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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큐레이터 9인 ⑤ 현시원] 미술 글쓰기와 큐레이팅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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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8호 윤하나⁄ 2017.03.24 16:47:38

▲'천수마트 2층'(2011) 전시 전경. (사진 제공=현시원)


 

봄이 서성이는 통인동 골목에 디귿자() 한옥의 전시 공간 시청각이 자리했다. 이번에 만나볼 기획자는 시청각의 공동디렉터인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다. 시청각은 한옥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전시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시청각 문서로 주목받는 곳이다.

 

현시원 큐레이터는 시청각 이전부터 꾸준히 특유의 시공간적 감각과 경험을 주제로 한 전시를 기획해 왔다. 한국 현대미술의 요충지라 불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선재아트센터 인근의 천수마트 2에서 발견한 작품으로 조성린 작가의 그림을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했다.(박길종 공간 구성, 황호경 작품 해설)이때 품은 공간과 위치, 그리고 작품의 전시 방식에 대한 질문을 시청각 공간에 옮기면서 그의 기획 여정이 더욱 감각적이고 넓게 확산됐다.

 

이후 라이팅밴드’(2012, 2016)를 통해 웹 공간에서 글과 자료들이 어떻게 저장·전시될 수 있는지 실험하거나, 일민미술관의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2014)’에서는 다양한 시청각 매체를 활용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독자-청자가 되는 경험을 제공했다. 그런가하면 무브 앤 스케일’(2015)에서 전시 전후에 걸친 작품의 일생을 주제로 기획전을 마련하거나 한옥이란 공간에서 경험하는 계절감을 주제로 한 디셈버전을 시청각에서 열기도 했다. 현시원 큐레이터만의 독특한 전시 기획이 글쓰기와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시청각에서 열린 '1/2'(안인용 공동기획, 2015) 전의 모습. 길종상가가 만든 평상이 보인다. (사진=정민구)



시각적 관습에 질문 던지기

 

- (앞서 언급한 기획 전시들을 보면) 현시원 큐레이터의 기획은 일종의 시각적 관습을 시간이나 공간의 차원에서 비틀고 실험한 연구처럼 보인다.

“'시각적 관습'에 관한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 계속 연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의 문제일 텐데 근래에는 작가들의 개인전을 통해 큐레이팅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많이 배웠다. 시청각 안에서 구동희, 박미나, Sasa[44], 정서영 작가 등의 개인전을 보면, 작품 자체도 그렇지만 전시를 운용하는 작가의 방법론이 각각 다 달랐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도 오래 연구할 주제다. ‘사물유람’(2014), ‘디자인 극과극’(2010) 등 내가 쓴 단행본에는 사물 이야기가 많은데 사물에 대한 연구도 다른 방식으로 하고자 한다. 공간과 전시 기획 자체에 대한 연구를 20세기 한국 시점에서 어떻게 미술적인 연구로 할 수 있을까 공부하려 한다.

 

요즘은 특히 (전시가) 세대나 시대에 대한 반응에 머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시청각을 운영하면서) 2013~2016년에 유효한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신 작가와 많이 대화한다. 요즘 미술이 쉬워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이 겨냥하는 바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난해한 것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작가라는 존재가 없으면, 한 사회가 그만큼의 생각의 깊이를 획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프레임 안에 갇힌 생각이 아니라 생각의 프레임 그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 작가들이 굉장히 재밌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시 기획이란 행위에도 프레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 아주 많은 작가와 교류하기보다 한번 함께한 작가와 꾸준히 대화하는 편인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 한 분을 꼽아본다면?

나는 적은 수의 작가와 많이 대화하고 여러 번 일하는 타입이다. 장기적으로 작가를 만나면서 작가의 시간은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시간은 봄 또는 춘분 같이 구분되는 종류도 아니고, 생산성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작가들은 매체부터 스스로 결정한다는 부분이 경이롭다. 한 분을 꼽자면 남화연 작가와 특히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2010년 기획한 '지휘부여 각성하라' 전시 전경. 전시가 열린 '공간 해밀톤', 사진에는 김영나의 작업이 보인다. 김영나, '이미지너리 커뮤니케이션(Imaginary Communication)'. 워크숍+포스터, 2009.


②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주체적으로 바라보기

 

- 현시원 씨는 기자 출신 큐레이터로 알려졌다. 전시 기획자 이전에 (기사 등) 다른 형태의 기획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의 학보사 시절부터 무언가를 취재하고 글로 완성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디자인과 시각문화를 담당했다. 2008esc 섹션에서 진행한 예쁜 교복 콘테스트는 거의 울기 직전까지 가면서 진행했던 기획이었는데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응모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 특히 걱정이었다. 다행이 많은 학교의 교복들이 응모됐는데, 정독도서관 부근을 걸어가다 보면 그 당시에는 교복만 눈에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0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와 당시 검찰 총장의 곱슬머리(파마머리)에 주목해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런 옷과 헤어스타일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걸 선택하게 하는 최초의 힘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것 같다.“

 

- 현시원 큐레이터의 활동 중 유독 글이 두드러져 보인다. 꾸준히 다양한 필자의 이야기를 모아온 시청각 문서도 인상적이다.

물론 텍스트는 내게 큰 관심사다. 특히 큐레이팅과 질문해나가는 것에 있어서 글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시청각 문서는 처음에 아이디어를 컬렉션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시청각 문서는 공동디렉터 안인용 씨가 많은 부분을 진행한다.“


▲시청각에서 열린 '1/2'(안인용 공동기획, 2015) 전의 모습. 길종상가가 만든 평상이 보인다. (사진=정민구)




- 최근 한시간 총서: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말하기 - 큐레이팅과 미술 글쓰기를 출간했다. 큐레이팅과 글쓰기에서 있어서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의 의미는 무엇인가?

큐레이터는 '상황의 구체성'에 매우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업, 작가의 아이디어가 너무 중요하고 수많은 주변의 상황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무엇인가 보게 되고 또 적게 된다. 그런데 강연을 가게 될 때는 초등학교 꼬마에게 준비물이 필요하듯이, 내게는 무엇인가 머티리얼 필요하다는 것을 몇 해 전부터 깨달았다. 그것은 복사물이기도 하고 실습 도구이기도 한데 맨 몸으로 가는 일은 재미없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손에 들지 않고'는 나의 질문이 생겨나는 배경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을 질문이 생겨나는 방향으로 한 번 보내보는 것인데, 큐레이터와 작품, 글쓰기와 글의 대상, 각주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 조금 더 설명해줄 수 있나?

개념미술의 장을 만든 큐레이터 중의 하나인 세스 시글롭(Seth Siegelaub)의 회고전을 예로 들 수 있다. 2013년 작고한 그를 2016년에 되돌아보는 전시였다. 비엔날레 총감독 등 각자의 머릿속에 전형적인 큐레이터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스 시글롭은 20대에 갤러리를 운영하다가 30, 40대에 출판사를 운영했고 나중에는 카펫 수집가가 됐다. 그런데 이 개념미술 큐레이터를 회고하는 대규모 전시에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좋아하고 집중했던 수집품들을 보는 것이었다.”


▲시청각에서 열린 'December'(안인용 공동기획, 2016) 전의 모습. (사진=정민구)


- 연구 대상이 없는 상태의 연구가 어떤 방향성을 갖는지에 대한 질문인가?

큐레이팅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큐레이터는 작품을 제대로 저장·보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직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장이 용이해진 요즘 시대에는 한 개인이 저장의 법칙 앞에서 오히려 수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도 느낀다. 이는 세상을 어떻게 편집해서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마치 핸드폰 속 18000장의 사진 중 무얼 보관할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나 요즘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시각적인 관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 말로 하는 강연, 이미지를 배치하는 기획 그리고 그 전후 사이의 글쓰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현시원 큐레이터의 생각이 궁금하다. 말과 글, 기획 간의 차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이 너무 중요하지만 제 모든 것이 글을 종착점에 두고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이 무엇인가 꿰뚫을 수는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경우도 있고, 모국어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일은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내가 읽기에도 재밌는 글을 쓰는 게 목표인데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험''경험하지 못한 것'이 말과 글, 기획에 중요하게 위치하는 것 같다. 말과 글에 일종의 주문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 말과 글은 행동에 뒤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흥미롭다. 전시 기획에 있어서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중요한 축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글이 연구 방편으로서 중요해진다.”


현시원 큐레이터는

시청각의 공동디렉터이자 독립 큐레이터다.

주요 기획 전시로는 천수마트 2’(2012.04, 국립극단 소극장), ‘라이팅밴드(2012/201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2014.06, 일민미술관), ’무브 앤 스케일’(2015.10, 시청각), ‘디셈버’ (2016.12, 시청각) 등이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30주년 전을 맞아 열린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2016)에 외부 기획자로 참여하며 '뮤지엄 루트'라는 이름으로 윤지원, 김형재 홍은주, 박길종의 작업을 제안했다. 사진은 김형재 홍은주가 디자인한 웹사이트 '라이팅밴드의 장면. writingband.net (사진=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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