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15년 전, 36년 전의 성추행 사건으로도 ‘미투’를 외치고 있는 작금의 시대다. 며칠 전 월례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내게 바싹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차에서 해봤어요?”
그와는 3년 동안 월례회 활동을 했다.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친분이 두터워졌다. 하지만 때가 때인데, 무슨 난리 날 소리를 하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키워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제 차에서 해봅시다.” 다시 다정하게 속삭이며 내 등을 민다. 골프장의 주차장은 산세가 가파른 동쪽을 등지고 서쪽으로 시야가 열려 있다. 발아래 낙조가 스미는 페어웨이가 눈에 들어온다.
“차에서 무얼 하자고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차는 엉덩이를 동쪽으로 내밀고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젊은이들의 ‘워너비 넘버원’ 차량, 훔쳐서 난짝 올라타고 달아나고 싶은 차였다.
“엉덩이가 근사하죠?” 차의 트렁크를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그는 새로 산 차 자랑을 오달지게 하고 있었다. 그가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만지작거리자 지잉, 기계음과 함께 차의 지붕이 뒤로 접혔다. 지붕이 사라지자 하늘과 바람이 공격해 왔다. 바람에 날린 머플러 자락이 볼을 쓸었다. 내가, 아니 우리 둘이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온 듯했다.
골퍼는 일출 시각과 일몰 시각쯤은 골퍼적 본능으로 알고 있다. 일출 시각으로 첫 조의 티오프가 시작되고 일몰 시각으로 마지막조의 라운드가 끝난다. 싱글핸디캡퍼인 그는 라운드를 끝내고 샤워도 마치고 나오면서 일몰 시각을 카운트다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길 보세요. 해를 보세요. 여기 이 장소에서 작가님에게 일몰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해가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입니다. 점점 커지면서 타는 듯이 붉어집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페어웨이 뒤편으로 가라앉지요. 제가 정동진의 일출과 비견할만한 일몰을 발견했어요. 글 쓰는 작가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 노을 진 하늘을 작가님에게 드릴게요. 맘껏 가지세요.”
‘골프엔 섹스’ 작가의 실토에
“실제론 없었단 말?” 일동 합창
그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머플러 안으로 넣어주며 말한다. 나는 차의 지붕이 열리는 순간 본네트를 적시며 앞 차창으로 기어 올라오는 황금빛 석양의 장려함에 넋이 나가서 “옴마, 눈부셔, 이놈의 차, 멋져” 탄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입 벌리고 있지 말고, 즐기세요. 황홀한 순간은 금방 지나가버려요.” 해가 꼴깍 넘어가버린 후에도 뇌리에 새겨진 노을의 잔상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데, 그가 또 작정을 한 듯 묘한 소리를 한다. “나, 요만큼으로는 미투, 그런 거 안 당하죠?” 싱그러운 웃음을 무는 그에게서 플레이보이 냄새가 진동한다.
“오늘은 절대로 아니에요. 15년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반성해보도록 해요. 벌을 받든지 빌고 용서를 받으세요. 그런데 실은 내가 떨고 있어요. 난 작품에 한하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일처럼 젊은 연하 남자와 성적으로 희롱하는….”
“실제로는 없었단 말인가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녁식사 좌석에는 남녀 10여 명이 있었는데, 적어도 9명이 합창을 한 것 같다.
(정리 = 김금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