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금영 기자) 올해로 10회를 맞이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구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가 9월 개막을 앞두고 주제와 기획자를 발표하며 베일을 벗었다.
서울특별시가 주최,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이하 비엔날레)는 2000년 개막 이후 짝수 해마다 열려 왔다. 미디어아트와 기술의 중심지로서 서울의 모습을 반영하고, 미디어의 개념을 확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예술에 주목하는 자리다.
백기영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대 서울에서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관한 이야기가 이뤄졌다. 이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미술 행사의 필요성을 느꼈고, 비엔날레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간 비엔날레는 ‘도시: 0과 1 사이’ ‘디지털 호모 루덴스’ ‘두 개의 현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등의 주제로 전시를 꾸려 왔다.
올해 전시 주제는 ‘좋은 삶’이다. 언뜻 쉬워 보이는 주제이지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다. ‘좋다’는 기준이 물리적인 측면에서인지, 정신적인 측면에서인지 그 범위를 설정하기 어렵다. 또한 ‘좋은 삶’이라는 게 디지털 미디어 시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 가운데 비엔날레는 기획 체제에 변화를 주며 주제에 심도 깊게 접근한다는 계획이다. 10회 비엔날레는 기존 이어져 왔던 1인 감독 기획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이하 콜렉티브) 6명이 모여 공론의 장을 만든다. 김남수 무용평론가, 김장언 독립큐레이터,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팀장,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서울시립미술관의 추천 및 선정 위원회를 거쳐 선택됐다.
‘좋은 삶’이라는 전시 주제는 ‘뉴 노멀’ ‘새로운 인간의 모습’ ‘좋은 삶’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눠 설명된다. 홍기빈 소장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시장에 뉴 노멀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표준들이 나타나는 현상을 짚은 이 용어는 단지 경제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폭넓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상황들을 상징하게 됐다”며 “뉴 노멀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논의된다. 총체적인 삶의 관점에서 보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상이 변화하는 와중에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결코 놓지 못하는 키워드가 바로 좋은 삶이다. 다만 우리는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 명확히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공지능 문제 등도 엮이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뉴 노멀’과 ‘새로운 인간의 모습’ 키워드가 세계의 변화 양상을 짚는다면 ‘좋은 삶’ 키워드는 개인으로도, 집단으로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변화를 수동적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담론을 펼치려 한다”고 설명했다.
‘좋은 삶’ 주제로 “다 같이 모여 토론해보자”
전시 주제인 ‘좋은 삶’은 고대 그리스어 ‘에우 젠’(Eu Zen, 잘 산다는 것)에서 따왔다. 즉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목적은 다 같이 모여서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예술, 경제, 환경, 정치, 사회, 기술 등 다각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 계획이다.
김장언 큐레이터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6명이 비엔날레를 기획하는 건 세계 여타 비엔날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큐레이터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문화적 이슈를 논의했던 사람들이 모여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인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에만 국한된 실험실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이슈를 논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6명의 콜렉티브가 자신들의 전문성을 드러내고 보완하면서 집단 지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큰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
‘좋은 삶’이라는 주제에 다각도로 접근하겠다는 의도는 참신해 보인다. 예컨대 김남수 무용평론가는 ‘좋은 삶’이라는 키워드가 몸을 사용하는 예술 행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탐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노경애 안무가, 보물섬 콜렉티브 등의 작업을 소개한다. 김 평론가는 “지금까지 무용이 현대ㅜ 미술의 장 안에서만 융합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미술 전문가뿐 아니라 경제, 환경 등 전문가들과 만나 토론하고 내용을 공유하면서 타 분야와 무용 간 좀처럼 좁히기 힘들었던 간극을 다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 전환 캠페인을 이끌어 온 장다울 팀장은 ‘좋은 삶’이라는 키워드를 환경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린피스동아시아서울사무소 등의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장 팀장은 “세계의 환경 위기와 그 안에서 행동했던 시민들의 이야기에 접근하려 한다”며 “다른 콜렉티브가 추천한 예술가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이자 프로젝트 스페이스인 더 북 소사이어티를 통해 예술 도서 및 소규모 독립 출판물을 소개해 온 임경용 대표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출판의 달라진 위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풍경을 보여주며, 미래의 모습 또한 예측해볼 계획이다.
이 가운데 최효준 관장은 미술 전문가로서 무게중심을 잡는다. 최 관장은 “향후 비엔날레의 연속성, 그리고 사회적 미술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콜렉티브를 구성했다. 단지 예술인만의 장이 아니라 관람객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려 한다”며 “심포지아, 캠프, 공유지, 아고라 등 토론의 장으로 비엔날레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예술 분야에서 경제, 환경, 정치 등의 이야기가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주요 소재로 많이 쓰였다. 다만 이번 비엔날레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전시에 참여하면서 보다 다양한 담론을 끌어내겠다는 취지가 돋보인다.
이 점은 흥미롭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론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각각 개별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식에 그친다면 혼잡해 ‘좋은 삶’이라는 주제를 잘 드러내지 못할 우려도 있다. 최 관장은 “지금 집단성의 장에 고민할 거리들을 던져 놓고 큰 덩어리를 함께 빚어가는 과정에 있다”며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과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며 다양한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비엔날레는 9월 6일~11월 18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등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