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복지 칼럼] 국회 개헌특위가 해야 할 일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CNB저널 =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국회 개헌특위는 주요 농민단체에 공문을 보내 “농촌인구 감소 등 시대상황적 변화를 반영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삭제하자는 의견이 있다”며 이에 대한 농업계의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을 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주요 농민단체들은 헌법에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삭제하면 농지 투기가 일어나고 농지가격 상승에 의한 농산물 생산비 증가, 식량자급률 하락, 식량안보의 상실로 이어지는 한국농업의 존폐 위기를 맞게 될 거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개헌 하랬더니 경자유전 원칙 훼손에 나서나?
역사적으로 볼 때 경자유전의 원칙은 우리사회를 안정화 하는 버팀목이다. 6.25동란으로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을 때 공산화 되지 않고 수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해에 감행한 농지개혁으로 농민이 자기 땅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후 경제개발로 잠식되는 농지를 더 이상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121조에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농지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재산증식을 위한 먹잇감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풀려나갔다. 1996년 김영삼정부 당시 제정된 농지법은 도시 거주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였으며, 2008년 이명박정부는 절대농지의 농업 외 사용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현재 임차농가의 비율은 60%에 달하고 있으며, 임차농지 비율은 51%로 1947년 농지개혁 직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도시 인근의 농지 대부분이 이미 돈 있는 외지인의 소유가 되어 소작농을 양산하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우려하는 수준에 와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헌특위가 만들어진 지 한 달도 안 되어 경자유전의 원칙 삭제를 들먹이고 있는 것은 실로 경악할 일이다. 뿌리 깊은 공무원의 부정부패와 권력형 대도(大盜)들을 잡으려고 김영란법이 발의되었으나 정치인들은 모두 빠지고 애꿋은 교사와 언론인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만들어 물타기하고 힘없는 축산, 어업, 과수, 화훼 산업과 외식산업을 멍들게 하는 악법으로 둔갑시킨 무리들이 이번에는 개헌을 누더기로 만들고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개헌은 왜 해야 하는가? 제왕적 5년 단임 대통령제도에서 한탕주의 권력형 비리가 계속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파면되는 사태까지 몰고 온 현재의 정치제도를 고치려는 것이라면 그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직장을 찾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제집은커녕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는 수많은 영세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개헌을 빌미로 각종 이익집단들이 제 실속을 차리려 든다면 개헌은 물건너 가고 김영란법처럼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악법으로 국민을 옥죄게 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흔드는 개헌특위의 논의는 있는자들의 배를 불리고 서민을 울리는 구태의 재연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있는자 편들지 말고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하라
농업은 국민총생산(GDP)의 2% 미만의 산업으로 통계에 잡히지만 그 가치사슬을 분석하면 엄청난 생산 유발효과를 내는 산업이다. 우리나라 쌀농사는 종묘, 비료, 농약, 농기계 등 관련산업에서 3조 원의 비용을 들여 8조 원의 쌀을 생산하며, 시장에서 유통되는 5조 원의 쌀이 쌀가공업체, 외식 및 급식업체, 유통업체 등을 통해 15조 원의 가치를 창출한다. 농업이 국가 기반산업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여유있는 자들의 얄팍한 이익을 위해 헌법을 고쳐가며 훼손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고 사심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서로 양보해야 나라를 살릴 수 있다. 이 나라 백년대계를 가름할 헌법 개정의 중차대한 일에 이익집단들의 소아적 이해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개헌특위는 사명감을 가지고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해서 실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리 = 최영태 기자)
이철호(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