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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교양 넘치던 두 부부는 왜 ‘대학살의 신’이 됐을까

남경주·최정원·이지하·송일국이 보여주는 난장판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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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3호 김금영⁄ 2017.07.06 14:35:23

▲교양 있는 두 부부가 모였던 공간은 '대학살의 신'이 난장판을 치는 현장으로 변해간다.(사진=신시컴퍼니)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우린 문명사회의 법을 지키면서 여기 사는 거죠.” “이렇게 신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하하, 호호” 하는 웃음소리가 한 공간에 울려 퍼진다. 두 부부가 모여 있다. 이 부부는 아이들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 알렝, 그리고 그의 아내 아네뜨의 아들 페르디낭이 미셸·베로니끄의 아들 브뤼노를 때렸다. 브뤼노는 이빨 두 개가 날아갔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알렝과 아네뜨가 미셸·베로니끄의 집에 찾아온 것.


이들은 겉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알렝은 변호사이고, 아네뜨는 그런 남편을 극진히 내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셸은 자수성가한 생활용품 도매상, 그리고 베로니끄는 책 출간을 앞둔 아마추어 작가다.


처음 만나는 이들은 매우 조심스럽다. 현대 문명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을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판단’에서 찾는다. 본능에만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법을 만들고 이를 지키려 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네가 짐승이야?”라는 말을 쉽게 내뱉곤 한다.


▲아들들의 싸움으로 한자리에 모인 (왼쪽부터) 알렝(남경주 분), 아네뜨(최정원 분), 베로니끄(이지하 분), 미셸(송일국 분).(사진=신시컴퍼니)

그런데 이상하다. 소위 고학력 스펙에 좋은 집안 환경까지, 이른바 사회에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들 하는 정치판에서는 치고 박는 육탄전이 벌어지곤 한다. 교양이라고는 온데간데없다. 정치인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고성을 지르는 장면은 매스컴을 통해서도 보도되며, 풍자의 대상에 오르곤 한다.


극 중 부부의 첫 대화도 처음엔 고상하게 시작된다. 아네뜨는 “내 아들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이렇게 교양 있고, 침착하게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셸과 베로니끄 부부를 치켜세우고, 이들은 두 손을 내두른다. 그런데 침착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두 부부의 대화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바로 베로니끄의 한 마디. “그래서 페르디낭은 반성하고 있나요?”


알고 보면 이들은 겉만 번지르르 하지, 속은 속물 덩어리다. 알렝은 잘 나가는 변호사 같지만 정말 약한 자들을 위해서 서지 않고, 오로지 이익을 따라서만 행동한다. 아들이 누구를 때렸든 말든 솔직히 그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고, 연신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바쁘다. “피해자 몇 명 나왔다고 그게 대수냐”며 기업의 비리를 눈 감고 모르는 채 오히려 큰소리 치는 그다.


아네뜨는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인격 장애를 보여준다. 럭셔리하고 교양 있는 중산층 가정의 여성을 포장한 그녀의 내면은 늘 바쁘고 집에 관심이 없는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삐뚤어져 있다. 특히 가관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구토를 쏟아내는 장면. 자신에 대한 공격을 참지 못하고, 갈수록 폭주기관차처럼 변해가는 알 수 없는 모습은 얌전했다가 갑자기 ‘묻지마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현대인의 단상과도 같다.


대학살이 먼 이야기? 바로 당신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을지도…


▲알렝(왼쪽, 남경주)은 자신의 이익 이외엔 관심이 없는 속물 변호사이고, 아네뜨(최정원)는 그런 남편에 대한 울분을 속에 삭히고 있다.(사진=신시컴퍼니)

미셸은 처음에는 가장 중립을 지키는 인물 같다.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공처가이지만, 반대로 아들 문제에 관해서는 아내를 타이르는 등 알렝과 아네뜨 그리고 베로니끄 사이를 중재하려 애쓴다. 하지만 실상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상황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습성을 가진 그다. 이게 오히려 더 나쁘다. 또한 9살 딸의 햄스터를 길거리에 내다버린 일에 대해 아네뜨와 베로니끄가 몰아붙이자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베로니끄는 남의 의견을 잘 듣는 척 하지만, 실상 귀가 꽉 막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타인을 억누르고 조율하며 “당신은 틀렸다”고 외친다. “세계 평화를 위해 세상일에 관심을 갖는 건 문명인의 책임과 의무”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자 눈빛이 돌변하며 알렝과 아네뜨의 입을 가로막아 버린다.


네 인물은 굉장히 극적인 성향을 띤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상들이다.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 있고 다른 것엔 관심 없는 알렝, 이중인격자 아네뜨, 여기저기 붙는 줏대 없는 미셸, 자신의 가치관만 옳다고 생각하는 베로니끄까지. 그리고 극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교양을 갖추고 살아가던 이들의 가면을 벗겨버린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사람들 안 자리 잡은 가식, 위선, 유치, 치사, 허상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사실은 이게 바로 진짜 우리의 모습이 아니냐는 듯.


극 제목인 ‘대학살의 신’은 이 점을 가장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살은 살벌한 뜻을 품은 단어다. 나치에 의해 유럽에서 행해진 슬픈 참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교양 있는 지성인이 모인 극에 ‘대학살의 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로니끄(왼쪽, 이지하)는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다. 미셸(송일국)은 중립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줏대 없이 모든 상황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사진=신시컴퍼니)

베로니끄는 대화 도중 아프리카 다르푸르 유혈사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같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 자체는 자신의 생각 이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이 또한 유태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나치의 대학살과 다른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극은 대학살이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 우리 사회 전반을 넘어 삶 가까운 곳 어디서든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대학살의 신’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자체가 코미디라며 강한 풍자를 던진다.


약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은 배우들의 대사로 꽉 채워진다. 화려한 무대 장치도 없고, 노래도, 춤도 없다. 중간에 퇴장 시간도 없다. 그러면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데, 극은 몰입도가 대단해 1시간 30분이 금방 훅 지나간다. 부부가 쏘아붙이는 말 하나하나에 몰입도가 크고, 몸 개그도 없는데 개그 프로그램 못지않은 웃음이 터진다. 아이들 싸움이 다 큰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는 과정에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식을 벗어던진 그야말로 대학살의 현장이 시작된다.


알렝 역의 남경주는 비열하고 얄미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알렝의 아내 아네뜨를 연기하는 최정원의 폭주하는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소극장 연극 공포증이 있었다”는 미셸 역의 송일국은 제대로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고, 베테랑 배우인 이지하는 가장 이해하기 힘든 역할인 베로니끄를 관객과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끌어다 놓는다. 이 공연을 볼 때만큼은 타인의 시선 따위 상관하지 말고 제대로 가식을 벗어던질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공연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7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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