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문재인발 일자리 창출…은행은 먼 얘기 된 이유
‘핀테크’와 ‘일자리 확대’는 창과 방패인가?
▲8월 30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산경영자총협회 고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장년·경력직 미니일자리박람회에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국정 1순위로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먼 나라 얘기다. 본격적인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등 핀테크(금융+IT) 광풍 앞에서 전통적인 대면 거래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 이로 인한 은행권에서의 인력 감축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람 책상을 놔둔 채 핀테크를 할 방법은 없는 걸까.
과거 1등 신랑신부 감으로 꼽혔던 은행원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핀테크의 활성화로 사람이 설자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90%가 넘는 상황이다 보니 은행 영업점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은행 점포는 2012년 7698개에서 2016년 말 기준 7103곳으로 7.7% 줄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75개 점포가 사라져 2002년 이후 최대 규모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현금인출기(CD기),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자동화기기도 2016년 말 기준 4만8474개로 전년 대비 2641개나 없어졌다.
올해 혜성처럼 등장한 K뱅크·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지점 없이 인터넷·모바일만으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실은 은행원들의 앞날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은행들은 은행원들의 이런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핀테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들 중에서도 가장 획기적인 소비자금융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하는 지점은 변동이 없으나, 현재 126개의 소비자금융 지점수를 서비스영업점 25개, WM센터 7개, 여신영업센터 4개 등 총 36개로 통·폐합해 나갈 계획이다.
전통적 채널인 지점에 집착하기 보다는 핀테크 시대에 발맞춰 모바일·인터넷·오프라인 등 다양한 옴니채널(Omni Channel) 쪽으로 빠르게 무게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다른 은행들도 속도 차이는 있을 뿐, 비대면 채널 축소를 전제로 한 지점수 줄이기에 혈안이다.
▲핀테크 발달 등 은행권에서의 인력 감축 바람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6월 2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KB국민은행의 ‘2017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게시판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 = 이성호 기자
이러다보니 직원 감축은 ‘피할 수 없는 잔’이다.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기업은행·SC제일은행·씨티은행 등 7개 은행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은행 직원은 올 6월 말 기준 8만2533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4076명이나 감소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올해 초 실시된 희망퇴직으로 2000여명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총임직원 수는 2015년 3월말 기준 2만1203명에서 2017년 3월말에는 1만7085명으로 19.4% 줄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1만4009명에서 1만3909명으로, 우리은행은 1만5268명에서 1만5003명으로, NH농협은행 1만3823명에서 1만3491명으로 각각 축소됐다. 외환은행과 통합한 KEB하나은행은 2016년 3월말 기준 1만5214명에서 올해 3월 1만3814명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은행들이 몸집을 줄이면서 실속은 탄탄해졌다.
국내 은행들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3조원) 대비 무려 5조1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총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를 나타내는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71%로 전년 동기(0.27%) 대비 0.44%포인트 늘었다. 경영효율성 지표인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은 8.98%로 전년 동기(3.43%) 보다 5.55%포인트 올랐다.
은행원은 떠나고 은행은 살찌고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이 마무리돼 대손비용(손실에 대비한 충당금 전입액)이 8조4000억원에서 2조7000억원으로 크게 줄어든 점도 실적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순이자마진(NIM)은 1.61%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0.06%포인트 확대됐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이다 보니 예금과 대출 간의 금리차이에서 발생하는 예대마진에서 별 재미를 못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행은 실적이 좋아지고 있지만, 은행원들은 이런 열매를 나눠 갖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인력을 줄여나가고 있는 은행권에서는 딴 나라 얘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CNB에 “정부가 기계화가 핵심인 4차산업 혁명을 외치면서 일자리를 확대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며 “사람 일자리를 늘리면서 핀테크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은행들이 새정부 초기이기도 하고, 방침에 역행하기 보다는 순응하는 여력은 아직 충분히 있긴 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 대부분 올해 상반기 공개채용을 건너뛰긴 했지만, 정부 기조에 발을 맞추는 의미에서 하반기 채용규모는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성호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