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7호 김금영⁄ 2018.05.02 11:16:53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가나아트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평창동에 본사를 둔 가나아트센터가 이태원에 새로운 전시 공간 ‘가나아트 한남’을 4월 25일 개관했다. 가나아트 한남은 가나아트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기존 평창동 본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차별성 또한 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호재 회장은 1983년 가나화랑(현 가나아트센터)을 창립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정용 대표는 2014년부터 가나아트센터 경영을 맡았다. 아버지인 이 회장이 국내 거장 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주는 데 힘을 기울였다면, 아들인 이 대표는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뒀다. 특히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을 해외 미술시장에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해외 유학파 출신인 이 대표에게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또 이 대표가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아트토이다. 유통 시장 전반이 극심한 불황을 겪는 가운데, 캐릭터와 장난감 등을 중심으로 한 키덜트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 왔다. 한국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캐릭터 시장의 매출액은 10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대표는 주요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키덜트족, 그리고 앞으로 더 커질 키덜트 시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아트(art)와 토이(toy)가 결합된 아트토이 장르에 주목한 ‘아트토이컬쳐’ 전시를 아트벤처스와 함께 기획해 매년 선보였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한 아트토이컬쳐는 이 대표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규모도 점차 커져 5월 2~6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올해 전시엔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 150팀 200여 명이 참가한다.
아트토이컬쳐는 예술 관련 종사자뿐 아니라 기업 등 산업 분야 관계자들 또한 관심을 보이는 자리다. 주요 소비자층으로 떠오른 키덜트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아트토이 작가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목적으로 조사 차 현장을 방문하는 것. 아트토이컬쳐가 배출한 스타 작가 초코사이다의 경우 롯데시네마, 청하, 신라면세점, 왓슨스 등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며 주목받았다. 이렇듯 이 대표는 순수 미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필드를 찾아 개척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번엔 가나아트 한남을 개관해 눈길을 끈다. 일단 눈에 띄는 건 위치다. 부자 동네로 꼽히는 평창동에 위치한 본사는 고급스런 느낌이 강했다. 미술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지만, 그에 반해 일반인의 접근성이 다소 부족했던 것도 사실. 반면 가나아트 한남이 위치한 이태원과 해방촌 인근은 젊은 층이 자유스럽게 오가는 편안한 분위기로 긴장이 다소 풀어진 느낌이다.
미술계 거장에 주목한 평창동 본사
젊은 작가 소개하는 가나아트 한남
또 복합문화공간적인 성격이 강하다. 가나아트 한남은 사운즈 한남이라는 건물에 위치했는데, 이 건물엔 경매사 필립스 한국사무소를 비롯해 식당, 카페 레지던스도 들어왔다. 사운즈는 JOH컴퍼니에서 추구하는 ‘입고, 먹고, 머무르고, 습득하는’ 의식주정(衣食住情)을 기반으로 기획된 공간으로, 한남점은 그들의 첫 시작이다.
가나아트 측은 “여러 목소리가 공존하는 복합문화 공간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영역 국한 없이, 소통 중심의 미술 공간으로 나가고자 하는 가나아트 한남의 목적성과 사운즈의 성격이 부합하다”며 “또한 도심 속 현대인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모티브 또한 가나아트 한남과 사운즈가 공유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나아트는 사운즈가 가진 인접성 좋은 위치적 특수성과 주거와 여가가 공존하는 공간의 특수성을 활용해 삶과 예술의 조화를 추구하고, 미술의 대중화를 실현하고자 한다”고 개관 취지를 밝혔다.
규모적인 측면에서도 본사와 비교된다. 평창동 본사는 3층 건물에 각 60평, 100평의 넓은 전시 공간을 자랑했다. 가나아트 한남의 경우 전시 공간이 약 18평으로 아담한 규모다. 규모는 많이 축소됐지만 바깥에서도 전시 공간이 훤히 보이는 구조로, 미술 관계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부담 없이 관심을 갖고 작품을 보러 들어올 수 있게끔 신경 쓴 의도가 느껴진다.
개관전 작가로 1991년생인 장유희를 택했다는 점에서도 이 공간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재 평창동 본사에서는 고암 이응노의 ‘군상’ 시리즈에 주목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렇듯 평창동 본사가 미술계 거장, 중견 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열었다면, 가나아트 한남은 능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발굴 및 소개의 공간으로 꾸려갈 계획이다.
장유희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대학 순수미술과를 졸업하고, 현재 시카고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이기도 하다. 5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여러 매체와 방법을 활용해 일상적인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날의 투 두 리스트(To Do List)’에 하루의 계획과 소소한 생각들을 기입하고, 이를 작업으로 형상화한다. 연필로 모든 작업을 스케치하는데 작업엔 유난히 연필과 펜, 연습장과 같은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한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계 또한 기상시간, 취침시간, 식사시간 등 사소한 사건들을 기록하는 매체로서의 기능을 한다.
매일 아침마다 먹는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와 같은 일상적인 식사 메뉴가 화면을 통해 예술로 승화된다. 또 작가는 캔버스를 통해 그려진 이런 사적인 일상의 기록이 관람객들을 통해 다양하게 해석되는 순간을 즐긴다.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의 낯선 풍경이 되는 그 간극에 흥미를 두는 것. 이번 전시에서 그림뿐 아니라 다양한 세라믹도 선반 위에 전시된다.
이 대표는 “장유희 작가의 전시를 시작으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특히 해외에 소개했을 때에도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개성 강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가나아트 한남은 동시대의 흐름을 읽고, 보다 젊은 감각으로 예술의 문턱을 낮춰 다양한 층위의 대중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감각이 새롭게 끼어들고 있는 가나아트의 변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