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사건을 짐작해볼 수 있는 보도사진, 언제 받았는지 모를 트로피 그리고 참혹한 밤의 하이에나와 여학생….
파주출판도시에 위치한 아트스페이스 휴는 회화작가 권세진, 김가연, 오세경의 3인전 '주춤거리는 현실'을 3월 8일~4월 4일 연다.
권세진, 김가연, 오세경은 모두 비슷한 시기를 겪으며 성장한 30대 초중반 작가다. 이들은 개인의 경험이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회화를 통해 재해석한다. 작가들의 추상적이거나 은유적인 이미지는 일종의 르포르타주이자 경험과 기억이 혼재한 서사를 전달한다.
참여 작가 권세진은 졸업앨범을 통해 떠오른 단편적인 학창시절을 캔버스에 옮겼다. 제도화된 교육기관에서 익혀야 했던 ‘국민체조’, 상장과 함께 부여되던 ‘트로피’ 등 그가 재해석한 이미지들은 학교라는 시스템이 부여한 질서와 권한을 상징한다. 담담한 색감이 아련하면서도 박제된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김가연은 보도사진을 매개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가는 손에 쥐어질 만큼 작은 블록에 나날이 보도된 사진을 그려 넣어, 즉시 소비되는 그날의 일들을 하나의 물질로 남긴다(‘역사화’). 작가는 자신만의 회화적 표현을 통해 사진이 지닌 강력한 사실성을 재해석하며, 사실과 회화 사이에서 보이는 역사적 사건(또는 장소)을 관객 앞으로 끌어들인다. 전시에는 이 밖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개의 미사일처럼 보이는 묘비석의 그림자가 장관인 대형 회화 작품도 선보인다.
위 두 작가가 사진을 매개로 감정과 서사를 이입한다면, 오세경은 여러 대상에 상징을 부여하고 조합한다. 오세경의 최근 연작인 ‘회색온도(2014-2017)’에는 교복 입은 여학생이 등장한다. 여학생들 주변으로 불이나 하이에나, 밤의 풍경 등이 등장하며 불안감을 일으킨다. 작가는 관찰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갈등과 배신, 동맹과 연민, 이별과 우정 등 내면적인 경험과 감정을 부여한다. 작가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는 이런 기이하고 냉소적인 풍경에 현실감을 덧입힌다.
세 작가가 재해석한 개인의 기억과 사건의 회화는 일종의 보편성을 담아낸다. 이들이 현실에 반응하는 감각을 통해 회화의 역할과 가능성을 발견해볼 수 있다.
아트스페이스 휴는 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주말에 휴관하며 입장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