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한국타이어 등 자동차 관련 정비소들의 업주 모임(연합회)은 가맹점으로 인정돼 본사와 협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애로사항을 타결해 나간다. 그러나 같은 자동차 정비 업주 모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지엠(한국GM) 산하의 300여 정비소 업주들은 연합회를 구성했지만 한국지엠 본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공정위)도 이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아직까지 취하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지엠 전국정비사업자연합회는 국회 등에 다각도로 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번지면서 정비 사업자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가오는 정기국감에 한국지엠의 사장이 출석해 증언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정비 사업자들의 가슴타는 사연을 들어봤다.
현대-기아차는 한번 계약하면 10년 vs 한국GM은 매년 새로 계약
계약직 근로자는 근로계약일로부터 1년이 되면 불안에 휩싸인다. "회사가 재계약을 해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계약직 근로자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외국계 자동차 회사 간판을 달고 자기 명의의 정비소를 운영하는 정비 사업자들이다.
이들은 매년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1년 단위로 회사와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명의로 된 사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재계약 거절에 따라 정비소에 쏟아 부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 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떠안고 있다.
한국지엠 정비 사업자 A씨는 25년 동안 정비소를 운영해온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는 늘 재계약 거절의 불안 속에 살아 왔다. 매년 3월이면 계약을 갱신하는데 재계약이 거절되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비 사업자들은 특히 한국지엠과 정비 사업자 간 계약서가 부실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한국지엠 정비 사업자는 5장짜리 계약서에 매년 서명하는 반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정비 사업자는 50장짜리 계약서 서명 한 번으로 사업 기간 10년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한국지엠에 통일된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전국 400곳이 넘는 한국지엠 정비소는 서로 다른 5개의 단체로 각각 나뉘어져 있었고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회사도 5개 단체의 대표성을 문제 삼으며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전국 5개 정비사업자협의회 통합 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2016년 1월 한국지엠 전국정비사업자연합회(이하 연합회)가 공식 출범했다. 한국지엠 정비소 417개 중 직영점을 제외한 300여 사업장이 연합회에 가입해 있다.
연합회는 대표성을 갖췄다고 생각했고 한국지엠에 지금까지 5차례 협상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협상에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고 연합회는 설명했다.
가맹사업으로 인정 안 되는 한국지엠 정비소
한국지엠 측이 연합회와의 협상을 거부한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지엠 정비소가 가맹사업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회사가 협상에 응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가맹점 사업자의 단체 구성과 거래 조건을 규정하는 가맹사업법 제14조의2 3항에 따르면 '가맹본부는 성실하게 협의에 응하여야' 한다. 그러나 전국에서 한국지엠, 즉 쉐보레 간판을 달고 사업하는 420여 개 정비소는 가맹사업으로 인정받지 못해 회사와의 협의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정비 사업이 가맹사업으로 등록돼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자동차의 블루핸즈(BLU hands)와 기아자동차의 오토큐(AUTO Q)는 가맹사업에 등록돼 있다.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한국타이어의 티스테이션(T’station), 에스케이네트웍스의 스피드메이트(Speedmate), 지에스엠비즈의 오토오아시스(autoOasis) 등은 가맹 사업으로 등록 돼 있다.
A씨는 “자동차 정비소가 하는 일은 완전히 똑같은데 현대, 기아 정비소는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고 한국지엠은 왜 등록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합회는 한국지엠 정비소가 가맹사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데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2015년 11월 연합회가 공정위에 제출한 유권해석 요청에 4개월 뒤 공정위는 “결론을 내기 어렵다. 당사자의 신고가 필요하니 추후 조사를 위해 한국지엠을 신고하라”고만 답변했다.
이에 연합회는 공정위 권고대로 2016년 4월 한국지엠을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그러나 6개월 뒤인 2016년 10월 공정위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한국지엠을 가맹사업법 적용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비 사업자가 가맹비를 직접 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맹사업 전문가의 해석은 다르다. 서홍진 가맹거래사는 “가맹점에 '가맹비' 명목의 금원 청구가 없더라도 가맹본사가 원•부재료 등을 가맹점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유통 마진이 생긴다면 이 부분도 실질적인 '가맹금'이므로 가맹사업법 적용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정비소 사업자들에게 공정위의 문턱은 너무나 높게 느껴졌고 연합회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A씨는 “우리 얘기는 듣지도 않고 사건이 종료됐다. 우리가 공정위를 방문하려고 하자 공정위 쪽에선 ‘바쁘다, 올 필요 없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연합회 관계자 B씨도 “우리는 조정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지엠은 조정에 응하지 않았다. 서울사무소는 그 결과를 받아 분쟁을 끝내버렸다”며 불만을 토로냈다.
반면 공정위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공정위 서울사무소 경쟁과 관계자는 “대질 조사도 다 하고 진술도 다 했다. 관련 기록들이 남아 있다. 사건이 접수되면 한국공정거래조정원으로 넘어간다. 그 기간에는 올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며 “원하는 대로 판단을 안 해줬다는 것에 대한 불만 표시밖에 안 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재계약 거부로 갑자기 늘어난 사업장 폐쇄들
연합회와 한국지엠이 정비소의 가맹사업 적용 여부를 놓고 씨름하는 사이, 재계약 거부로 폐점하게 된 정비소가 생겼다. 올해 1월 한국지엠은 5곳의 정비소에게 계약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한국지엠은 해당 사업장이 계약 해지 사유인 2년간 3회 이상 경고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고장을 받을 경우 재계약 거절의 위험은 물론 보증 공임(무상 수리 기간 차량을 수리했을 때 자동차 회사가 정비 사업자에게 주는 급여)이 낮아져 소비자가 받는 정비 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장 누적과 관련해 연합회와 한국지엠은 서로 다른 입장이다. 정비소 사업자는 전산으로 한국지엠에 비용을 청구하도록 돼 있다. 한국지엠 측은 "경고장 발부는 정비소 사업자의 허위청구"라는 입장인 반면, 정비소 사업자 측은 "오청구, 즉 잘못 청구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재계약이 거절된 정비소 사업주 C씨의 경우 한국지엠은 "C씨가 3년 동안 65건의 허위 청구를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연합회의 A씨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잘못 청구한 65건 금액이 40만 원밖에 안 된다. 그 사람 매출이 3년 간 10억이 넘는데 40만 원 이익 보자고 그런 일을 했겠느냐”며 “클릭 하나 잘못하면 청구가 되어 버리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B씨도 의견을 보탰다. “1건 당 6000~7000원 실수는 있을 수 있지 않느냐. 억 단위 매출 사업자가 1년에 2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탐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이런 사례가 전국 사업장에 얼마나 많겠느냐. 직장으로 치면 해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재계약 거절 조치를 두고 한국지엠은 회사 내규에 의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좀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자 기자는 한국지엠 홍보실에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담당자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연합회 측은 한국지엠의 이 같은 조치가 연합회 활동과 관련있다고 추측한다. 연합회가 결성된 2016년 이전까지는 이처럼 많은 수의 사업장이 문을 닫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비소를 대상으로 한 감사 횟수가 늘어난 것도 이 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지엠은 1년에 1~2회 하던 감사를 정비사업자연합회가 공식 출범한 2016년엔 7회 이상 실시했으며, 전국 정비사업자를 대상으로 100여 곳에 경고장, 주의장 등을 발부했다. 그 결과 올해 1월 5개 사업장이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공정위, 한국지엠 정비소 가맹사업 여부 재조사 시작
이런 가운데 공정위 김상조 호의 출범에 따라 정비 사업자들에게도 봄날이 올지 주목된다. 공정위가 한국지엠 정비소의 가맹사업 해당 여부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정비사업자연합회가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에게 한국지엠의 가맹사업법 위반 재조사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8월 1일 직접 재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8월 22일 공정위는 한국지엠과 정비소 간 거래 형태가 가맹사업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사건 심사에 착수했고 심사는 진행 중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8월부터 재심사가 들어간 상태고, 심의 절차가 종료되기 전까지는 해당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비 사업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한국지엠의 철수설에 따른 불안감 때문이다. 오는 10월 16일이면 한국지엠의 철수를 막을 수 있는 산업은행의 거부권(비토권)이 끝나기 때문에 한국지엠의 한국 시장 철수를 막을 법적인 수단은 없어진다.
9월 1일부로 취임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인도, 호주 시장에서 잇따라 지엠을 철수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카허 카젬 사장은 한국 철수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정비 사업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연합회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비 사업자들이 보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A씨는 “우리 입장은 그렇다. 제도권 안에서 한국지엠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만에 하나 철수를 해도 최소한의 보호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지엠 임원이 국회에 출석해 입장을 밝힐지도 주목된다. 연합회 측은 정비소의 가맹사업 여부 인정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을 통해 한국지엠 측 관계자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지엠 측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