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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16년전 오늘은 코스피 ‘최악의 날’…그후 한국증시는?

9·11테러로 무너진 증권시장, 고난한 성장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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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3호 도기천 기자⁄ 2017.09.18 10:05:30

▲2001년 9.11테러로 최악의 순간을 맞았던 한국증시는 이후 16년간 여러 고비를 넘기며 5배나 성장했다. 9.11테러 당시 모습(왼쪽)과 2016년 12월 24일 촛불집회에서 재벌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 위키피디아, CNB저널 자료사진

(CNB저널 = 도기천 기자) 16년전 오늘(12일)은 한국증시가 사상 최악의 악몽을 경험한 날이었다. 2001년 9.11테러 직후인 9월 12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12.02%(64.97포인트)나 급락했는데,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의 하락률이다. 당시 475포인트였던 종합주가지수는 16년이 지난 현재 5배나 성장해 2400선을 내다보고 있다. 그날 이후 한국증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CNB가 끔찍했던 그날을 돌아보고, 이후의 역사적 순간들을 짚어봤다. 

9·11테러는 2001년 9월 11일에 미국에서 벌어진 항공기를 이용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동시다발 자살 테러다.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아 3000여명이 사망했다. 1941년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습격 이후 최악의 참사였다. 

테러가 시작된 시간은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한국은 주식시장이 종료된 이후인 밤 10시경이었다. 

이 여파로 다음날 한국증시는 개장하자마자 최악의 폭락 사태를 겪었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충격을 줄이려고 평소보다 3시간 늦은 정오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개장 전 동시호가부터 ‘패닉’ 장세를 보인 코스피는 전날 종가보다 9.33% 하락한 채 거래를 시작했고, 개장 2분 만에 서킷브레이커(일시 매매정지)가 발동됐지만 거래 재개 후 오히려 낙폭은 확대됐다. 단 3시간만 열린 이날 증시에서 코스피 621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으며, 하락 종목은 844개나 됐다. 

코스닥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11.59%(71.6포인트)나 추락했다. 591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고 하락 종목은 646개였다. 

이 기록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9.11테러 이후 가장 큰 폭의 지수하락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16일이다. 이날 9.44%(126.5포인트) 추락했다. 

세 번째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 확산하던 2007년 8월 16일의 6.93%(125.9포인트), 네 번째는 세계경제의 저성장 쇼크가 덮친 2011년 8월 19일의 6.22%(115.7포인트)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북핵 사태는 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북한이 역대 최대급 핵실험(6차)을 강행한 직후인 지난 4일 코스피 하락률은 1.19%(28.04포인트) 하락하는데 그쳤다. 역대 순위로 보면 이날 하락률은 1368위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후 며칠간 낙폭을 만회해 현재는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과거에도 이런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총 8차례 대형 도발을 일으켰지만 주식시장은 짧게는 3~4일, 길게는 한 달 이내에 낙폭을 회복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14차례 미사일 도발을 강행했지만 증시는 소폭하락 하는데 그쳤고, 일주일 안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북핵 보다 무서운 ‘월가’

9.11테러 당시 475포인트였던 코스피는 북한의 위협과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봤다. 현재 종합주가지수는 당시보다 5배나 오른 2359.08포인트(11일 종가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성장을 이끈 일등공신은 수출기업들이었다. 

▲2001년 9월 12일 당시 증시 상황. 사진 = 연합뉴스

한국거래소가 시가총액(시총) 순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5년의 시총 규모 1위는 한국전력으로 18조9942억원에 달했다. 대표적인 수출기업인 삼성전자는 한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7조6660억원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중에 뭉칫돈이 돌기 시작했다. 주요 수출국으로 떠오른 중국경제의 급성장세가 지속됐고, 부동산·건설경기가 활황을 이어갔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들의 ‘바이(BUY) 코리아’ 흐름이 지수 상승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시총 1위에 올라섰으며 규모는 97조703억원에 달했다. 당시 2위였던 국민은행(25조7330억원)보다 3배 이상 컸으며, 한전은 3위로 밀려났다. 현대차, 포스코 등 수출기업들이 시총 5위 내에 진입했으며,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주들도 시총 10위 언저리까지 올라섰다. 

1994년 1100선을 돌파한 이래 11년간 지지부진 하던 코스피도 2005년 마침내 1200선을 돌파했다. 특히 2007년은 국내 증시의 최전성기였다. 4월에 1500선을 터치한 뒤 7월에는 2000선을 넘었다.  

하지만 미국 월가(Wall Street)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는 전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다급해진 미국의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물 회수에 들어갔고 과도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은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이 여파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한국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2008년 10월에는 1000선마저 무너졌다. 

재벌개혁, 주가에 긍정적

이후 코스피 지수는 다시 수출기업들에 기대어 회복세를 보였지만 속도는 느렸다. 2011년에 이르러서야 2100선 언저리에 안착했지만 글로벌 경기악화가 계속되면서 좀처럼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IT 대형주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상 최고 구간까지 올라섰다. 2000선 안팎에서 공방을 벌이던 주가는 올들어 급상승 하다 지난 7월 24일 역대최고치인 2451.53을 터치한 뒤 한반도 리스크로 다소 밀려난 상태다.  

증시전문가들은 글로벌경기가 완연한 회복세에 진입한데다 IT업종의 호황이 계속되고 있어, 코스피가 북핵과 중국의 사드 보복 등 지정학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상반기 수출 증가율은 작년에 비해 각각 14.7%, 16.8%나 늘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42.4%나 증가했고 석유제품이 41.8%, 자동차업종이 21%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에 상장된 제조·건설·서비스업체 553곳(금융업 제외)의 올해 상반기 평균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9.9%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올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 등 IT대형주들의 주가가 20% 넘게 급등했으며, 건설·유통·금융 등 대부분 업종이 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34년 역사의 한국증시가 흔들림 없이 가려면 체질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 정경유착이었다는 점에서다. 이로 인해 재벌개혁·주주권 확대 등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재벌사연구소 이한구 소장(수원대 명예교수)은 CNB에 “주가는 기본적으로 경제상황의 영향을 받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박스권에 갇혀 있던 코스피가 재벌개혁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크게 오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편법증여, 일감몰아주기, 문어발식 확장 등에 대한 규제책이 일시적으로 악재가 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이 건강해지게 된다는 점에서 증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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