통해 '미인도는 위작이 아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던 정 전 현대미술관 학예실장(59)에 대해서는 거짓 기고로 천 화백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날 검찰은 △‘미인도’ 소장 이력 조사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자문 결과 등을 종합한 결과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6월 대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미인도, 천 화백의 다른 그림 13점, 자신이 위작자라고 주장한 권춘식 씨(69)의 모작 1점을 보내 과학감정을 의뢰했다.
대검찰청 등은 희귀하고 값비싼 석채 안료를 사용하거나, 여러 차례 두꺼운 덧칠 작업을 하는 등의 기법이 천 화백의 다른 작품 제작 방식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덧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그림 밑층에 다른 밑그림이 나타나는데 이는 천 화백의 '청춘의 문'(68년작)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전문가의 안목감정에서도 진품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 씨와 피고소인 측, 미술계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된 9명의 감정위원 대부분은 석채 사용과 두터운 덧칠, 붓터치,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한 흔적 등을 토대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검찰은 그동안 논란이 일어왔던 각종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부분 결론을 내렸다.
검찰에 따르면 화가 권 씨는 검찰 조사에서도 자신이 미인도를 그렸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검찰은 권 씨가 주장하는 제작 방식과 미인도 제작 방식이 전혀 달랐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권 씨가 미인도를 직접 확인한 후에야 '미인도는 명품에 가까운 수작이며 내 위작 수준으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작품'이라고 입장을 번복했다고 덧붙였다.
또 미인도가 천 화백의 81년작 '장미와 여인'을 토대로 위조된 작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1976년 제작된 '차녀 스케치'를 토대로 '미인도', '장미의 여인' 등 2점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며 다른 판단을 내렸다. 차녀 스케치는 2016년 이전엔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토대로 2016년 이전 그려진 미인도가 위작일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이밖에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미인도' 감정 보고서에 심층적인 단층분석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점 △뤼미에르 팀이 사용한 계산식을 천 화백 다른 작품에 사용했더니 진품일 확률이 4.01% 수준으로 나왔던 점 △'장미와 여인'과 비교·분석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미인도의 유통 경로의 출발점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에 따르면 1977년 천 화백이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미인도를 비롯한 그림 2점을 선물했고 이 간부의 처가 대학 동문인 김재규 부장의 처에게 미인도를 선물했다. 이어 김 부장은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 미인도를 헌납했으며 다시 재무부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