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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협업] 미술 전문가와 글 전문가가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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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2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4.24 09:40:01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스콧 버그(Scott Berg)가 쓴 ‘맥스 퍼킨스: 천재의 편집자(Max Perkins: Editor of Genius)’(1978)를 원작으로 한 영화 ‘지니어스(Genius)’(2016)는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자인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퍼킨스는 대문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 그리고 영화 ‘지니어스’의 주인공이기도 한 — 토머스 울프(Thomas Wolfe) 등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어떤 장르에서든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려면 수많은 노력과 고뇌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전시장의 작품을 바라보며 고난의 길을 견뎌낸 작가를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지니어스’에서 작가가 써온 글을 수정하거나 글의 일부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편집자의 모습, 편집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와 상의하는 작가의 모습은 낯설고 새롭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헌신하는 가족, 자극제가 되는 경쟁자는 익숙한데 말이다. 그러나 짧은 글인 이 ‘요즘 미술 읽기’도 원고를 마감하면 편집 및 확인의 과정을 거친다. 담당 기자는 내용의 오류는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확인한다. 또한 칼럼 제목과 단락별 작은 제목, 수록될 도판 이미지와 인쇄본 잡지의 디자인을 결정하고, 저자에게 확인시키는 것도 담당 기자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평론 쓸 땐 작가뿐 아니라 전시기획자와도 대화해야

‘지니어스’에서 편집자는 작가의 개성과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작가 못지않게 고민한다. 그렇다면 편집자의 수정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때때로 원저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아예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난도질해서 의미가 전혀 다른 글이 나오는 최악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정 과정에서 원저자와의 의견 조율은 필수적이다. 수정할 때에는 저자가 그렇게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편집에 의해 글의 의미가 정반대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와 편집자 사이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이제 미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오늘날의 미술가는 더 이상 작업실에 틀어박혀 외롭게 작업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작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니며 협업이 반드시 최선이라는 것도 아니다.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오늘날의 미술에서 정해진 한 두 개의 정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매체와 형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 간의 협업과 교류가 필요하다. 음악과 미술이 만나고, 과학과 미술이 만나는 시대이니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요즘 작가들은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특히 물리적 작품보다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이 부상한 이래 미술가들은 특정한 형식이나 매체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에 적합한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었다. 이미 1970년, 백남준은 공학자 슈야 아베(Shuya Abe)와 함께 비디오 영상의 이미지 변형이 가능한 비디오 신디사이저(Video Synthesizer)를 제작하는 데에 성공했다. ‘백-아베 비디오신디사이저(Paik-Abe Video Synthesizer)’라 이름 붙은 이 장비 덕분에 영상의 형태와 색채 변형이 자유로워졌고, 추상적 이미지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하여 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전시기획자(큐레이터)와 작가 사이의 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들은 마치 편집자 퍼킨스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가장 최상의 상태로 작품들을 선보일지 고민하고 전시장 전체를 편집한다. 전시되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기도 한다. 작품이 특정한 장소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장소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과 설치 미술, 관객이 직접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면서 작품이 완성되기에 끝없이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존재하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처럼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는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협업이 중요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작업실에서 전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시 기획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참여한다. 작품을 제작할 때부터 전시기획자와 의견을 나누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따라서 전시 평론을 쓸 경우, 평론가는 작가뿐만 아니라 전시기획자와도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글을 쓰는 동안 작가의 작업 의도와 주요 개념, 전시의 기획 의도, 전시 장소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다. 작업실을 방문해 작업 과정을 직접 확인하거나 전시 준비 중인 전시장을 찾고, 필요할 경우 작가, 큐레이터와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모든 작품과 전시는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자신이 제시한 것 이외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주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를 제대로 제시하려면 원작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북의 조각가들’(2017)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성북구립미술관

사람과 대화하고, 자료와 대화하고 

그렇다면 같은 시대를 살지 않는, 우리보다 앞선 시대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현재 전시 ‘성북의 조각가들’이 열리고 있는 성북구립미술관은 성북동이라는 지역 특수성에 맞게 한국 근대 미술가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 ‘성북의 조각가들’의 경우에도 김종영, 권진규, 송영수는 작고 작가이다. 이에 작품이 전시되는 모든 작가와 직접적인 교감이나 협업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큐레이터는 해당 작가에 대한 문서 자료를 철저히 수집하고 연구 자료들을 분석한다. 작가의 자손들, 전문 연구자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작가와 직접 대화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지니어스’에서 맥스웰 퍼킨스는 자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토머스 울프를 향해 편집자인 자신이 원작의 의미를 바꾼 것은 아닌지, 가치를 더 높인 것이 아니라 상업성과 대중성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뇌를 표현한다. 물론 그 답을 쉽게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편집자와 원저자 — 미술가와 전시기획자, 그리고 전시와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 — 모두 작품을 사랑하며,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작가와 큐레이터가 이 목표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순간을 한 번 상상해본다면 관람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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