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1호 김금영⁄ 2017.02.03 10:16:50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공연이 시작되자 웃음 폭격이 시작됐다. 그런데 끝에 다다라서는 찡한 감동과 아련함, 그리고 묵직한 책임감이 가슴을 채운다. 임시 공공극장인 광화문 블랙텐트 현장을 찾았다. ‘그와 그녀의 옷장’ 그리고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이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으며,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직접 배우로 나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지난해 알려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숙한 공연을 예상했다. 그런데 실상 펼쳐진 공연 ‘그와 그녀의 옷장’에서 어머니들은 활짝 웃으며 등장해 역동적인 동작도 마다하지 않고 선보였다. 관객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실로 오래간만에 다 같이 웃었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 있었던 단원고 희생·생존 학생의 어머니들 7명(이미경, 김명임, 김춘자, 박유신, 김순덕, 김성실, 김정해, 오순이)으로 구성됐다. 극단 걸판의 오세혁 극작가가 대본을 썼고, 김태현이 연출을 맡았다. 극단 걸판은 어머니들과 인연이 깊다. 안산이 극단 걸판 활동의 중심지였고, 극단원 중 한 명이 단원고 연극반에서 학생들과 공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반짝반짝 눈을 밝히던 아이들은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대신해 못 다한 공연을 펼쳤고, 지금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대신해 ‘그와 그녀의 옷장’ 무대에 오르고 있다. 올해엔 블랙텐트 두 번째 공연 무대로 1월 23~24일 관객과 만났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무대 한가운데 설치된 노란색 옷장엔 옷 여러 벌이 걸렸다. 비정규직이라 늘 이곳저곳 일터를 찾아 전전한 흔적이다. 하지만 그나마 찾은 경비원 자리를 두고도 둘도 없는 친구 김영광과 생존 경쟁을 벌이게 되는 강호남부터, 파업 현장에 나간 청소 노동자 엄마 순심, 그런 엄마를 시위에서 마주친 아들이자 용역 깡패 수일, 그리고 수일이 사랑하는 ‘사랑전자’ 노조위원장 순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재만 보면 무겁다. 그런데 풀어내는 방식은 유쾌하다. 순애에게 순애보를 펼치며 어머니의 목도리를 가져가는 수일의 모습과, 속터지는 아들에게 거대한 상자를 담담히 던지려는 어머니의 모습 등 웃음 포인트가 가득하다. 이건 김태현 연출이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어머니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을 때 저는 희극 작품을 하겠다는 결심을 가장 먼저 했어요. 사람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죠. 어머니들은 피눈물을 끊임없이 흘렸고요. 그래서 처음 어머니들과의 만남이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상처를 잘못 건드리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어머니들에게도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웃는 것 자체에도 죄책감을 느꼈어요. 또 사람들은 ‘세월호 희생자’라는, 그 안에서 슬퍼해야만 하는 어머니들의 프레임을 만들었죠. 하지만 슬픔 가운데에서도 정말 중요한 게 치유예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 힘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으니까요. 연극으로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드려야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처음부터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김 연출에게도 의외였다. 언젠가는 어머니들과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 2015년 10월, 어머니들과의 연극 제안을 받았는데 이것은 일종의 심리 치료 진행 과정이었다. 앞서 먼저 심리 치료를 받고 있었던 어머니들은 상담사로부터 연극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던 상태. 그래서 김 연출에게 의뢰가 갔지만, 정작 첫 만남에서 어머니들은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돼 있지는 않았다. 눈빛엔 슬픔이 가득했고 쭈뼛거리며 위축돼 있었다.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그만둔 어머니도 있었다.
“이렇게 싸워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지겹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엔 무리하지 않고 대본을 읽는 것, 입을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가볍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대본들을 위주로 읽었다. 특히 어머니들이 마음에 들어 한 게 바로 ‘그와 그녀의 옷장’이다. 어머니들 또한 노동자의 삶을 알고, 자식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을 안다. 그래서 공감을 하면서 울고 웃었다.
또 이건 다른 형태의 세월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중 사랑전자에서 장기 투쟁을 하는 순애의 대사가 있다. “지겹지 않아요? 이렇게 싸우는 우리한테 계속 와주는 게, 이렇게 싸워도 해결이 안 되는 게…. 이 조끼 300일이 넘게 입었어요. 이 조끼가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이 조끼 덕분에 이 세상이 어떤지도 알고, 사랑스런 동료들도 만나고….’ 이건 세월호 참사 때부터 현재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온 어머니들, 그리고 그런 어머니들에게 응원을 보내준 사람들의 이야기와도 맞닿는다.
“직접적으로 이 공연이 세월호 이야기를 다루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누구나 저 대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같이 떠올리죠. 저는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이슈 사이 점점 관심에서 잊히고, 때로는 여론 조작으로 세월호 가족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지는 걸 경계했어요. 그래서 단식 투쟁, 삭발 투쟁, 집회 등의 형태로도 목소리를 전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할 수 있는 공연으로 다시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달라야 한다고들 이야기해요. 이전이 성장만을 위한 탐욕의 시대였다면, 이젠 가치 중심의 공동체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 불행해’가 만연한 현 한국 사회에 ‘이래서 행복해’도 자꾸 제안하고요. 거기서 치유가 발생하죠.”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머니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쇼케이스를 해보자고 했을 땐 화들짝 놀라며 “못한다”고 자신감 없어 했다. 그런데 짧게나마 20분 쇼케이스 공연을 한 뒤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대본에 의견을 내기도 했다. 첫 대본엔 가족들이 TV를 보는 장면에서 고 백남기 농민의 이야기, 물대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탄핵 국면을 맞은 뒤엔 “탄핵 됐는데도 광화문에 사람이 줄지를 않아” “끝까지 지켜봐야 해” “재벌도 공범”이라는 대사가 어머니들의 의견으로 등장했다. 또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받은 위로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진짜 뭉클했던 순간이 있어요. 처음엔 잘 웃지 못하거나, 어색하게 미소를 짓던 어머니들이 연습 중 대본 한 구절에 다 같이 바닥을 칠 정도로 폭소한 적이 있었죠. 실로 오래간만에 본 어머니들의 웃음이었어요. 웃음이 주는 치유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이제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자신들을 격려해준 사람들이 신나게 웃을 수 있도록 공연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어요.”
블랙텐트에서의 공연 의뢰가 들어왔을 때 어머니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광장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에게는 아이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고.
“어머니들이 그러더라고요. 광화문 광장은 노숙도 하고, 집회도 하는 등 지난 3년 동안 안 밟아본 곳이 없다고. 그리고 이 광장이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아이들이 바로 보고 있는 곳이라고요. 그래서 블랙텐트에서의 공연이 더욱 뜻 깊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와 그녀의 옷장’은 아이들의 못 다한 꿈을 이루는 무대이기도 하다. 무대가 끝나고 다시 등장한 어머니들. 그 중 예진 엄마 박유신 씨는 예진이 이야기를 꺼냈다. 박 씨는 “예진이가 꿈이 뮤지컬 배우였어요. 엄마인 제가 이렇게 무대에 서며 예진이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설 때면 항상 예진이가 저를 지켜보고, 함께 무대에 서는 기분이에요. 예진이의 꿈을 더 이해하게 됐고요. 이렇게 예진이와 만나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들 사이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세월호 생존 가족 또한 아픔을 가졌다. 하지만 여론 조작과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은 세월호 가족 사이에도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생존 가족인 김순덕(애진 엄마) 씨에게 김춘자(동수 엄마) 씨가 함께 공연을 하자고 했다. 김순덕 씨는 “동수 엄마가 제게 함께 공연을 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그 손길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어요. 함께 하면서 마음이 더욱 따뜻해졌고,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어요”라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블랙리스트서 이름 발견하고 "나이스(Nice)!"
서로를 돌아보는 이 과정을 김 연출은 공연을 통해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본래 ‘그와 그녀의 옷장’ 이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책임자들의 모의재판을 극으로 만들려 했다. 그런데 모의재판에 올리려 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래서 올해엔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때 같이 마음 아파하고 도와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이런 소중한 이웃의 의미를 잊어가고 있죠. 그래서 이번엔 이웃 공동체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어요. 또 세월호 이야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코미디극으로 구성하려 하는데, 현재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습니다(웃음).”
더 빠르게 신작을 선보이고 싶었지만 그러기 힘들었던 이유는 ‘그와 그녀의 옷장’의 인기 덕분이기도 하다. 요즘 어머니들은 공연 요청으로 바쁘다고 한다. 김 연출은 “블랙텐트에서의 공연 이후에도 수원시, 충북 음성, 대구 등에서 공연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와 그녀의 옷장’은 김 연출에게도 있어서 소중한 공연이다. 김 연출 또한 지난해 공개됐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블랙리스트에서 제 이름을 발견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요? 나이스(Nice)!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보고 헛웃음이 났죠.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에 참여한 그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그룹,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그룹 등을 보니 ‘블랙리스트 진짜 쉽게 만들었네?’ 싶었어요. 저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에 참여했었어요. 안산에서 예술하는 연극인으로서 그 명단에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제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있다고 하니 어머니들은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저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이려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연출의 컬러링이 떠올랐다. 인터뷰 요청 차 전화를 걸었는데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OST인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이 노래는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싸우리라 싸우자, 자유가 기다린다’는 가사로 진정한 자유와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부르짖었다.
이 상황은 2017년 현재 한국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정농단 사태,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혼란한 시국 뉴스가 쏟아지지만, 정작 청문회에서는 ‘모르쇠’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들 위증자들은 국민이 잊을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결코 사람들은 잊지 않는다”고 김 연출은 말했다. 저 차가운 바다 깊숙이 잠긴 세월호가 떠오르기를, 모든 진실과 거짓이 드러나고 떠오르기를 기다린다고. 어머니들은 공연 뒤 노란색 패널을 들었다. “끝까지 밝혀줄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지는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