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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나홀로 세계여행 (179) 뉴질랜드 남섬] 직선으로 언덕 오르는 ‘최고 가파른 길’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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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7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8.07.23 09:44:20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2일차 (서울 출발 → 오클랜드 도착 → 크라이스트처치 도착 → 더니든 도착)


머나먼 남태평양


오후 5시, 인천공항을 출발, 오클랜드(Auckland)로 향한다. 뉴질랜드는 서울 출발 항공 요금이 매우 비싸서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연휴 직전과 직후 시기에 싱가포르항공의 저렴한 편도 항공권을 찾을 수 있어 성사되었다. 서울에서 오클랜드는 6000마일, 서울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비슷한 먼 거리이다. 괌(Guam) 부근 상공을 지난 항공기가 적도를 넘을 즈음에는 심하게 요동을 친다. 지구상 어디든 항공기로 적도를 넘을 때마다 보통 있었던 일이라서 놀라지는 않는다.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풍경 


출발 후 약 12시간 걸려서 도착한 오클랜드는 오늘 최고 기온 섭씨 24도의 완벽한 날씨를 선보인다. 북위 37.5도, 겨울 한복판의 서울을 떠나 남위 36.7도, 남반구의 여름 한복판으로 밤새 날아온 여행자에게 찬란한 여름 날씨보다 더 반가운 선물이 있을까? 국내선 항공기로 갈아타고 도착한 남섬(South Island)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은 뉴질랜드 백인들의 몇 배가 되어 보이는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들로 붐빈다. 중국인 해외 관광객 숫자가 연간 1억 2000만 명(2016년 기준)을 넘으니 태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나라 전체가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셈이니 그럴 만도 하다. 


미완성의 남섬 


선주민인 마오리 족이 들어온 시점을 따져 봐도 인류가 가장 늦게 도달한 땅인 뉴질랜드는 신대륙 중의 신대륙이다. 1642년 네덜란드인 타스만(Abel Tasman)이 도착하고도 100여 년이 지난 1756년 쿡 선장(James Cook)의 도착으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또 80여 년이 지난 1840년이 되어서야 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본격적인 이민 역사가 쓰인 지 불과 178년 밖에 되지 않은 뉴질랜드는 아직 많은 것이 미완성이지만 그 중에서도 남섬은 더욱 그렇다. 남섬은 면적이 남한의 1.5배, 북섬의 1.3배로 크지만 인구는 112만 명, 뉴질랜드 전체 인구 480만 명의 23%만이 거주한다. 그래도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는 인구 38만 명으로 오클랜드, 웰링턴(Wellington)에 이어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가축 숫자가 사람의 10배?


예약해 놓은 렌터카를 픽업해 남섬 일주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 밤 숙박지 더니든(Dunedin)까지는 364km 거리이다. 수많은 마을들을 지난다. 평탄하던 대지는 남쪽으로 가면서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시작된다. 이미 멀리서는 거대한 산들이 물결치며 펼쳐져 있다. 남쪽 해안이 가까워졌음을 말해 준다. 드넓은 초원과 낮게 물결치는 구릉은 양떼로 가득하다. 양 3000만 마리, 소 1000만 마리, 사슴 900만 마리…. 가축 숫자가 인구의 10배가 넘는 나라이다. 


넘치는 아시아 이민자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아무리 깊은 시골 마을에도 아시아인들과 이민자들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태국, 터키, 튀니지 등 비백인 국가 출신 이민자들도 남섬 남쪽 끝까지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유색인들이 들어와 산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도 이렇게 깊숙한 변방까지 이민자들이 침투한 것은 보지 못했다. 좋게 얘기하자면 뉴질랜드는 그만큼 열린 나라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라가 오래도록 백인 국가라는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유럽이나 북미보다 아시아가 훨씬 더 가까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는 100년, 20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해진다.

 

 

3일차 (더니든 → 인버카길 → 테아나우 도착)


영어는 영어인데…


오늘도 갈 길이 바쁜 탓에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도시 탐방을 시작한다. 더니든은 ‘남방의 에든버러(Edinburgh of the South)’라는 별칭 그대로 일단 풍광부터 영국 북부 어딘가를 쏙 빼닮았다. 심지어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의 거리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을 정도로 스코틀랜드의 유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난 밤 묵은 숙소의 주인만 해도 그렇다. 스코틀랜드와 뉴질랜드 억양이 두루 섞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매번 한 번 더 말해달라고 “excuse me” “pardon”을 연발해야 했으니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오타고 대학(University of Otago, 1869년 설립)이 자리 잡은 캠퍼스 타운이라서 도시는 우아하고 평온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시 인구 중 학생 인구가 1/10을 차지하는 만큼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도시 분위기 또한 금세 느껴진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올라가는 도로임을 알리는 볼드윈 길의 표지판. 사진 = 김현주 교수

가장 가파른 길의 웃기는 유래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도심은 평탄한 지형이지만 외곽으로는 높은 언덕들이 많은 도시 풍경은 가파른 해안 절벽을 끼고 자리 잡은 웰링턴 등 뉴질랜드의 여러 다른 도시들과 비슷하다. 도시 북쪽 외곽 볼드윈 거리(Baldwin Street)부터 찾는다.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길(world’s steepest street)’로 유명한 곳이다. 눈앞에 닥친 막다른 언덕길은 길지는 않지만 운전자에게 당혹감을 줄 만큼 가파르다. 


성능이 시원치 않은 소형차의 기어를 1단으로 바꾸고 조심스럽게 언덕을 오르니 도시 전경이 눈 아래 펼쳐진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비단 여기뿐만 아니라 곳곳에 가파른 언덕길이 많다. 도시를 건설할 당시 영국 런던의 설계사들이 지형적 특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격자 도로 구조를 추구했고, 시공자들은 그 설계 도면을 받아 충실히 시공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이와 같은 모습이 나왔다고 한다. 참으로 영국인다운 방식이다. 우리나라도 부산쯤 가면 얼마든지 있을 언덕길이지만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길’이라는 포장을 씌워 명물 아닌 명물을 만들어낸 영국인들의 콘텐츠 능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나 보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교회는 입구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색다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앨버트로스 절벽 인근에는 앨버트로스를 소개하는 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앨버트로스 센터


곧 이어 근처 시그널 힐(Signal Hill), 이른바 ‘신호산(信號山)’을 찾는다. 영국이 흔적을 남긴 곳이라면 세계 어디를 가도 있는 평범한 언덕이지만 언덕 위에서 보이는 도시와 항만, 그리고 도시를 감싸고 있는 오타고 반도(Otago Peninsular)의 풍광이 압도적이다. 내친 김에 오타고 반도로 차를 몬다. 그림 같은 작은 마을들, 마을마다 만나는 예쁜 교회와 작은 해변을 연거푸 지나 반도의 동쪽 끝자락 앨버트로스 센터(Royal Albatross Center)를 찾는다. 바닷바람이 매우 거센 해안 절벽이라서 갈매기들은 제대로 날지도 못하지만 앨버트로스는 오히려 상승 기류를 타기 위하여 바닷가 절벽을 여유롭게 서성인다. 날개를 펼치면 3~4m, 몸길이 평균 90cm에 달하는 거대한 앨버트로스가 나는 모습이 참으로 우아하고도 여유롭다.

 

더니든의 시그널 힐에 오르면, 도시를 감싸고 있는 오타고 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테아나우 호수의 한적한 풍경. 넓은 국토에 자연이 좋고 인구밀도는 낮은 뉴질랜드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양들의 행복


인버카길(Invercargill)을 지난다. 금광이 터지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도시는 지금은 뉴질랜드 최남단의 상업, 교통 도시로서 자리 잡고 있다. 더니든과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전통이 강한 곳으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강한 영어의 변종이 나타나 외지인들은 알아듣기 어렵다고 한다. 여기서 테아나우(Te Anau)로 가는 길 또한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양들 수천, 수만 마리를 보며 지난다. 양들도 팔자가 있는 모양이다. 보통 북아프리카나 지중해 연안, 중앙아시아 등 다른 대륙에 자라는 양들은 거친 사막, 거친 바위 절벽 위에서 가시 돋친 딱딱한 엉겅퀴 뿌리를 뜯어 먹으며 생존해야 한다. 그러나 드넓은 평지, 짙푸른 풀이 무한정하게 널려 있는 초원에서 먹고 자는 뉴질랜드 양들은 행복하다. 뉴질랜드 양모가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데는 이러한 환경이 있음을 확인한다.


움직였다 하면 200~300km


아름답기는 하지만 뉴질랜드는 땅덩어리가 너무 크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보통 200km 정도씩 운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남섬은 미국 서부에 버금가는 웅장한 대자연이다. 어제는 370km 운전했고, 오늘도 더니든에서 인버카길까지 210km, 인버카길에서 테아나우까지 150km, 모두 360km를 운전해야 하는 일정이다. 


곧 테아나우 호수가 반긴다. 건너편 산자락 너머로 저녁 해가 호수에 쏟아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휴양지인 이곳 또한 숙박비가 비싸지만 예산이 각박한 여행자들을 위한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도 군데군데 있어 부담을 덜어준다. 공기는 한없이 맑다. 

 

 

4일차 (테아나우 - 밀포드 사운드 왕복 - 퀸스타운 도착)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테아나우에서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가는 외길 94번 하이웨이 120km는 테아나우 호수를 왼쪽에 끼고 북행을 시작한다. 가는 길을 따라 십여 군데 전망대 또는 주차 시설이 있으니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다녀야 한다. 도로는 처음에는 평탄한 길을 지난다. 한없이 넓은 초원 너머로 얼 산(Earl Mountain)과 리빙스톤 산(Livingstone Mt.)이 호수 위에 봉우리를 드리운다. 이름하여 ‘거울 호수’(Mirror Lake), 즉 명경지수(明鏡止水) 아닌가? 비가 오고 하늘이 흐리지만 호수에 비친 산봉우리 모습은 제법 선명하다. 길은 곧 장대한 산맥과 계곡, 투명한 호수로 이어진다.

 

퀸스타운으로 가는 길은, 남섬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사진 = 김현주 교수

토왕성 폭포가 수십, 수백 개?


드디어 고개가 시작된다. 고개 중턱 홀리포드 전망대(Hollyford Lookout)에 서면 발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계곡이 환상적이다. 도로는 밀포드 사운드를 얼마 남기지 않은 호머(Homer) 터널을 지날 즈음 절정에 달한다. 수천 미터 높이 산 정상에서 수십, 수백 가닥의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폭포는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봤던 것보다 장대하다. 우리나라 설악산 토왕성 폭포가 몇 백 개쯤 있다고 보면 된다. 비가 오고 뿌연 날씨이지만 폭포만큼은 더 굵게, 더 세차게 쏟아진다. 밀포드 사운드에 거의 도착할 즈음 ‘The Chasm(틈새)’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자연을 만난다. 골짜기의 작은 틈새(폭 22m)를 뚫고 강물이 폭포가 되어 쏟아진다. 이름은 평범하지만 모습은 장쾌하다. 억만년 폭포수에 깎여 내린 틈새 바위는 맨들맨들 닳아서 윤이 난다.

 

수백 폭포의 향연은 호머 터널 근처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진 = 김현주 교수

야속한 비


마침내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다. 거주민은 없고 방문자들을 위한 편의 시설과 선착장이 전부인 곳이다. 수천 미터 높이 암봉과 폭포가 장관이다. 여기서 피오르드는 바다로 어이진다. 수백 명의 관광객들이 2시간짜리 피오르드 크루즈 탐방에 나선다. 날씨는 여전히 흐려서 무척 아쉽다. 벼르고 별러 오늘 여기에 온 방문자들이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혹자들은 비 오는 날이 밀포드를 탐방하기에 오히려 더 좋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맑은 날과 궂은 날의 밀포드는 전혀 다른 두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조금은 위로 받는다.


밀포드 사운드를 떠나 테아나우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쉴 틈 없이 비가 퍼붓는다. 비가 아니라 폭풍우다. 밀포드 트랙은 못 갈망정 밀포드 사운드 도로변 수십 군데 지점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두세 군데 쯤 골라 트레킹을 하려고 복장과 신발, 멋진 모자까지 준비해 왔는데…. 아쉬움을 달래며 길을 재촉한다. 참고로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은 일단 배나 버스로 일정 지점까지 간 후 트레킹을 시작하여 버스나 배를 타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거나 제3의 지점으로 가는 방식이다.


이름 값 하는 퀸스타운


테아나우에서 퀸스타운까지는 172km, 두 시간 반 거리다. 남섬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는  듯한 아름다운 길이다.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와 남알프스(Southern Alps)로 둘러싸인 퀸스타운은 비싼 호텔, 부티크 상점으로 가득한 인구 18만의 번잡한 도시이다. 시내 중심 나이트클럽은 긴 줄에 끼어 입장을 기다리는 세계 각국 젊은이들의 집합 장소로도 유명하다. 1860년 금광 개발로 몰려든 유럽인들과 중국인들로 도시가 번성하기 시작했고, 금광이 시들어진 후 조용한 시골 마을로 남아 있다가 1947년 뉴질랜드 최초의 스키장이 들어선 이후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검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와카티푸 호수의 절경. 사진 = 김현주 교수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의 물결이 오늘 매우 드세다. 아름다운 호반 도로를 잠시 달리다가 돌아온다. 퀸스타운에서 편도 50분 거리인 글레노키(Glenorchy) 가는 길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소문이 나있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시도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퀸스타운으로 이어지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길을 지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즐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멋진 도시의 자연 경관은 장대, 장엄, 환상…. 그 어떤 최상급 형용사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호숫가 경관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왜소해진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호수는 해가 비추는 방향에 따라 코발트, 에메랄드 색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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