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 골프만사] ‘내기와 뽑기’ 판치는 문화, 이제는 좀 바꾸자
(CNB저널 =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얼마 전에 영국인 J와 라운드 때 우리가 나눈 이야기다. 내가 먼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영국은 참 안 변해. 내가 35년 전 처음 영국에 갔을 때 탔던 런던의 25번 버스가 지금도 그 노선을 그대로 다니고 있어. 심지어 30년 전 처음 갔던 골프장의 100년도 넘은 클럽하우스도 그대로 있고, 골프장의 모습도 변하지 않았어. 그때 보이던 시니어 골퍼들은 사람만 달라졌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게 꼭 어느 유명한 화가의 서정적 그림 한 장면처럼 여겨질 때가 많아. 그래서 어떤 때는 마음이 푸근한 여기가 내가 살던 곳인가 하는 착각도 들어.”
그러자 J자 답변했다. “한국은 모든 게 빨리 변화해. 열정적이야. 처음 한국에 왔던 30년 전에도 몇 개 고층 빌딩은 있었지만, 그 사이에 스카이라인도 많이 바뀌었고, 30년 전 다녀갔던 골프장들은 클럽 하우스가 새 궁전처럼 웅장하게 변했지. 코스도 18홀이 27홀로 바뀌고, 어떤 곳은 36홀로 바꿔놔서 예전의 기억을 도저히 살릴 수가 없어. 평지 골프장에도 골프카가 배치되고, 뭔가 무척 바쁘게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것 같아.”
특히 J가 이야기한 게 내기 문화다. “그 중에도 가장 따라가기 벅찬 게, 한국 골퍼들의 내기 문화야. 옛날에는 타당 1불짜리 스트로크나, 홀 별 5불짜리 스킨스(한 홀에서 가장 점수가 낮을 때 이기는 게임) 경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그 내기가 뽑기로 바뀌어서 도저히 어떻게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래서 그냥 10만 원을 내고 누가 계산해주면 주는 대로 받지. 어떤 때는 파를 쳤는데도 보기로 계산하던데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어. 하여튼 한국 사람들은 특별해. 연구 대상이야.”
금액이 과해져 ‘놀이’ 넘어서는 내기 골프
한국 골퍼들은 정말 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조금 과한 금액의 내기를 즐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급쟁이 주말 골퍼였던 나로서는 내기 금액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초보자인 나를 불러준 게 고마워서 웬만하면 준다는 핸디캡도 사양했었다. 그 대신 내기의 단위를 낮춰달라고 부탁했고, 모든 선배와 고수들이 핸디캡을 사양하거나 적게 받는 매너가 기특하다고 부탁을 들어줬다.
어차피 따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치다 보면 한두 명 동반자가 허물어져 보험회사가 되니 초보 시절에도 크게 잃지 않고 실력은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입문 10년에 골프협회 산정 핸디캡 6이 됐다. 스트로크 내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 결과였다.
그러나 2000년 전후로 내기의 구조가 많이 바뀌더니 팀별 스킨스에 ‘뽑기’란 게 나타났다. 지금은 많은 LPGA 선수가 쓰고 있고, 최고 장타자 버바 왓슨도 사용 계약을 한 컬러볼 볼빅(Volvik)이 세계 시장에서 한국 볼의 위상과 품격을 높여 놓았다. 즐겁게 동행 라운드 하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M 회장이 전국 골프장에 뿌린 몇 십만 개의 뽑기 통 때문에 골프 기록이 하향평준화가 됐다고 생각하는 골퍼들이 많아졌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80년대 말 까지는 1인 1캐디로 웬만하면 다 걸어서 라운드 했기에 함께 모여 뽑기를 할 여건이 안 됐다. 그런데 같이 버기(골프카)를 타고 다니게 된 후엔 홀 간 이동 중 자연스럽게 뽑기 통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탓에 “골프 연습하면 뭐하나? 학원 가서 뽑기 연습하는 게 낫지”라는 농담을 자주 듣는다.
30년 전 걸어서 6분 간격으로 티오프 하던 열악했던 환경에서 더 이상 골프장이 갑 행세 하지 못하는 때가 왔다고들 한다.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던 문화의 잔재로 지금도 퍼팅의 기브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세계적 골프 강국이면서도 결코 골프 문화국이 되지 못한 우리도 이제는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정치도 사회도 투명성이 높아지며 선진화돼 가는데, 우리 골프 문화도 공정한 잣대로 게임하며 서로 배려하는 등 놀이에만 너무 치우치지 말고 품격도 높아졌으면 좋겠다.
(정리 = 윤하나 기자)
김덕상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명예이사장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