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6호 정의식⁄ 2018.07.12 16:50:28
삼성전자가 인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생산공장을 지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형행사로 준공식이 치러지며 업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문 대통령의 첫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지만, 더 중요한 건 삼성전자가 인도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는 인구 규모도 크지만 아직 피처폰 비율이 높아 성장잠재력이 높다. 인도에서 샤오미를 위시한 중국 기업들의 매서운 상승세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스마트폰 패권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공장 준공식에서 문-이 회동
지난 9일 삼성전자가 인도 뉴델리 인근 우타르프라데시 주 노이다 시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생산공장인 삼성전자 노이다 제2공장 준공식을 치렀다.
이날 행사에는 때마침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참석하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여러 대기업 행사에 참석해 경제인들을 만났지만 삼성그룹 일정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날 만남에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을 축하한다. 인도가 고속 경제성장을 계속하는 데 삼성이 큰 역할을 해줘 고맙다”고 치하한 후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께서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여기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해외공장을 방문하고, 이 부회장과 악수하는 모습까지 보인 것을 두고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인해 골이 깊어진 문재인 정부와 삼성그룹의 관계가 호전될 계기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당부한 만큼 삼성그룹이 조만간 상당한 규모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을 거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단순한 1회성 만남을 관계개선의 신호로 볼 수 없으며, 삼성전자가 인도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으로, 이미 중국시장에서 현지기업들에 밀린 삼성전자가 인도시장에서마저 중국기업들에 밀린다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시장 부진, 인도에서도?
실제로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에는 위기감이 감돈다.
지난 6일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14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4조 670억 원보다는 5.2% 늘어난 것이지만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낸 전 분기의 15조 6420억 원보다는 5.4% 줄어든 금액이었다. 7분기 만에 처음 전 분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한 데다 증권사 21곳이 제시한 2분기 영업이익 전망 평균치(컨센서스) 15조 2704억 원에도 못 미친 터라 주가가 급락했다.
실적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IM부문의 부진으로 지목됐다. IM부문의 2분기 영업이익은 약 2조 3000억 원으로 전 분기 3조 7700억 원보다 무려 40% 가까이 급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주력제품인 갤럭시S8에 비해 올해 갤럭시S9의 판매가 부진했던 탓이다.
특히 중국시장에서의 부진이 컸다.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만 해도 중국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유지했으나, 2015년부터 화웨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기업들에 밀리며 판매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갤럭시노트7 폭발사건, 2017년 사드 제재조치 등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지난해 4분기 1%대까지 떨어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1%대 이하로 내려왔다.
이에 그 대안으로 지목된 곳이 인도시장이다. 인도의 경우 세계 인구 2위로 지난해 기준 스마트폰 시장규모가 중국(4.5억 대), 북미(1.9억 대), 중남미(1.5억 대), 서유럽(1.3억 대)에 미치지 못하는 1.24억 대 수준이지만, 피처폰을 포함한 휴대폰 전체로 따지면 무려 2.9억 대의 거대시장이다.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시장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춘 셈.
문제는 삼성전자가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중국세에 밀려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수년간 점유율 1위를 유지해왔으나 2016년부터 샤오미의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급기야 지난해 3분기를 기점으로 샤오미는 삼성전자를 추월해 1위 자리를 굳혔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 1위는 31%를 차지한 샤오미이며, 삼성전자는 25%로 2위다. 오포, 비보, 트랜션 등이 10% 미만의 점유율로 그 뒤를 잇고 있다.
‘피처폰 우위’ 스마트폰 시장까지 이어갈 전략 필요
다행인 것은 피처폰까지 포함한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는 여전히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도에서 스마트폰 약 3069만 대를 판매하는 동안 피처폰은 약 3355만 대를 판매했다. 스마트폰 판매가 더 많은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인도시장은 여전히 스마트폰 비중이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세계 피처폰 판매량 5.1억 대의 약 32%인 1.6억 대가 인도에서 판매됐을 정도로 인도는 아직 ‘피처폰 왕국’이다.
하지만 피처폰에 기댄 우위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피처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대체된 것처럼 인도 역시 스마트폰으로의 이동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과거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소비자가 대거 이동하던 당시 가장 경쟁력있는 스마트폰 제품을 보유했던 삼성전자와 애플이 피처폰 1위였던 노키아를 몰아내는 결과가 나왔지만, 인도의 경우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기업은 샤오미다. 샤오미가 전환기의 열매를 독점하고 ‘피처폰 강자’ 삼성전자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삼성전자로서는 현재 유지 중인 피처폰 점유율의 우위를 스마트폰 시장까지 연장할 수 있는 특단의 전략이 필요한 상황. 이번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이 인도에서의 시장점유율을 지키려는 삼성전자의 핵심 포석으로 읽혀지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이번 노이다 공장 확충을 위해 약 8000억 원(490억 루피)를 투자했다. 그 결과 12만㎡였던 기존 공장 부지가 25만㎡로 넓어졌고, 연간 6000만 대에 달하는 노이다 공장의 휴대폰 생산 능력이 2020년까지 약 1.2억 대까지 늘어나게 됐다. 이는 삼성전자 핸드폰 생산시설이 위치한 국가 중에서 베트남에 이은 2위의 생산능력이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휴대폰 생산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베트남이 박닌성 옌퐁과 타이응우옌성 옌빈에서 각기 1.2억 대, 합계 2.4억 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1위다. 현재 2위인 중국은 텐진(3600만 대)과 후이저우(7200만 대), 합계 1억 800만대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는 한국 구미(2400만 대), 인도네시아 치카랑(1800만 대), 브라질 캄파나스(1200만 대)와 마나우스(1200만 대) 등이 있다.
인도 현지 생산물량 증가는 인도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그 효과를 글로벌 시장에까지 미치게 할 ‘양수겸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전면적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미국시장에 수입될 경우 막대한 관세를 부담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도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그런 우려가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을 두고 격화되는 무역전쟁에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신의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샤오미의 공세에 삼성이 인도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인도는 삼성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IM사업부의 실적 둔화와 미‧중간 무역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삼성의 인도시장 강화 전략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