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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전시] 앵그르의 초상화에 스마트폰 부속들을 붙인 이유

한만영 작가, 아트사이드 갤러리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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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7-558호 김금영⁄ 2017.10.12 11:46:46

▲한만영, '시간의 복제 - 케이, 뷰티(Reproduction of time - K, Beauty)'.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93.4 x 130.3cm. 201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SF 영화에서는 우주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한다. 그런데 한만영 작가는 붓을 통해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가 아트사이드에서 11월 5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이매진 어크로스(Imagine Across)’에서 신작들을 선보인다. 작가가 그림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방법은 과거와 현대의 조화로운 결합이다. 작가는 1970년대부터 고전 이미지를 차용하고, 이를 현대적 이미지와 혼합하는 조형적 실험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특히 동·서양 거장의 작품을 자신의 작업에 폭넓게 등장시켜 눈길을 끌었다.


▲한만영, '시간의 복제 - 루소(Reproduction of time - Rousseau)'.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30.3 x 193.9x4.2cm. 2016.

이는 특히 작가가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시간의 복제(Reproduction of Time)’ 시리즈로 이야기된다. 즉 과거의 시간을 현재에 다시 복제해서 재현하는 것. 하지만 단순 복제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고려한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서는 ‘케이뷰티(K-Beauty)’ 작업이 눈길을 끈다. 신고전주의 작가 앵그르의 ‘마드무아젤 리비에르’(1806)에서 초상 주인공 리비에르의 이미지를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그런데 작가는 원작에 있는 배경을 삭제하고 인물만 옮겨 놓았다. 대신 그가 배경에 등장시킨 건 휴대폰 부속품들. 현대인의 필수품이라 여겨지는 이 휴대폰의 부속품들을 화면 이곳저곳에 부착했다. 이를 통해 신고전주의 시대의 시간과, IT산업의 선두주자인 한국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환기시키는 시도를 한다. 각기 다른 두 시대의 공간과 시간이 화면에서 만나 함께 어우러진다.


▲한만영, '시간의 복제 - 3_27(Reproduction of time - 3_27)'.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218.2 x 290.9 x 4.2cm. 2017.

이처럼 18~19세기 대가들의 유명 작품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유물, 르네상스의 걸작품부터 고구려 고분 벽화, 토우, 불상,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풍속화, 인물화, 민화까지 동서고금의 미술품을 차용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고전적 이미지는 작가를 통해 재해석되면서 현재의 시간을 입은 기발한 이미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뛰어넘는 시도는 작가의 작업관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이 특정 조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어느 한 가지 틀에 구속받는 걸 지양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동양과 서양, 회화(평면)와 조각(입체), 구상과 추상, 현실과 비현실, 허구와 실재 등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에 주목한다.


화면 전체에 하늘색이 가득한 이유


▲한만영, '시간의 복제 - 로마(Reproduction of time - Rome)'.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95.3 x 130.3cm. 2017.

이야기를 듣고 화면을 보면 더욱 이해가 간다. 동양적 소재를 담아도 팝아트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을 정도로 경계가 오묘하고, 멀리서 보면 평면인 것 같은데 가까이 다가서면 나무 상자를 제작하고 그 내부에 설치한 거울 등 입체적인 요소가 발견된다. 로마 시대의 조각상을 화면에 옮긴 작품의 경우 평면 그림이라 생각했는데, 아래를 살펴보면 발이 빼꼼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입체로 제작됐음 또한 발견할 수 있다. 한 조류에 섞이지 않는 작업을 추구해온 작가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 또한 뛰어넘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의 시간에 모두 관심을 갖고 보게 됐는데, 이 관심이 이번에 청화백자 작업으로 이어졌다. 조선 청화백자를 재현한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다. 조선의 18~19세기 청화백자 중 대표적인 작품을 선별해 MDF(medium density fiberboard,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 열과 압력으로 가공)로 도자기 형상을 저부조로 만들고 표면에 문양을 그린 뒤, 이를 캔버스에 부착했다.


▲한만영, '시간의 복제 - 마그리트 가든(Reproduction of time - Magritte garden)'.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30.3 x 193.9 x 10cm. 2017.

청화백자에 새겨진 무늬를 비롯해 화면에 전면적으로 칠해진 하늘색이 눈길을 끈다. 이 하늘색은 청화백자 작업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가의 거의 모든 작업의 배경을 차지한다. 작가는 “쉽게 말해 변하지 않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바라봐온 하늘은 늘 똑같았다”며 “하늘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동시에 끝이 없는 무한한 공간으로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면에서 이 하늘색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나드는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또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화면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작가는 작업에 거울을 즐겨 사용해 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에 화면 양 사이드에 주로 부착됐던 거울이 화면 정중앙에 배치되는 등 역할이 커졌다. 거울은 관람자의 모습 또한 비추는데, 이를 통해 관람자가 작품 속의 한 요소로 포함된다. 즉 거울의 반사로 인해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효과를 느낄 수 있다.


▲한만영, '시간의 복제 - 금강 A(Reproduction of time - Kumgang A)'. 패널에 혼합 미디어, 164.8 x 130.3 x 4.2cm. 2017.

작가는 “우리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생과 사도 그렇고 파괴와 창조도 그러하며 시간과 공간도 각 시대별로 나눈다”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파괴가 있어야 창조가 있고, 아름다움 속에도 추함이 있다. 걸작과 일상의 허접한 오브제를 함께 화면에 두는 것도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특히 우리 존재 자체를 시간과 공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고찰과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작업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익숙함 가운데 느껴지는 생경함이 있다. 나는 여기서 오는 당혹감에 주목한다. 그런데 그 당혹감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관념화된 시각을 가지면 생각이 틀에 갇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당혹감을 제시하며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제약을 깰 수 있는 여지를 주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만영, '시간의 복제 - 청자(Reproduction of time - Blue bottle)'.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17 x 90.7 x 4.2cm.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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