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전시- 이완 개인전] 무의미한 노동력이 예술이 될 때
▲기자 간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이완 작가.(사진=김연수)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 작가로 선정된 이완의 개인전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가 성북동 갤러리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렸다. 신사동에 있던 갤러리가 성북동에 재개관하며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올해 이완이 참여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맛보기 격인 이번 전시에서 그는 평면 작품인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와 영상 작품 ‘메이드 인’ 시리즈를 선보였다.
메이드인 시리즈는 한 끼의 아침식사를 작가 스스로 완성하기 위해 음식의 재료는 물론 그릇서부터 수저, 젓가락까지 원산지인 아시아 12개국을 방문해 직접 생산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2012년 1회 ‘리움 아트스펙트럼’ 상을 받기도 한 이 작품은 현재 10개국을 방문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전까지 2개국을 더 방문해야 완성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는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공산품들과 식자재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체험하며 원산지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를 짚고, 나아가 전 세계의 정치-국제적 상황 또한 암시한다. 특히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경제 구조가 도입되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과 가치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영상들에서 그 격변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영상은 시리즈 중 대만과 중국 편이다. 중국 편에서 작가는 1천년이 된 수도원의 마룻바닥 나무를 깎아 젓가락을 만들고, 대만 편에선 사탕수수 농장에 한 달간 머무르며 한 스푼의 설탕을 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시리즈는 평면 회화의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로젝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시간 당 8000원씩 지불하고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가장 작은 크기의 붓을 주고 성실하고 꼼꼼하게 캔버스를 채워 달라고 했다. 그는 펜이 잘 나오는지 연습 삼아 그은 흔적처럼, 카드 계산 뒤 전자화면에 남기는 싸인처럼(대체로 싸인이라고 알아볼 수 없는) 아무런 의미 없는 선을 화면 위에 남겨 놨다. 언뜻 '단색화' 작품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 작품을 그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며, 그저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 즉 노동력과 자본이 교환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영상작품 '메이드 인' 시리즈 중 '대만' 편 캡쳐 이미지. (사진= 이완 작가 홈페이지)
‘메이드 인’
이완은 사실 자신 작업의 주제는 ‘불가항력’인 것 같다고 말한다. 개인이 먹는 아침 한 끼에도 사회구조 그리고 문화적 시스템이 생각보다 꽤 깊게 반영돼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거나 인식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하나의 수입 공산품을 만나기까지 나라 간의 수입-수출, 관세들을 정하는 협정의 단계가 필요하고, 어떤 기관이 인증하는지 등 취향과 선택의 범위는 좁아진다. 다르게 생각하면 오히려 공산품이 개인을 선택하는 전복적인 현상이 일어나고도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의 취향,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회-문화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가질 여유도 없이 근처를 둘러싼 주위 상황에 대해 불가항력적으로 여기며 (자신에게) 의미 없는 노동력을 성실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이완이 ‘메이드인’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발견한 현지 노동자들의 모습이고, 그에게 노동력을 제공한 일용노동자들의 모습이자, 공고하게 짜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편리에 가려진 문화-역사-정치 등이 전부 연결돼 있는 인과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한편, 이런 작가의 시도와 관련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개념인 '아비투스(habitus)'를 참고할 수 있다. 아비투스는 문화, 특히 예술 작품의 수용 형태가 다양한 자본의 성격으로 분류된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차별화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저서 ‘구별짓기(La Distintion, 1977, 1984)’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개인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획득하는 취향의 체계로서, 의식과 언어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유리한 방식을 부과하면서 집단이 계승하는 수단들이다. (참고: 고영복, ‘사회학사전’, 2000)
▲이완,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시리즈(시계방향으로) 6,3,2,4. 캔버스에 오일, 162 x 130.5cm. 2017.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무의미한 것에 대한 성실한 태도’ 시리즈는 이런 그의 태도가 조금 더 미술적인 형식을 빌려 나타난 것이다. 무의미한 노동력에 대한 등가 교환의 증거라지만 단색화를 떠오르게 하는 시각적 효과에 사회구조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단색화 중심의 한국 미술 시장 구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드러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단색화가 유통되는 미술시장과 콜렉터들에 대한 비판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봤더니, 그에 대한 비판 의도는 없고 차라리 ‘나쁜 자본가 흉내 내기’에 가깝다고 답한다. 그는 “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정말로 작품이 팔리는 순간일 것”이라며, “그 순간에 의미 없던 ‘제품’이 어떤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비판적인 의도가 있다면, 이미지가 역사로 돼 나가는 과정과 구조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술 작품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덧씌워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도로 이해된다.
한편, 이 프로젝트에 대한 반응들은 꽤 다양하다. 평면 작품들을 시각 이미지로서만 받아들인 관객들은 막상 갤러리 안에서 그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완 작품은 어디 있나?’ ‘2인전인가?’라는 질문을 하는가 하면, 작년 논란이 됐던 ‘대작(代作)’에 관한 시점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예술과 노동력이 치환될 수 있는지’의 논란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관종같다’는 피드백도 받아봤다고 했다. 작년 초반에 논란이 됐던 작품 ‘한국여자’서부터 최근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같이 선정된 작가 코디최에 관련한 의혹까지, 논란을 중심과 측근에서 많이 겪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작품에 관한 토론들은 즐기며 듣고 받아들이는 듯했다.
2017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이완은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에서 선보일 전시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보탰다. 이대형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코디최와 함께 구성하는 한국관은 이완, 코디최, 그리고 ‘미스터K’라는 미지의 인물이 각각의 시대와 세대의 문화가 반영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미스터K는 이완이 황학동에서 5만원을 주고 산 사진더미의 주인공이다. 한 사람의 일대기가 지금으로 따지면 노년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기록돼 있었다고 했다. 그 인물을 미스터K라 칭한 것. 의상과 배경의 풍경 등 한국 근대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미스터K의 흔적은 비엔날레의 한국관에서 서구의 근대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첫 번째 세대로 대표된다. 코디최는 서구의 문화를 피부로 맞닥뜨리고 갈등이 일어난 두 번째 세대를, 이완은 모든 문화를 동등하게 바라보게 된 세 번째 세대를 대표한다. 이완은 “한국 역사의 미술적 가치에 부합하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완의 개인전은 3월 10일까지.
김연수 breezeme@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