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평화로운 적막이 흐르는 화면. 하지만 이 화면엔 조급함을 누르고자 노력한 작가의 치열한 자제심이 담겼다.
박여숙화랑이 이승희 작가의 개인전을 서울(9월 12일~10월 14일), 제주(9월 9일~11월 12일)에서 각각 선보인다. 작가는 ‘평면 도자회화’ 작업으로 알려졌다. 도자회화면 도자회화지, 굳이 여기에 ‘평면’을 넣은 이유는 뭘까?
작가의 화면은 2차원도, 3차원도 아니다. 흙덩이 판을 도자기 굽듯 구운 흰 바탕의 캔버스 자체부터 하나의 도자다. 그리고 이 위에 붓질을 켜켜이 쌓아 도자를 그렸다. 완성된 화면은 옆에서 보면 살짝 튀어나와 있다. 2차원의 완전 평면도 아니고, 3차원의 입체도 아닌 그 사이의 오묘한 2.5차원의 화면.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평면(2차원)+도자(3차원) 회화’라고 설명된다.
화면은 매우 평화롭다. 백자, 청화백자 등 전통 소재를 바탕으로 여백의 미까지, 화면 가득 꽉꽉 들이찬 현란한 이미지가 가득한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이 화면은 작가의 도(道, TAO)가 쌓인 결과다.
작가는 하루에 단 한 번씩 붓질을 하면서 화면에 흙물을 쌓아 올렸다. 빨리 완성하고 싶은 조바심에 흙물이 마르기 전 덧칠하면, 그 부분은 들떠버리고 결국엔 다시 긁어내야 하기 때문. 등고선처럼 윗부분은 70번, 더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60번, 50번씩 횟수를 줄이면서 입체감도 생생하게 살렸다. 과정이 이렇다보니 한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약 3개월이 걸린다.
하루에 한 번씩 붓질하며 보내는 3개월
조바심 내지 않기 위해 작가가 택한 길은…
작가도 사람인데 왜 조바심이 안 나겠는가. 긴 과정에 지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작업 중인 작품에 자신이 충동적으로 흙물을 여러 번 칠할 수 없도록 작업실을 세 곳에 얻어 이동하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처음 조급했던 마음은 점차 반복되는 붓질 속에 점차 평화로워져 갔고, 작가는 그만의 도(道)를 세우게 됐다. 그 결과 작가의 평화로운 2.5차원 공간이 완성됐다.
서울 전시에서는 대나무 설치작품 또한 볼 수 있다. 평면 도자회화로 도(道)를 쌓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가는 대나무를 통해서는 굳건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작가는 2015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알랭 드 보통 특별전시 ‘아름다움과 행복’에 참여해 대나무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대나무는 군자의 모든 덕성을 갖춘 존재로 간주된다. 곧은 성정과 유연성을 겸비했으며, 우아함과 강인함, 또는 음양의 조화도 완벽하다. 강한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바람과 함께 휘고, 바람이 그치면 다시 곧은 자세로 돌아온다”며 “이승희는 대나무의 역사적 전통과 그 상징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작가는 여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했다. 그 단단한 대나무의 형태를, 가장 깨지기 쉬운 도자기로 만든 것. 이와 관련해 알렝 드 보통은 “이승희는 가장 잘 부서지고 유연성 없는 재료로 대나무를 재현했다. 그럼으로써 자연의 유연한 나무에 대한 기억과 인간이 만든 경직된 도자기 사이에 매혹적인 긴장을 창조한다. 그리고 일련의 대립항을 생각해보도록 권유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점토 대나무 숲과 천연 대나무 숲의 대립적 특성을 넘어서 우리의 특성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 모두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우리의 발길을 이끈다”고 작가의 작업을 설명했다.
이건 가장 강할 수도 있지만, 또 순식간에 가장 약해질 수도 있는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휘지 않고 깨지지 않을 것 같지만, 산산이 부서지기도 하는 마음.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자신을 다스리며, 성숙한 마음을 쌓아가야 하는 인생의 긴 과정. 작가는 이 마음 수양의 과정을, 도(道)를 세우며 만든 평면 도자회화와,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또 동시에 깨질듯 위태로워 보이는 대나무 설치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