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 라오스&베트남] 이토록 평화롭고 참혹한 베트남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5일차 (팍벵 → 우돔사이 경유 → 무앙쿠아)
오늘은 북동 방향으로 라오스 내륙 산악지방을 버스 이동하여 베트남 국경이 가까운 마을에 닿는 것을 목표로 아침부터 움직인다. 산골 버스 터미널이라고 해봤자 오두막집 매표소가 전부이지만 사람들은 명랑하고 쾌활하다. 가난하지만 거리에 거지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존감 있고 우아한 사람들이다. 가진 것은 적어도 행복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도 라오스 여행의 매력이다.
중국의 존재감 두드러지는 라오스
우돔사이(Udom Xay)행 중형버스로 팍벵을 떠난다. 라오스 중북부 산악 지대는 아름답다. 40년 전 대학 시절 찾았던 우리나라 강원도 정선군 동면 화암약수터 부근 산골 마을이 꼭 이런 모습이었다. 계곡이 깊고 물이 빨라 소수력 발전소를 세워 산골 마을에 전기를 공급한다. 방금 떠나온 팍벵에 전기가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곳곳에 중국이 투자하여 조성한 바나나 플랜테이션(plantation)도 눈에 들어온다. 버려졌던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윤을 내는 것은 좋지만 라오스가 중국의 영향 아래 점점 깊숙이 빠져드는 점은 애석하다.
▲라오스-베트남 북부 국경의 운해(雲海). 사진 = 김현주
▲라오스 내륙 산악지대 전경. 사진 = 김현주
뜻밖의 무앙쿠아
버스는 네 시간 걸려(148km) 라오스 북부 내륙 교통의 요충인 우돔사이에 도착했다. 중국 윈난 성(雲南省) 국경까지 100km, 쿤밍까지는 버스 14시간 거리인 지점이라서 중국의 존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당초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베트남 국경 부근까지 당일 연결이 어려울 것 같아서 이 도시에서 숙박할 예정이었으나 마침 오후 3시에 무앙쿠아(Muang Khua)로 가는 버스가 떠나길래 잡아탄다. 버스는 2시간 30분 동안 험하지만 아름다운 산악 도로를 110km쯤 달린다.
▲포획한 야생동물을 흠몽족 여인이 흥정하고 있다. 사진 = 김현주
흠몽(Hmong) 고산족들이 사는 작은 마을들을 수없이 지나 무앙쿠아에 도착하니 어두워진 이후다. 남우 강(Nam Ou River)이 마을 복판을 가로지르는 고즈넉한 산중 마을이다. 조그마한 마을 광장을 둘러싸고 가게와 식당, 게스트하우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더는 들어갈 곳이 없는 인도차이나의 마지막 오지이다.
6일차 (라오스 무앙쿠아 → 베트남 디엔비엔푸)
험준한 인도차이나 내륙 산악 지대
중형 버스는 무앙쿠아를 출발하자마자 높은 고개를 수없이 넘기 시작한다. 인도차이나 내륙 베트남-라오스 국경은 거의 대부분 이렇게 험준한 산악 지대이다.
험준한 산악 지대는 곧 전쟁의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호치민 트레일(Ho Chi Minh trail) 또는 ‘호치민 루트’라 불리는 이곳은 베트남 전쟁 때 월맹(越盟, 베트남독립연맹, 북베트남)이 남쪽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 베트콩에게 은밀히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데 이용되었고, 결국 북베트남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파란만장한 과거를 뒤로한 산악 지대는 이젠 잠잠할 뿐이다.
출발 두 시간 후 버스는 높은 고갯마루에 위치한 라오스-베트남 국경에 닿는다. 발아래 산 계곡마다 펼쳐진 구름 바다(운해, 雲海)가 장관이다. 버스는 두 시간을 더 달려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에 도착했다.
▲디엔비엔푸 터널. 인도차이나 1차 전쟁 때 프랑스군 사령부 벙커가 있던 곳이다. 사진 = 김현주
이토록 평화롭고 참혹한 ‘디엔비엔푸’
숙소에 여장(旅裝)을 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디엔비엔푸 승리 박물관이다. 디엔비엔푸 전투(1954년 1월~3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와 베트남전(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세계 초강대국인 프랑스와 미국을 연거푸 물리친 자랑스러운 역사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 곳이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한 명분으로 월맹군이 프랑스군을 섬멸한 사건이다. 프랑스는 월맹군을 유인한 후 맹공을 퍼부어 무력화하려고 했으나 역으로 월맹군에게 포위됐다. 미군의 막강한 공중 지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4~5천 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이 포로가 되어 패배하고 말았다. 월맹군을 얕본 대가를 혹독히 치른 것이다.
▲D1 고지에서 본 디엔비엔푸 시내 전경. 사진 = 김현주
전투 패배 후 프랑스 본국에서는 정부가 사퇴하고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도차이나 식민지에서 완전 철수했고, 제네바 협정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되었다.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승리는 전 세계적으로 식민지 독립 운동의 불을 지폈고, 특히 아프리카 프랑스 식민지의 연쇄 독립으로 이어졌다.
박물관에서 나와 전몰자 묘지에 들른 후 공공건물 몇 곳을 지나면 도시의 중심인 중앙시장 로터리에 닿는다. 인근 높은 언덕, 일명 D1 고지를 향하여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른다. 승리 기념비가 서있는 언덕 위 공원에서 도시를 조망한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산들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다행히 산중에 드넓은 분지 평야가 있어서 10만 도시를 넉넉히 품은 것이다. 이 도시, 크고 작은, 멀고 가까운 산과 언덕이 모두 참혹한 전쟁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모습이다.
(정리 = 김광현 기자)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