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면세점업계 외면한 내막
과거 윈윈 하던 동지였는데 어쩌다가…
▲면세점업계는 사드 보복 이후 실적 대부분을 보따리상에 의지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공항 출국장의 면세점 구역.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김유림 기자) 뷰티업계가 국내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대량 구매해 중국 현지에서 되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는 보따리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보따리상들의 면세점 구매 수량을 제한한 것. 이번 조치로 사드 보복 이후 보따리상에 의존하고 있던 면세점 업계는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 한때 면세점업계와 동병상련을 앓던 뷰티업계가 따로 살길을 찾아 나선 이유는 뭘까.
보따리상은 유학생 및 관광객을 포섭해 조직적으로 해외 면세점을 돌며 인기 상품을 대량으로 사들인 후 현지에서 되팔아 이윤을 남긴다. 특히 한국에서는 중국에서 불고 있는 K뷰티 열풍으로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공(代工))이 극성을 부리고 있으며, 이들은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브랜드를 가장 많이 찾는다.
실례로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자음생크림 오리지널 60ml의 중국 공식 온라인몰 가격은 1680위안(한화 29만원)이다. 반면 따이공은 국내 면세점에서 적립금 사용과 할인까지 적용 받으면 16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으며, 불법 유통경로를 통해 현지 정상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에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중국 내 유통시장이 혼탁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인당 구매수량 제한에 나섰다.
지난 8월 LG생활건강은 럭셔리 브랜드 후·공진향·인양 3종 등 세트제품 6개와, 숨·워터풀 3종 등 세트 제품 2개 상품에 대해 최대 5개까지만 구매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강화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달 초 설화수, 라네즈, 헤라, 아이오페, 아모레퍼시픽 등 브랜드별 구매제한 수량을 75% 줄였다. 종전에 구매제한이 없었던 프리메라, 마몽드, 리리코스, 아모레퍼시픽도 추가해, 브랜드별 최대 10개까지만 살 수 있도록 바꿨다.
이와 관련해 양사는 “따이공에 크게 의존해 온 판매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CNB에 “따이공들이 크게 늘면서 시장환경이 혼란해지고,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는데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판단해 정책 변경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상반기에는 사드 보복 우려로 개수 제한을 늘렸다. 그러나 사드 국면이 장기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제품 브랜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탄력적으로 수량 한도를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면세점업계 엎친데 덮친격
양대 뷰티 기업의 이 같은 조치에 면세점 업계의 한숨은 더 깊어졌다. 한국 관광 금지령이 시작된 지난 3월 중순 이후 신세계와 두산, 한화갤러리아 등 신규면세점의 경우 외국인 매출에서 따이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60~70%까지 치솟았고, 터줏대감 롯데와 신라 역시 30~40%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들은 사드 갈등 이전에 유커(중국인 단체 관광객)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행사에 과도한 송객수수료를 지불했던 것처럼 지금은 따이공을 잡기 위해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
과거에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또한 이런 분위기를 눈감아 왔다. 따이공이 중국현지에서 실추된 매출을 일정부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뷰티업계는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일환으로 방한금지령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실적 악화를 우려해, 지난 3~5월 구매 수량 제한을 완화했다. 설화수와 라네즈는 온라인 면세점에서 한 사람당 같은 제품을 3개 이상 살 수 없도록 제한하던 것을 5개로, LG생활건강 역시 제품에 따라 3~5개 제한한 수량을 10개로 대폭 늘렸다.
이처럼 면세점업계와 뷰티업계 모두 사드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따이공의 역할이 절실했으며, 이는 중국현지와 국내면세점 모두의 매출증가로 이어졌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국내 면세점 매출액은 9억8255만4534달러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8.5% 늘었으며, 외국인 매출은 6억9371만 달러로 전년 동기(6억3751만달러)대비 8.8% 증가했다. 내국인 매출액은 2억8884만달러로 7.8% 줄었다. 이 기간 면세점의 외국인 이용객이 105만9565명으로 작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따리상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뷰티업계도 같은 맥락에서 매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현지 매출은 지난 5월부터 회복세를 이어갔으며, 상반기 해외매출액은 9.2%(9542억원) 성장했다. 같은 기간 LG생활건강의 해외 매출 역시 18.5%(5241억원)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중국 현지 매출은 75% 급증했다.
뷰티업계 등돌린 이유는?
이렇게 동병상련을 겪으며 윈윈해 왔던 뷰티업계가 갑자기 정책을 수정한 것은 결국 장기적인 사업 관점에서 브랜드 파워가 리스크 극복의 원동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때 보따리상을 통해 매출을 만회했지만, 중국 현지 매출이 안정세를 이어가자 마음이 달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한국 제품의 불매 운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화장품에 이상이 있지 않은 한 본인 피부에 맞춰 써왔던 브랜드를 쉽게 바꿀 수는 없다. 특히 후, 설화수 등 고가 라인의 브랜드는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중국 현지에서 여전히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뷰티업계의 변심(?)에 면세점 업계는 속으로 냉가슴을 앓고 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신규 면세점의 경우 오픈 초기 토산 화장품이 전체 매출을 견인하고 있으며, 업력이 오래된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신라면세점 서울 장충점 역시 후와 설화수가 매출 1, 2위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이들 브랜드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갑은 면세점이 아니라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라면서 “개수 제한 정책이 면세점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