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0cm, 세로 15cm 드로잉 패드와 검은색 유니볼 펜. 일러스트레이터 제이슨 폴란은 항상 이 두 가지 도구를 갖고 맨해튼 14번가 유니언스퀘어에 자리한 타코벨 매장에 간다. 북적거리는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그의 시선은 갓 나온 음식보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머문다. 공간 한구석에서 소스 봉지를 이로 뜯거나, 주문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시에 재빨리 스케치북에 담아낸다. 종이가 아닌 사람을 보면서 그렸기 때문에,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몇몇 사람들은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더 있기도 하다. 마치 움직임 그 자체를 그림에 담은 것처럼.
이 책은 전화번호부처럼 방대한 ‘드로잉 인명사전’이자 제이슨 폴란이 사랑하는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새로운 종류의 연애편지라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기록된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으로 살펴봐도 좋고 무심코 펼친 그 페이지에서부터 보아도 무방하다. 시간 순으로 책을 본다면 제이슨 폴란의 그림 변천사와 그의 관심사가 어떻게 옮겨갔는지를 알 수 있다.
만일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부터 이 책을 접한다면 ‘그날의 사건’ ‘특정 장소’ ‘인물의 특징적인 움직임’ 등 하나의 키워드를 갖고 살펴봐도 좋겠다. 더불어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프로젝트 ‘에브리 퍼슨 인 뉴욕’의 가장 최신 버전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생생한 묘사를 재빠르게 담아낸 특유의 그림 스타일과 그가 목격한 뉴욕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책과 함께 즐기기에 좋다.
제이슨 폴란 지음, 이용재 옮김 / 2만 2000원 / 아트북스 펴냄 / 4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