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가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면서 이 영화에 촬영용 차량을 제공한 현대자동차의 광고 효과도 커질 전망이다. 이제껏 할리우드 주류 액션 대작들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위주로 협업을 해왔다. 마블은 아우디와, 최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은 BMW와 오랜 파트너십을 이어갔다. 이런 환경에서 슈퍼히어로 트렌드의 대표주자인 마블과 현대차의 이번 파트너십은 다소 낯설어 더욱 주목된다.
‘앤트맨과 와스프’ 속 현대차
지난 4일 국내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가 26일까지 53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흥행 과정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프랜차이즈의 국내 누적 관객 1억 명 돌파라는 기록도 세워졌다. 세계적으로는 약 50개 나라에서 3억 6018만 달러(한화 약 4031억 원)의 극장 수입을 올리고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의 흥행에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의 표정도 활짝 폈다. 코나, 신형 싼타페, 벨로스터 등 다양한 현대차 라인업이 이번 영화에 존재감 있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앤트맨과 와스프’의 글로벌 매출액을 우리나라 입장료 기준으로 대략 환산하면, 영화 개봉 후 2~3주 사이 전 세계 50개국에서 4633만 명 이상이 이 영화를 봤다고 추정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현대차가 엄청난 광고 효과를 얻었다는 의미다.
먼저, 소형 SUV 코나는 주인공 스콧(앤트맨, 폴 러드 분)의 전 처 가족이 타는 차량으로 소개됐다. 해당 장면에서 코나는 화면 중앙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정면으로 보이도록 배치됐다.
신형 싼타페는 초반부에 여주인공인 호프(와스프, 에반젤린 릴리 분)가 직접 운전한다. 알고 보니 장난감처럼 사이즈를 축소한 상태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는 흥미로운 반전을 드러내며 주목을 끈다.
버튼 하나로 물건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은 ‘앤트맨’ 시리즈만의 독특한 설정이다. 이번 영화에는 이런 기술이 자동차 추격전 장면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일반적인 자동차 추격전에서는 차와 차가 충돌할 수 있는 방향은 전후좌우가 전부인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선 크기를 급격히 축소해서 상대 차 밑으로 들어간 뒤, 그 상태에서 크기를 원상복구하며 상대 차를 뒤집어 버리는 독창적인 액션이 나온다.
클라이맥스의 자동차 추격전에서 주역으로 활약하는 차는 벨로스터다. 특별히 보라색 래핑과 노란색 불꽃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벨로스터는 ‘벨로스터 앤트맨 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특히 벨로스터 첫 등장 장면에서 주요 캐릭터인 루이스(마이클 페냐 분)가 다양한 차종 중 한 대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한 눈에 반해 선택한다는 설정으로 그려져 벨로스터에 대한 주목도가 더 높아졌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의 흥행에 따른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7월 1일에는 영화의 개봉 시기에 맞춰 영화 속 장면을 차용해 코믹하게 연출한 벨로스터 앤트맨 카 TV CF를 제작해 공개했다. 이어 19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2018 코믹콘에 참가, MCU 캐릭터 최초의 콜래버레이션 양산 차인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을 전시했다.
007의 애스턴 마틴과 영국의 자존심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협업은 오랜 전통이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영화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고가의 소품인 자동차를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사용하고 싶고, 자동차 업체는 신차를 효과적으로 널리 광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액션 장르처럼 대중성 짙은 영화일수록 광고 효과가 크고, 비싼 차가 나올수록 흥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액션 영화 팬들 중에는 자기가 평생 타 볼 기회조차 없을 것 같은 고가의 슈퍼카가 시원하게 박살나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목격하는 쾌감을 원하는 이들도 많다. 요즘 할리우드 액션 영화 제작비가 1~2억 달러를 넘나드는 수준으로 상승한 것은 이런 원초적 욕구 때문이기도 하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차피 큰 돈 들일 것, 기왕이면 대중의 관심이 높은 더 비싼 차를 등장시키는 편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MCU 영화처럼 개봉만 하면 전 세계 수천만 명이 보는 영화는 그 광고 효과도 엄청나다. 슈퍼히어로가 타는 차가 추격전에서 엄청난 성능까지 과시하는 모습을 보름 만에 세계 5000만 명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다. 새 차 서너 대쯤 뒤집는 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투자로 여겨진다.
액션 프랜차이즈와 고급차의 대표적인 조합은 '본드 카'다. 영국 정보부 스파이인 007 제임스 본드는 공무원으로 중산층에 속하겠지만,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직업상 각국 고위층 인사나 뒷세계의 실력자들을 상대할 일이 많다. 이런 세계에서는 잘생긴 외모나 멋진 수트보다 얼마나 비싼 차를 타는지가 그의 신뢰도를 좌우한다. 그래서 영국 정보부는 007에게 매 영화마다 벤틀리, BMW 같은 최고급차를 제공한다. 악당을 발견하면 급히 아무 차나 훔쳐 타고 쫓아야 하는 상황도 많은데, 고급 파티장 주변에서는 십중팔구 슈퍼 럭셔리한 자동차를 타게 된다.
007 프랜차이즈는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인 애스턴 마틴과 주로 파트너십을 맺어 왔다. 이언 플레밍 원작 소설부터 애스턴 마틴 특정 모델을 이미 언급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 영국 영화가 영국 차를 소개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최초의 007 소설인 ‘카지노 로얄’에는 애스턴 마틴이 아닌 벤틀리가 등장했지만, 숀 코널리의 첫 영화 '살인 면허'부터 본드 카 대부분은 애스턴 마틴이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5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기 시작한 1990년대, 007 프랜차이즈는 치솟는 제작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BMW 차량을 본드카로 사용했다. ‘골든 아이’(1995), ‘네버 다이’(1997), ‘언리미티드’(1999) 등의 영화에는 BMW Z3, 750iL, Z8 등이 본드카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영국 여론은 감히 독일차가 007 영화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고, 이런 압박 때문에 결국 애스턴 마틴이 본드 카의 지위를 회복하게 됐다.
톰 크루즈, BMW 바이크로 파리 도로 역주행
2010년대 들어 BMW는 영국 스파이 대신 미국 스파이를 지원하기로 한다. 1996년 첫 영화를 시작으로 2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 BMW는 4편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부터 정식 파트너십을 맺고 촬영용 차량을 적극 공급하고 있다.
‘고스트 프로토콜’에는 2011년형 X3나 6시리즈 컨버터블 등 여러 종류의 BMW 모델들이 등장했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현재의 전기 스포츠카 BMW i8에 영감을 준 비전 이피션트 다이내믹스 콘셉트였다. 기존에 본 적 없는 독특한 미래지향적 디자인은 관객의 시선을 빼앗았고, 특히 HUD(Head Up Display) 방식으로 차 앞 유리에 투영되는 내비게이션과, 이 내비게이션을 터치가 아닌 손동작으로 조작하는 기술이 화제가 됐다.
당시 일부 관객이나 언론은 해당 차량과 내비게이션 기술이 지나치게 낯설고 미래지향적이어서 드라마 몰입을 해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해당 디자인은 현재 시판되는 전기차에 적용됐고, HUD 및 손동작 제어 기술도 다수의 모델에 적용되는 등 BMW가 영화에서 제시했던 비전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2015에 나온 5편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7월 25일 개봉한 6편 ‘미션 임파서블: 폴 아웃’에도 5세대 M3, 뉴 M5 등 BMW 대표 모델들이 긴박하고 다이내믹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친다. 특히 ‘로그네이션’의 산악도로 추격전이나 ‘폴아웃’의 파리 시내 한복판 추격전에는 BMW 모토라드의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 S 1000 PR, R nineT 스크램블러 등이 등장해 아무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모터사이클 스턴트를 선보인다.
각 영화에 등장한 BMW 차량들은 해당 장면의 맥락에 맞는 개성을 잘 드러낸다.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6시리즈 컨버터블은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빌딩 주변에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 등장한다. 고글과 마스크가 없으면 한 걸음도 전진하기 힘든 모래 폭풍 속에서 컨버터블이라도 타고 악당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긴박함이 강조된다. 이 BMW는 비록 차의 형태가 잘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다.
‘폴 아웃’에 등장하는 R nineT 스크램블러 모터사이클은 개선문 원형 교차로 역주행을 비롯해 파리 시내를 헤집고 다니며 추격전을 펼친다. 이 모델의 원형인 R nineT는 2013년 출시 후 레트로 바이크 붐을 불러온 모델인 만큼, 그 디자인과 파리의 19세기 풍 배경이 잘 어울린다.
그런데 파리 시내는 아스팔트 도로보다 19세기에 깔린 쇄석도로가 아직도 많이 보존되어 있다. 말이 보존이지, 노면 상태는 비포장 길이나 다름없이 울퉁불퉁해 긴박한 추격전에서는 더욱 위험한 환경이다. 그런데 마침 톰 크루즈는 스크램블러를 타고 나온다. 이 이름만으로도 온로드 뿐 아니라 오프로드 주행에도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델이다. 외모부터 성능까지 '파리 도로 추격전'에 딱 어울리는 모터사이클이라 할 수 있다.
토니 스타크와 아우디의 궁합
독일의 또 다른 명차 브랜드인 아우디는 ‘아이언맨’에서부터 마블 스튜디오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MCU 영화에 꾸준히 등장했다. MCU는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된 대형 프랜차이즈다. 10년 동안 ‘앤트맨과 와스프’까지 스무 편의 영화로 전 세계에서 약 172억 6230만 달러(약 19조 3200억 원)의 누적 흥행 수익을 올리고 있다.
2008년은 아우디의 슈퍼카 R8이 처음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아우디는 좀 더 스포티하고, 세련되고, 첨단 테크놀로지를 갖추었다는 이미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세계 최대의 무기 제조업체이자 최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테크 그룹인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오너 2세 CEO이며 천재 과학자이자 세련된 플레이보이다. 아우디가 추구한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진다.
아우디 R8 시리즈는 토니 스타크가 주로 타는 차량으로, '아이언맨' 1~3편 내내 최신 모델이 등장한다. 다만 토니가 재벌이자 많은 럭셔리 자동차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 상 다른 브랜드 차량도 종종 등장한다. 특히 혼다 어큐라 NSX 시리즈가 종종 비중 있게 등장했다.
아우디와 마블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아이언맨' 외의 MCU 영화로 계속 이어졌다. 특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 블랙 팬서가 펼치는 유명한 터널 추격전 장면에서는 터널 안이 오로지 아우디 차량들로만 꽉 차 있는 신기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에는 풀체인지 된 신형 A8이 나오는데, 영화를 통한 최초 공개였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아우디의 자회사인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몰고 다니는 것으로 주인공의 부와 자존심을 설명했다.
이처럼 아우디는 마블의 재벌 및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대변하며 최고급, 최첨단, 최강 등의 이미지를 표현해왔다. 그런데 마블의 최신작 ‘앤트맨과 와스프’에는 아우디가 아닌 현대자동차가 주된 자동차 제공사로 합류했다.
현대차의 달라진 위상과 속사정
2000년 현대 프레스토는 줄리아 로버츠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린 브로코비치’에 등장했었는데, 이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싱글 맘의 궁핍한 현실을 대변하는 자동차였다. 지금 넷플릭스의 MCU 드라마 '데어 데블'이나 '디펜더스' 등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제네시스가 등장해 우아하고 날렵한 모습을 자랑한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의 위상이 21세기 들어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아우디를 능가할 정도의 프리미엄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8년 미국에서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의 라이벌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대중적인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뛰어난 전장 기술력과 보편적인 드라이빙 성능을 갖추고, 합리적인 가격 및 후한 서비스 정책을 앞세워 선전해왔다.
그런데 현대차의 지난해 미국 시장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5%나 감소했다. 미국 전체 자동차 수요의 65%가 픽업을 포함한 SUV인 데 비해 지난해까지 현대차는 미국에서 액센트부터 제네시스까지 승용차만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고, SUV는 투싼과 싼타페뿐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전략은 SUV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따라 현대차는 2020년까지 코나, 코나EV, 싼타페 TM, 투싼 성능 개조 모델, 넥쏘 차세대 수소전기차 등 총 8개 SUV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전작 ‘앤트맨’도 그랬지만 ‘앤트맨과 와스프’는 MCU 영화들 중 가장 가족애를 중요하게 다루는 따뜻한 영화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으며, 액션 장면에서도 긴박한 스릴보다 코믹한 기조를 더 강조한다. 주인공 스콧은 가난해서 금고털이를 했던 서민이고, 열 살의 딸아이와 놀 때가 가장 행복한 아빠다.
이런 스토리 때문에 이 영화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럭셔리 라인인 ‘제네시스’나 최첨단 수소차가 굳이 필요 없다. 대신 가족과 함께 탈 차로 누구나 한번쯤 구매를 고려해볼 만한 중소형 SUV와 해치백 모델을 내세우면 된다. 지금 SUV 공세를 시작하려는 현대차에게 가장 필요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처럼 '앤트맨과 와스프'와 현대차의 파트너십은 영화 스토리와 캐릭터, 자동차의 이미지 등이 잘 맞아 떨어졌고,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마블 영화를 통해 현대차의 매력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매우 기쁘다"라며, "현대차는 앞으로도 고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수 있도록 세계적으로 높은 영향력과 파급력을 지닌 영화를 활용해 다양한 마케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