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나 사진 좀 찍어줘”는 이제 옛날사람의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직접 찍는 ‘셀피(selfie)’ 시대다. 어디를 가도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며 셀피를 촬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히 보인다. 또 찍은 사진을 혼자 간직하는 게 아니라 SNS로 공유하면서 자신을 알리고, 타인의 관심을 유도하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셀피를 선정하기도 하는 등 셀피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가운데 사비나미술관이 ‘#셀피selfie - 나를 찍는 사람들’전을 마련했다. 셀피로 대표되는 21세기형 현대인의 자화상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본래의 자화상이 내면을 탐색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셀피를 어떻게 연출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등 과거 자화상의 개념과는 달라진 모양새다. 즉 ‘더욱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는 모습과 ‘빠르고 쉽게’ 이 모습을 퍼뜨리는 게 더 중요해진 것. 실제로는 빠듯한 카드 값에 생활이 힘들지만 SNS에 올린 셀피에서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의 모습은 얼마든지 가공되고 포장될 수 있다. 그만큼 현대인의 다양한 자화상과 가공된 정체성이 혼재되는 세상이다.
특히 여기에는 1인 미디어 시대의 영향이 크다. 혼술(혼자 먹는 술)과 혼밥(혼자 먹는 밥)이 점점 늘어나는 사회적 분위기에 혼자 사진을 부담 없이 찍는 셀피를 즐기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사비나미술관 측은 “국내외 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셀피를 즐기는 연령과 성별은 20~30대 여성이 80% 이상이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존감(52%)과 자기 효능감을 얻기 위한 행위(33.8%)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며 “오늘날 셀피 현상은 현대인이 혼란스럽고 각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이런 현상을 탐구하는 작가 8팀으로 구성됐다. 1층 전시장은 셀피를 즐기는 공간이다. 김가람 작가는 전시장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SELSTAR(셀스타)’, 작가그룹 신남전기는 움짤(움직이는 짤방)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도록 ‘마인드 웨이브(Mind Wave)’를 설치했다. 3초 동안의 모습을 녹화한 뒤 이를 반복 상영시켜 움직이는 영상에 여러 가지 버튼을 누르면 화려한 효과들이 화면 위에 쏟아진다. 신남전기는 “이미지를 직접 왜곡시키며 즐거움을 더하는 미디어 아트”라며 “처음엔 관람객들이 민망해 하기도 하지만 민망함을 뛰어넘은 즐거움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2층 전시장엔 작가들 스스로 찍은 자화상들이 전시된다. 김인숙 x 벤야빈 라베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셀피 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고상우는 반전 효과를 통해 정체성을 뒤집는 작업을 보여준다. 고상우는 “어릴 때 미국 7개 도시를 이동하며 살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일기장을 보면 이런 혼란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다. 이를 바탕 삼아 셀피 작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화면에는 온 몸에 다양한 문장과 색을 입은 작가 본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전시장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를 통해 화면을 보면 색이 반전돼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고상우는 “이는 실제(현실)와 환상(온라인 세상)이 순식간에 전도되는 현 시대의 자화상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간엔 아말리아 울만의 작업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가상의 인물을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13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아말리아 울만은, 이 시대의 현상을 SNS 퍼포먼스로 보여주면서 온라인에서 보이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이끈다.
지하 전시장은 셀피 현상을 만든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살피는 공간이다. 업셋프레스 이부록 x 안지미는 ‘워바타(war+avatar)’ 스티커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현대인의 삶의 현장이 곧 전쟁터임을 은유하는 이 프로젝트는, 워바타스티커 인증샷을 촬영해 작가에게 회신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한경우는 시공간을 초월한 인맥을 만들어가는 온라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장에 4개의 모니터와 CCTV 카메라를 설치해 모르는 타인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강은구 또한 자신을 노출시키기도 하고, 타인을 감시하기도 하는 미디어의 속성을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셔터를 통해 보여준다.
이밖에 물나무사진관, 올리비아 무스, 아트시가 참여했다. 물나무사진관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사비나미술관 측은 “관객은 작품을 통해 웹 세상에 펼쳐진 가상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또 고립시키는 현대인의 초상을 재발견한다. 1인 미디어 시대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사비나미술관에서 8월 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