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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작가 - 김우영] 점이 된 작가, 선으로 길에 서고, 면을 바라보다

갤러리시몬 ‘시간, 공간, 김우영의 철학적 풍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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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4호 김금영⁄ 2017.12.01 09:42:13

▲'시간, 공간, 김우영의 철학적 풍경'전이 열리는 갤러리시몬 전시장 전경.(사진=갤러리시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형형색색의 건물과 그 앞의 아스팔트 도로. 처음 김우영 작가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크게 두 가지 궁금증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그림인가? 사진인가?” “화면 속 장소는 실제 있는 곳인가? 포토샵을 통해 만든 공간인가?” 그리고 이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이 바로 작가가 바라는 시간이다.


‘시간, 공간, 김우영의 철학적 풍경’전이 열리는 갤러리시몬에서 작가를 만났다. 첫 번째 궁금증에 대한 작가의 답은, 그림이 아닌 ‘사진’이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작가는 화각이 아주 제한적인 표준렌즈를 갖고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다.


그림처럼 느껴지는 것, 그리고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에는 이유가 있다.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가진다. 한 장소를 정한 뒤 바로 사진을 찍고 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화면이 나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탐구한다.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새벽에 사진을 찍기도 하고, 눈이나 비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꽃잎이 자연스럽게 흩날리는 순간도 기다려봤다. 즉 그의 사진은 마치 그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을 모두 현실에서 발견한 결과다.


▲김우영, 'E 6번가(6th Street) III'.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ed. of 7, 170 x 140cm. 2017.(사진=갤러리시몬)

사진을 찍은 뒤에는 아주 간단한 보정 작업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작품명은 건물이 위치한 대로나 거리 명으로 짓는다. 그래서 세세하게 이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우연히 이곳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설레는 상상을 하게 된다.


두 개의 궁금증을 해결하니 또 궁금한 게 생긴다. 작가는 왜 도시의 건축물들을 찍게 됐을까? 질문을 던지자 작가는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다”며 과거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 시작했다. 작가는 홍대 도시계획과를 졸업했다. 원래 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점수에 맞춰 들어가게 된 건데, 의도치 않게 접하게 된 도시계획 분야는 공부할수록 흥미로웠단다. 여러 건축물을 통해 보는 도시는 작가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대학원에서 홍대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가 사진을 접하며, 학생 때부터 도시와 사진을 모두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러다 사진을 보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1990년 30세가 넘은 나이에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로 유학을 떠났다. 여기서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 유명 패션 포토그래퍼 제임스 무어를 만나 뉴욕에서 패션매거진 KGB의 사진작업을 맡았다. 모델에 대한 존중과 자연스러운 사진 촬영 분위기를 익혔고, 1994년 한국에 돌아와 남성지 HIM 창간 작업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5년 동안 광고와 패션 사진을 찍으며 김우영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송승헌, 소지섭의 광고로 유명해진 의류 브랜드 스톰, 닉스 광고사진을 비롯해 이영애를 모델로 한 헤라의 화장품 광고까지 성공시켰다.


▲김우영, 'W 1번가(1st Street) II'.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ed. of 7, 140 x 182cm. 2017.(사진=갤러리시몬)

“당시 광고 시장의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어요. 화장품 광고는 지하에서 상품만 덩그러니 찍은 사진을 주로 사용했고, 패션 사진은 오로지 옷만 돋보이게 할 때가 많았어요. 그때 전 모델과 옷, 상품이 잘 어우러지도록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렇게 5년을 찍다보니 자연스럽게 광고, 패션 사진의 흐름도 바뀌어 있더군요. 원래 1년만 찍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의뢰가 정말 많이 들어와 5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어요.”


광고, 패션업계에서 모두 작가를 찾았다. 하지만 정상의 위치에 섰을 때 오히려 그는 재미가 없어졌단다. 남의 의뢰로 돈을 받는 만큼 냉정하게 찍는 사진, 의뢰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웃되는 사진이 아니라,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마음껏 찍고 싶었다. 아티스트로서의 사진과 광고로서의 사진 역할 사이 괴리감을 느꼈던 작가는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그런데 바로 사진기를 잡을 수 있었는데, 광고 사진을 찍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단다. 이때부터 방황의 시간이 약 3년 동안 이어진다. 자신이 무엇을 찍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미국 동부와 서부를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자연스럽게 뉴욕과 캘리포니아도 지나게 됐는데, 빠르게 이동하면 일주일 왕복도 가능하나, 차를 타고 천천히 40~50일을 걸려 뉴욕과 캘리포니아 사이를 왕복했다. 이때 우연히 캘리포니아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마주했는데, 그 순간 작가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됐단다.


“바다가 올라와서 지형을 이룬 곳인데, 그곳에서 묘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이제는 진짜 작업을 하고 싶다’ ‘카메라를 잡고 싶다’는 마음이 용솟음치더군요.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장소가 다르잖아요? 제겐 데스밸리가 감동을 줬어요. 광활한 대자연을 보면서 제 바빴던 시간과 사진을 공부한 시간, 방황의 시간이 모두 한꺼번에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는 동시에, 사진을 찍고 싶은 희열을 느꼈죠. 그길로 바로 카메라를 세팅하기 위해 움직였어요.”


왜 도시인가? 작가 그 자체였다


▲김우영, '한옥(Hanok) 916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ed. of 7, 100 x 125cm. 2016.(사진=갤러리시몬)

카메라를 가져오던 도중 데스밸리 앞 조그만 도시를 발견한 작가는 방황을 멈추고 3년 만에 첫 정착을 했다. 데스밸리의 기운을 받은 도시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최적의 장소였다. 데스밸리와 그 앞 작은 도시 이외에도 미국의 도시 곳곳을 찾아다녔다.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했고, 새로운 곳을 가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도시를 찾아가게 된 이유. 시간이 흐르며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도시는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죠. 하지만 새벽에 아무도 없는 도시, 모두가 떠난 도시에서는 전혀 다른 황량함이 느껴졌어요. 저는 자본주의 시대에 수많은 상업 사진을 찍고, 나름 이름을 알렸죠.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땐 제가 화려한 경력에 성공한 사람으로 보였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제가 있었고, 실제로 방황의 시간도 있었죠. 겉만 봐서는 그 속의 내용을 모두 알 수 없어요. 저는 그 숨겨진 이면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와 닮은 도시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를 작가는 점, 선, 면으로도 설명했다. 교과서적 측면에서의 점, 선, 면이 아니다. 점은 바로 자신이다. 작가는 점이 돼서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점을 찍는다. 그리고 작가가 찍은 점을 연결하는 선은 작가가 다닌 경로이자, 작가가 늘 서서 대상을 바라본 자리다. 면은 작가가 앞에 마주한 대상이다. “나는 점의 입장으로 다니고, 선의 입장으로 도로에 서며, 면을 바라본다”고 작가는 정리했다.


▲김우영, '한옥(Hanok) 934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ed. of 7, 140 x 242cm. 2016.(사진=갤러리시몬)

2015년부터는 이 점, 선, 면의 이야기가 보다 심화됐다. 이번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곡 최순우 선생님의 집’ 전시 초청으로 시작한 한옥 시리즈다. 해외 도시에서 발견한 건축물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 한옥에도 작가는 매력을 느꼈다. 그는 “서양 건축물은 나무를 가공해서 만든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전통 한옥은 나무가 기울어졌으면 기울어진 대로, 가공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美)를 살리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광경을 어떻게 담아야 하나’ 고민하던 가운데 담양 소쇄원에 폭설로 잠시 갇히게 된 적이 있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오는 시간. 작가는 하얀 눈 사이 미세하게 보이는 한옥의 선과 구조를 발견했고 ‘바로 이거구나’ 하고 느꼈다고.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 아닌, 미니멀한 점, 선, 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한옥이었어요. 그때 풍경에서 발견한 점, 선, 면이 아직 눈앞에 선명해요. 하얀 눈은 마치 도화지 같았고, 눈에 둘러싸인 한옥은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었죠. 일본에 갔을 때 일본과 한국의 서예를 보여주는 전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옥이 마치 서예의 필체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사진을 찍어야겠다’ 마음먹었죠. 한옥 그 자체를 그대로 잘 보여주기 위해 새벽에 그림자가 최대한 배제된 환경 속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 리터칭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이렇게 찍은 한옥 사진을 보고 수묵화처럼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김우영 작가.(사진=작가 제공)

작가는 지금도 꾸준히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옥을 찍고 있다.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티베트와 쿠바도 가봤고, 다가오는 해에는 일본에도 오래 있어보고 싶단다. “현재 사는 곳은 정확히 어디냐?”고 묻자 “방랑자”란다. 광고 사진을 찍을 때도 1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다녔고, 지금도 한곳에 꾸준히 오래 머물러 있는 스타일은 아니란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을 버리고 이사하면서 새로운 것을 채우듯, 계속해서 새로운 곳들을 눈에 담고 느끼고 싶어서다.


“제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찍을 대상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발견을 위해서는 제가 느끼는 감동이 있어야 하죠. 화려한 겉만 보고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게 아니라 숨은 이면을 들추는 작업, 그리고 또 그곳에 있었을 이야기들과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상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제 작업이에요. 앞으로도 수많은 길을 지나가게 될 것 같네요.”


전시는 갤러리시몬에서 2018년 2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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