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변호사의 재미있는 법률이야기] 리얼예능 ‘짝’ 포맷은 저작권보호 대상?
(CNB저널 =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예전에 SBS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실제 미혼 남녀들이 출연해 합숙을 하며 자신의 인연을 찾는 프로그램입니다. 흔히 말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의 일종입니다. 이제 와 밝히는 거지만, 제게도 지인을 통해 섭외 전화가 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 짝짓기 프로그램의 역사는 매우 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추억의 임성훈 MC가 진행하던 MBC ‘사랑의 스튜디오’가 제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SBS ‘짝’ 프로그램은 기존의 많은 짝짓기 프로그램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남자 1호는~”으로 시작하는 내레이션도 재미있었고, 합숙 프로그램이다 보니 상당히 개성 넘치는 출연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패러디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법률분쟁까지 진행되었는데요, SBS는 두 가지 프로그램이 자사의 프로그램 ‘짝’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것도 창작이다?
SBS가 ‘짝’을 모방했다고 지목한 프로그램은 CJ E&M의 계열사 넷마블에서 제작·유포한 ‘짝꿍 게이머특집’과 또 다른 계열사인 tvN의 ‘SNL코리아’가 콩트 형식으로 만든 ‘쨕: 재소자 특집’입니다. 공교롭게도 피고가 모두 CJ E&M의 계열사여서 소송 자체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이 소송이 흥미로웠던 것은 과연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의 방송 포맷을 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하여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창작성이 있어야 저작물로 인정하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창작성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저작물로 보지 않습니다.
▲SBS ‘짝’은 ‘애정촌’이라는, 여러 가지 조건이 제한된 합숙 공간에서 일반인 미혼남녀 다수가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사진 = SBS
그런데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은 구체적인 대본이 없이 대략적인 구성안만을 기초로 출연자 등에 의해 나타나는 상황을 담아 제작됩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기승전결이 꽉 짜인 방송프로그램과는 달리 상당 부분을 출연자에게 맡겨 놓기 때문에 과연 창작성을 인정해서 저작물로 보호해야 할 것인지가 문제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1·2심 재판부는 “SBS가 저작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한 등장인물의 표현방식이나 서로를 ‘여자·남자 몇 호’로 부르는 방식 등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도 무대, 배경, 소품, 음악, 진행방법, 게임규칙 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고, 이러한 요소들이 일정한 제작 의도나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나 개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특징과 개성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성· 개성을 가졌다면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SBS의 ‘짝’ 프로그램은 이런 창작성이 있기 때문에, 저작물로 보호받는 대상이라고 보았습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저작권 최초 인정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저작물로서 보호를 받는다면, 다음 단계는 넷마블의 ‘짝꿍 게이머특집’과 tvN의 ‘쨕: 재소자 특집’이 저작물을 모방한 것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남의 저작물을 모방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을 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두 개의 프로그램에 대한 판단을 다르게 했습니다.
▲tvN ‘SNL코리아’의 한 코너로 방영된 ‘쨕: 재소자 특집’은 SBS ‘짝’을 패러디 한 것으로, ‘짝’의 고유한 특징을 모방하고 있으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짜여진 대본에 따라 연기한 성인 코미디물이므로 ‘짝’과는 성격이 다르며, 무단 모방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 = tvN
▲넷마블에서 제작·유포한 ‘짝꿍 게이머 특집’은 SBS ‘짝’의 창작적 특성이 그대로 담겨 있어 유사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진 = CJ E&M
먼저 ‘쨕: 재소자 특집’의 경우 구체적인 대본 없이 진행되는 리얼리티 방송프로그램이 아니라, 전문 연기자가 출연하여 구체적인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성인 코미디물이라는 점, 프로그램의 성격, 등장인물, 구체적인 사건의 진행과 내용 및 그 구성 등에서 표현상의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들어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넷마블의 ‘짝꿍 게이머특집’은 남녀 출연자들이 애정촌에 입소하여 원하는 이성을 찾아가는 원고 영상물의 기본적인 구조를 그대로 차용하고, 애정촌 던전의 입소 과정부터 남녀 출연자들의 복장과 호칭, 자기소개, 같이 도시락을 먹을 이성 상대방 선택, 제작진과의 속마음 인터뷰 및 내레이션을 통한 프로그램 전개 등 원고 영상물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보아,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대법원은 ‘쨕: 재소자 특집’은 저작권 침해가 없으나, ‘짝꿍 게이머특집’은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결이 의미 있는 점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역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라는 최초의 판결이라는 것입니다. 이 판결로 인해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포맷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을 여러 나라에서 모방하고 있는 현실에서, 콘텐츠 저작권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판결입니다.
(정리 = 윤지원 기자)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 babsigy@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