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재밌게 잘 봤다. 재미도 있었지만 미술 기자라서 그런지 객관적으로 마냥 즐기기보다는 의도치 않게 몰입했다. 무엇보다 미술계 이야기를 다룬 계기가 궁금하다. 미술과 어떤 연관이라도 있나? 김: 재밌게 봤다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전문적으로 미술계에 있는 사람들을 아는 정도고, 미술 관련 소식은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실질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미술계 쪽에 집중했던 이유는 ‘가치 판단’을 유형의 것으로 만들어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이 응축돼 있는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백: 감독과 나는 오랜 친구 사이다. 감독의 미술에 대한 관심은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집에 묵었던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모닝커피를 마시는 습관처럼 명화집을 보고 있었다. 명화집이 깨끗한 새 책이 아니라, 손때가 많이 묻고 낡아 있었다. Q. 미술계의 이야길 다루면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제작 의도는?
김: 주인공 인숙(지젤)은 어렸을 적 미술 선생님께 받은 칭찬을 기억한다. 우리 세대는 유년 시절에 피아노, 미술 학원을 하나씩은 다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스스로 예술가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인숙의 마음에 우리의 모습에 비춰보면, 예술가든 일반직장인이든 사회 안에서의 과정을 겪으며 좌절하고 벽에 부딪히고, 꿈을 가지고 있다가도 한계에 다다른 모습과 다르지 않다. Q. 미술계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다른 사회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사회, 그리고 그 안의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인숙의 성격이 일반적이진 않다. 정작 예술가들이 보기에도 저런 성격은 소위 ‘또라이’라고 볼 것 같다. 이것은 일부러 예술가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제시한 것인가? 김: 스테레오 타입으로서 제시한 것은 맞지만, 편견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는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복선 같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관찰하거나 참고하지 않았다. Q. 개인적으로 경매 장면과 ‘아티스트 만들기’를 기획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백미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천할 장면을 꼽자면? 백: 나도 그 장면(기획 장면)이 가장 재밌었다. 시나리오의 초고가 그대로 반영됐다. 블랙 코미디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장면을 연기한 문종원 배우도 제일 좋았다고 하는 부분이다. 김: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술술 써진 부분이기도 하다. Q. 대사나 인물 설정에 있어 눈에 띄는 은유들이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재범의 눈’은 은유하는 바가 큰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 김: 재범은 자신이 진짜 작품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스스로 믿는 인물이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눈에 대한 감각이 월등하다고 믿는 것이다. 모티브가 있다면 페터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비롯됐다. 처음 한글 제목만 봤을 땐 소설에 등장하는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읽었다.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아닌 걸 알았다. 하지만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제목은 극 중 지젤의 작품 제목으로도 쓰인다. 재범의 안경은 ‘자기 합리화의 도구’ 같은 것이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안경을 벗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Q. 재범이 인숙을 설득하며 하는 얘기가 인상적이다. 예술의 본질에 대해 인숙에게 절규하듯 얘기하는데, 현실에서 갈등하며 작업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그저 흘려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김: 캐릭터가 만들어 낸 이야기다. 스스로 궤변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인숙에게 던질 수 있는 모든 말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예술의 본질’까지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몰입이 되기 전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그렇기에 영화 전반에 냉소가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한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재범이 늘어놓는 이야기는 예술의 본질이라기보다 산업 사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백: 그런 거리감이 냉소적인 유머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미술계를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이나 컬렉터가 지나가는 말처럼 하는 “요즘 누가 예술가병 걸린 사람처럼 그래?” 같은 대사가 그렇다. Q. 엔딩에 대한 논란이 조금 있을 것 같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예상치 못한 일들이 속도감 있게 터져 나오다가 또 한 번 예상을 벗어난 결말을 맞이한다. 엔딩에 관한 의도가 있나? 김: 우선 엔딩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 담고 있진 않다. 또한, 영상 작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관람이 끝난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Q. 엔딩에서 보인 것과 같은 예술가(혹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힘들기에 더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꿈같은 이야기다. 김: 꿈같은 이야기니까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관객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에 앞서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인숙의 선택 역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우주에 다녀 온 사람들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게 된다고 들었다. 다른 세상의 경험이 순수한 내면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