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검열이 수면 위로 대두되기 전인 지난해 여름, 큐레이터 안소현은 독일 나치스가 예술을 탄압하며 연 전시 ‘퇴폐 미술전’과 이름이 같은 전시를 기획했다. 그는 이 기획전에 초대된 작품들 옆에 이를 퇴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텍스트를 배치해 역설적으로 사회가 가진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려 시도했다.
다양한 미술계 현안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길 주저하지 않는 큐레이터 안소현을 만나 그가 고민하는 예술의 정치성과 기획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원래 프랑스 미학을 공부했는데, 내가 전공한 철학가가 ‘지성보다 감성이 더 우월할 수 있다’는 굉장히 과감한 주장을 했다. 그 말에 심취해 공부했고, 점차 개념을 다루는 일보다 감각적 경험을 만드는 일이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예 감각으로 소통하는 뭔가를 다뤄보자는 생각으로 기획을 시작해봤다.
- 안소현이 생각하는 기획은 무엇인가?
전시는 하나의 매체다. 나는 기획전을 통해 내 목소리를 낸다. 그게 작가들을 잘 보여주는 것과 충돌하진 않는다. 오히려 뒤로 물러난 기획에 부정적이다. 기본적으로 큐레이터는 중립적일 수 없고, 중립적인 전시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든 간에 의견은 드러난다. 그걸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편이다. 대신 개인전 같은 경우는 작가를 위한 자리니까 구분하는 편이다.
▲‘끈질긴 후렴‘(2013)의 전시 현장. 사진 = 바라스튜디오
- 요즘 집중하는 일은?
‘포럼A(ForumA)’ 재발간을 준비 중이다. 내가 직접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포럼A는 작가 및 기획자, 비평가가 폭넓게 참여해 비평에 대한 고민을 담은 미술 비평지다. 포럼을 계속 진행하며 그걸 추린 내용을 담았다. 4월 중 발간 예정이다.
- 최근 여러 독립 잡지들이 많아지면서, 비평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 유입된 젊은 비평 필진들의 모색에 대한 일종의 제스처인가?
그 영향도 있다. 그간 이전의 자료를 찾아보는 시도가 잘 없었는데, 포럼A는 1998~2005년 발행된 잡지니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일종의 계기라고 생각했다. 2년 가까이 준비했다. 기획하고 이전 자료를 정리하는 데 1년, 실제로 포럼이 진행된 건 1년 정도다. 올해는 전시를 조금 쉬고, 잡지 발간에 힘을 쏟으려 한다.
- 이번에는 어떤 주제를 담았나?
기존 포럼A를 읽고 토론하며, 과거에 실린 내용을 재해석했다. 그리고 지난 광주비엔날레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비판도 많았던 전시고, 현재의 미술 지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여지를 두지 않은 비판을 담을 예정이다.
- 백남준아트센터에서의 전시 기획은 어땠나?
기본적으로 백남준 작가를 중심축으로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많이 다루며, 미디어 관련 연구를 많이 했다. 백남준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미디어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다루기도 하는데, 나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지금의 관심사와 연결된, 예술의 정치성에 대한 전시 ‘끈질긴 후렴’(2013)을 기획한 적이 있다. 이 전시에는 백남준을 다루지 않았다.
▲‘백남준 온 스테이지’(2014)의 전시 일부분. 사진 = 플래시큐브
- 그래도 되나?
그래도 되더라(웃음). 그런 전시가 별로 없었다. 물론 공간을 나눠 1층에선 백남준의 정치성에 관한 전시가 진행됐다. 그와 별개로 다른 층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미디어 아트를 특화시키진 않았다.
- 백남준아트센터는 늘 백남준에 대한 연구가 전제돼야 해서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은데?
한 작가를 중심으로 계속 기획해나간다는 부분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중엔 그 안에서 장점을 발견했다. 백남준은 하나의 판타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국가주의와도 연결되고, 열등의식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미국에서 주목받고 성공한 미디어아트의 아버지라는 덧씌워진 이미지가 있는데, 그 지점을 이용했다. 난 백남준 작가를 우산이라고 불렀다. 그냥 전시하기엔 굉장히 야하거나 과격한 작업들을 백남준 전시와 함께 하면 사람들이 이해를 하더라. 백남준 작업은 생각보다 굉장히 세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90년대 작업보다 퍼포먼스나 70년대 작업들의 경우 과감한 작업들이 많아서 전시를 기획할 때 든든한 우산이 돼줬다.
- 다시 기관에 들어갈 생각은 있나? 큰 전시를 꿈꾸면 기관에 있는 게 더 용이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기관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금은 기관에 들어가는 걸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미술관학을 공부했기에 기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많다.
- 기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한국 미술계가 분화되지 않은 게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신생 공간, 90년대에 만들어진 대안 공간, 상업 갤러리, 중소 미술관, 국공립 미술관 모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는 건 아닐까. 마치 모두가 젊은 피만 원하는 것 같다. 금전적인 부분이나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 오히려 고사시킬 수 있다고 우려가 되는 상황인가?
기관은 존속하는 곳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 후 그 작업들을 아카이빙하는 역할을 한다면 차라리 낫다. 너무 서둘러서 그걸 소비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책임감도 커져야 한다.
퇴폐 미술전
- 자신의 대표 전시를 하나 꼽자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퇴폐 미술전이 된 것 같다. 제일 많이 회자되기도 했고. 기관을 나와서 유일하게 기획한 전시니까.
- 피드백은 어땠나?
꽤 시끄러웠고, 찬반이 확실히 나뉜 전시였다. 기본적으로 강한 기획을 기다렸던 사람은 반가워했다. 전시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작가들을 전면에서 비판하는 전시였는데, 비판을 통해 역설을 유도한다는 점을 좋아한 분들이 많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응이 재밌었다. 어떤 이는 충분히 세지 않고, 충분히 퇴폐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너무 강하다고 비판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적절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그런 불편함을 유발하려고 만든 전시였으니까. 그런 피드백들이 도움이 됐다.
전시가 어떻게 하나의 발언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시간과 예산이 주어진다면 퇴폐 미술전보다 더 많은 대화와 준비를 거쳐서 다시 기획해보고 싶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2014)의 전시장. 사진 = 플래시큐브
- 작가들의 신작이 있었다면 좀 더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커미션이 가능했다면 작가들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을 수 있는데, 기존의 작품을 갖고 결정하는 게 나에게도 한계로 다가왔다. 오히려 기관에서 했으면 좋았을 전시라는 부분은 크게 공감한다. 기관 한복판에서 벌였어야 더 큰 효과가 났을 텐데, 풀은 이미 저항적인 곳이라(웃음) 그 효과가 반감된 게 아쉬웠다.
전시 기획과 비평의 거리
-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큐레이터이자 비평가를 병행하는 게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큐레이터의 비평이 가지는 장점은, 제작 과정과 작가의 고민을 공유할 수 있어 생생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시 기획도 하나의 비평적 행위라고 본다면, 내 생각을 공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통의 과정에서 보자면, 큐레이터는 작가들과 밀착해 상류에 위치한 사람이다. 비평은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최대한 하류에서 그것을 평가하는 입장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 분리가 쉽지 않다.
- 냉정해질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다. 분리도 사실 쉽지 않고, 믿고 지지하던 작가가 실망스러운 작업을 내놓았다면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참 어렵다. 기획자라면 다음 단계가 더 좋아지길 기다리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비평가는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어떤 부분은 더 가능성이 있는지 짚어내야 한다. 보통 작가들은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해서, 제작 과정을 다 아는 경우에는 그 결과물에 이르는 고민들을 모르지 않는 상황에서 평가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기획자는 프로모션하는 역할이 있지만 비평은 또 다른 책임이 있다.
- 그간 작가론을 많이 써왔다.
작가마다 갖고 있는 분위기와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내 글에서 문체로 드러낼 수 있을까 요즘 고민하고 있다. 전시를 만든다면 전시의 분위기가 되겠지만, 스타일을 스타일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
예술의 정치성
- 안소현 큐레이터를 이야기하면서 예술의 정치성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백남준 아트센터에 들어가기 직전 4대강에 대한 전시 ‘강 같은 평화’를 만들었다. 2010년 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이미 4대강이 승인되고 땅이 파헤쳐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전시에는 4대강을 직접 다루기보다 우회적으로 접근한 작가들이 많았다. 예술을 통해 그 구조를 건드리고 싶었다.
- 예술이 정치적 구조를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장 급격한 변화나 효과를 이뤄내진 않지만, 논의를 종료시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X 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2012)의 전시 장면. 사진 = 바라스튜디오
- 원래부터 예술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나?
정치성은 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미술관학을 전공했는데, 전시 디스플레이가 드러내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논문을 썼다. 색, 벽, 조명, 동선의 구성, 화이트큐브의 문제를 비롯해 전시를 하나의 매체라고 본다면 그 매체가 어떤 식으로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느냐를 연구했다.
- 예술의 정치성은 늘 어렵게 느끼는 주제다. 특히 요즘 같은 어수선한 시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하는 예술이 등장했고, 그 중엔 ‘더러운 잠’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으로 예술 안에서 말하는 정치적 발언들은, 급진적이거나 도발적인 시도 아니면 쉽게 묻히고 읽히지 않는다고도 느껴진다.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그런 작업들이 나오게 되는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방식을 고민하기에는 당장의 발언이 급했던 거다. 하지만 내가 관심 갖는 작업들은 그런 방향보다, 사람들이 한 번에 인지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건드렸으면 좋겠다. 유희적이거나 문제의식이 없는 작업에는 관심이 없다. 현실의 사건을 다루는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늘 가만히 정신을 내버려두지 않는 종류의 작업을 좋아하는 것 같다.
- 최근의 세태를 보면서 미술의 발언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고민한 이가 많았다. 미술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 작업들의 의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 기획자의 선택이나 보여주는 방식이 하나의 제스처로 읽히기 시작한 건 맞는 것 같다. 전달하기 쉽진 않지만. 최근에 관심 갖고 있는 부분이 있다.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작업들을 어떤 사적인 정서나 감정의 분출로 폄하하는 태도와 편견에 대해 저항하고 싶다. 그런 저항의 제스처를 글이나 전시를 통해 보여준다면 그것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작업은 사실 여성의 권리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투쟁이 아니다. 비평 언어를 아주 세밀하게 다듬어서 작업에서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을 수면위로 끌어올려주는 작업인데, 나는 그게 정치성의 일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여성 작가의 지위에 대한 문제까지 건드려보고 싶다. 조명되지 않은 부분을 조명하는 일은 어쨌든 정치적인 것 같다.
- ‘#미술계 내 성폭력’에 대항하는 여성 전시기획자들의 모임 ‘개더링 에이(Gathering A)’가 있는 걸로 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다. 물론 힘들어서 피하고 싶을 때도 있다(웃음).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액티비스트가 될 순 없으니까.
- 현장에서 과격한 발언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웃음).
나도 가끔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금은 매체와 접촉하거나, 글 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발언의 기회도 많아진 것이 독립 큐레이터의 장점이다. 눈치를 안 볼 수 있다. 그런데 기획자들이 조금 더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개더링 에이가 생긴 것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한다는 당면 과제 때문이었지만, 쉽게 모여지지 않던 큐레이터들의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더라. 모임에 가면 같은 업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좋다.
- 그런데 큐레이터들 중 여성 비율이 월등히 많다. 이번 젊은 큐레이터 시리즈를 진행하면서도 홍진훤 기획자를 제외하면 계속 여성 큐레이터들을 만났다.
실제 우리 또래의 큐레이터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관장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 서울 4대문 안의 주요 미술관에는 여성 기관장이 없더라. 김홍희 전 관장님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지 고민이 많다. 여성 기획자들의 기획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발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코디네이터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작가를 선별하고 글을 쓰는 큐레이터의 업무 외에 수많은 인력들이 기획자의 보조 인력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코디네이터를 기획자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코디네이터가 전시의 대부분을 만든다. 코디네이터는 번역, 통역, 자료 정리는 물론 레지스트라(소장품 관리자) 역할까지, 전시를 현실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좀 더 전문화된 직업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이 일에 굉장히 적합한 분이 있어도 경험을 쌓아서 전문가가 되기보다 “큐레이터가 아직 못 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작업의 내용에 관심이 있다면 기획자로, 행정에 관심이 있다면 코디네이터로 직업적인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