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5호 김금영⁄ 2017.03.03 10:07:59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중략)…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2010년 11월 발표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졸업’의 가사다. 당시 졸업식장은 기쁨의 웃음과 한숨소리가 공존했다. 학업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자랑스러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취업 자리가 없는 사회 현실에 내던져지면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청년들은 한숨부터 쉬었다. 그로부터 어언 7년이 지난 지금. 이 노래는 아직도 청년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다.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라며.
3포 세대라는 말이 2010년대에 신조어로 등장했다.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부담을 느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를 상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다음엔 5포 세대가 등장했다. 기존 포기했던 것에 내 집과 인간관계까지 추가됐다. 더 나아가서 7포 세대다. 꿈과 희망까지 포기했다. 여기서 끝이라면 나았겠지만 지금은 N포 세대라 불린다.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숫자로 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계속 포기할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1월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9.8%를 기록, 실업자 또한 101만 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3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는 청년들의 열정이 주요 문제로 꼽혔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기성세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청년세대는 조금만 힘들어도 '못 하겠다'고 엄살을 부린다"는 얘기였다.
청년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2010년 발간된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을 들고 다니는 청년들의 모습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힘든 일은 청춘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며 “이 특권을 아낌없이 누리고 도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자신의 재능을 가꾸기 위해 스펙을 쌓는 데 몰두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른바 '열정 페이'에도 몸을 던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아프면 환자지’로
그런데 2017년의 상황은 달라졌다. 지금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검색창에 치면 연관 검색어에 ‘망언’이 뜬다. SNL 코리아에서는 이 책 제목을 풍자하기도 했다. 상사가 부당해고를 당하는 인턴 직원에게 “아프니까 청춘이지”라고 하자 직원은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라며 맞받아쳤다.
베스트셀러 명단에 보이는 책들도 달라졌다. 2016년 히노 에이타로의 책이 대박을 쳤다. 책 제목은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저자는 직장인을 사축(社畜: 회사에 매인 가축)으로 표현하며 노예형, 기생충형, 주머니형, 좀비형 등으로 나눴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양경수 작가는 스타 작가가 됐다. ‘그림왕 양치기’로 활동 중인 양 작가는 앞서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그림을 그려 왔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아프니까 척추다”라며 힘든 업무에 허리를 부여잡는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고, “자네 올해 목표가 뭔가?”라고 묻자 “목표 없이 조용히 지내는 게 목표지”라며 웃는 직장인의 모습도 보인다. 또 직장 상사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말하는 도중 새파랗게 젊은 부하 직원이 “못 피했으니 즐기세요”라며 따귀를 후려치는 그림도 있다. 이 그림들을 담은 양 작가의 책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도 인기 서적 반열에 오르며 발간 5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또는 아직 제대로 들이지도 못한 청년세대들의 애환을 다루는 콘텐츠는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막 회사에 입사해 늘 불안한 눈동자를 가졌던 장그래 캐릭터(임시완 분)를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한다. 현재 연재 중인 솔뱅이 작가의 웹툰 ‘열정호구’엔 정규직을 꿈꾸며 입사했지만, 자꾸 말을 바꾸는 회사에서 노동력 착취만 당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열정을 다하면 회사에서 오히려 호구가 된다는, 헌신하다 헌신짝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콘텐츠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바로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지 말고 타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라”는 것. 좌절했던 청년세대들이 분노하게 된 데는 사회적 구조의 모순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게 된 것, 그리고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해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다”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발언이 특히 청년세대 사이에서 논란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정해진, 바뀔 수 없는 인생의 출발점, 즉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가 사회에서 보다 명확해진 것.
아주 먼 과거,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전반적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오를 수 있었고, 성공을 꿈꿔볼 수도 있던 시대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출연한 고등학생들조차 불만을 제기한다. 배경이 빵빵한 김구라의 아들 MC그리(본명 김동현)와 비교해 “나도 부모가 지원 잘 해주고, 소속사에도 넣어주면 랩을 더 잘 할 수 있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이야기했다. 또 방송 이후 국회의원 장제원의 아들로, 학비가 비싼 학교에 다니는 등 금수저로 알려진 장용준은 논란 속 방송 하차를 결정했다.
취업준비생인 김현아 씨는 “어른들이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은 과거와 다르다. 누구나 대학을 가고, 어학연수는 기본에다가 사회적 활동까지 열심히 한 이른바 고스펙 취업준비생이 흔하다. 그에 반해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어 취업문 뚫기가 정말 힘들다. 그런데 ‘열정이 없다’거나 ‘노력이 부족하다’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계속해서 맨땅에 헤딩만 하라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행복의 기준을 모순된 사회 구조 속 끼워맞춤 당한 세대
2월 27일 블랙텐트에 오른 춤 ‘개구리’(안무: 김혜연/출연: 김혜연, 김정은, 신희무, 이용민/음악: 표한진)도 N포 세대를 담았다. 공연엔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방독면을 쓰고 점프수트를 입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주위에 까만 옷을 입은 인물 두 명이 방황하듯 맴돌았다.
꼭 긴장한 심장 박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음악 소리에 이들의 춤은 점차 격렬해졌다. 까만 옷의 두 인물은 일어서려 노력하지만 자꾸만 쓰러진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을 더욱 압박하듯 방독면을 쓴 인물은 두 사람 위에 앉기도 하고, 불이 다 꺼졌을 때도 감시하는 것처럼 이들의 몸에 플래시를 연신 비춘다. 내내 긴장감이 흐르는 몸짓이 관객을 집중시켰다.
김혜연 안무가는 “예술가로서 한국 사회의 모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처음엔 3포 세대와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마주했다. 그때 당시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연이어 5포 세대, 7포 세대 이야기가 나오고 사람의 계급을 나누듯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이야기까지 만연해졌다. 도대체 이 명칭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스스로 경쟁으로 치달은 사회였다. 김 안무가는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어릴 때부터 경쟁을 배워 왔다. 1등은 칭찬받지만, 2등은 아쉽다는 소리를 들었고 항상 ‘옆집 애는 어떻다더라’ 식의 비교에 의해 자신을 형성해 왔다”며 “이 교육 과정을 오랜 시간 받다보니, 구조화된 사회의 기준에 어떻게든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행복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서 인정받는 위치가 돼버린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 어찌어찌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자신은 잊힌다.
김 안무가는 이어 “또한 좋은 집에 태어나지 못해서 뿐만이 아니라, 아예 평등한 기회조차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도 청년세대가 불행을 느끼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며 “무기력하고 억압당하지만, 억압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은 시대에서 ‘어차피 안 돼’ 하며 억압이 익숙해져 버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안무 속 방독면을 쓴 인물은 기성세대를 상징한다. 이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세대를 끌어들여 그들의 꿈과 열정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좌절시킨다. 그런데 스스로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 또한 앞선 기성세대로부터 같은 취급과 대우를 받았기 때문. 그래서 “왜 이리 열정이 없어”를 다음 세대에 되풀이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절망에서 끝내려 하지 않았다. 김 안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분노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상황을 인지하고 희망을 바라보고 싶었다. 안무 중 가장 먼저 방독면을 썼던 기성세대가 다음에 자신과 똑같이 방독면을 쓴 세대를 바라보고,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몰랐던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행복의 기준이다. 우리 행복의 기준이 지금 스스로가 아니라 모순된 사회 구조에 맞춰졌다. 그래서 계속 느끼게 되는 것이 절망과 분노”라며 “분노에 그치지 않고 이를 넘어서서 모순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가장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마음이 ‘개구리’라는 작업 이름에도 담겼다. 김 안무가는 어린 조카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봤다. 조카는 뛰려고 시도하다가 뛰지 못하는 모습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팔짝 팔짝 뛰는 개구리가 연상됐다고 한다. 김 안무가는 “일반적으로 팔짝 뛰는 모습의 상징으로 개구리를 많이들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개구리가 제대로 뛰지 못하면 어떨까? 왜 제대로 뛰지 못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누가 잡고 있는지, 틀에 가둬놓은 것인지, 다리를 다친 것인지 가지각색 이유를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한 청년세대의 모습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개구리가 연상됐다. 슬프게 ‘개굴개굴’ 울고 있다고도 생각됐다. 그래서 본연의 모습처럼 청량하게 울고, 마음껏 팔짝 뛰는 개구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안무가는 “지금 봄이 다가오고 있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개구리들이 팔짝 뛸 시기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 마음을 담아 춤을 춘다”고 말했다.
경쟁이 과열돼 차마 자신의 모습, 그리고 스스로의 권리를 생각하지 못했던 청년세대들은 변화를 겪고 있다. 청춘의 방황과 자각을 담은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프로젝트는 인기를 끌었다. 그중 노래 ‘불타오르네’에서는 “난 뭣도 없지” “나 맛이 갔지”라고 스스로의 좋지 않은 상황을 고백하면서도 “애쓰지 좀 말어, 져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하고,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라며 정체성을 자각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웃픈' 콘텐츠도 청년세대들 사이 만들어져 떠돈다. 최근 포켓몬고로 다시 포켓몬이 인기를 끌면서 피카츄의 주인인 지우의 인성 논란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24시간 동안 내내 함께 다니며 다른 포켓몬과의 대결을 펼치는 지우에게 피카츄가 “지우 씨, 근로기준법이라고 아십니까?”라고 이야기한다. 좌절해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청년세대들은 잘못된 사회 구조를 인식하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청년세대의 노력으로만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이미 노력으로 넘어서기엔 사회적 구조의 모순이 심각하다.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정원의 3%를 청년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조항 등을 담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말로만 고용 창출을 할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유력 대선 주자들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청년세대가 제대로 된 봄을 맞아 팔짝 팔짝 뛸 수 있게 진심어린 정부의 성찰과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