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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아시아 젊은 작가 4명이 현 시대에서 발견한 ‘시차적응법’

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호텔서 그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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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0호 김금영⁄ 2018.08.06 15:43:06

'시차적응법'이 열리는 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호텔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아라리오갤러리 라이즈호텔이 ‘시차적응법’을 전시 주제로 끌어 왔다.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 작가 4명이 참여하는 그룹전을 10월 7일까지 연다.

 

일반적으로 시차적응은 세계 각 지역마다 나는 시간 차이에 익숙해지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시차적응은 단지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와 끊임없이 접촉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거나 또는 극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접촉하고 타협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 이렇듯 삶의 새 좌표를 설계해 나가는 여정을 시차적응이라는 차원으로 바라보고 접근했다”고 말했다.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파워 유닛'. 1998년 민주화 운동으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하야하던 시기 여러 논쟁이 오갔던 인도네시아 내부의 혼란된 상황을 담은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즉 전시에서 말하는 시차는 단순 시차(時差)가 아니라 하나의 물체 또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로서의 시차(視差)로도 볼 수 있겠다. 수많은 간극이 존재하는 시차에 대항해 다양한 시각 언어로 적응해 나가는 작가 4인의 노력이 이번 전시에 구성됐다. 국내 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4인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차에 접근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인도네시아 작가 좀펫 쿠스위다난토의 경우 자신이 살아 온 환경 속 직접 경험한 시차에 접근한다. 그는 오랜 식민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인도네시아 특유의 복잡한 문화적 풍경과 사회·역사적 구조 그리고 피식민인으로서의 애환과 그 경계공간에서의 생존과 적응에의 고민까지 다양한 관심을 설치작품과 영상작품에 펼친다. 좀펫은 “시차는 시간 차이를 뜻하지만 그 범위가 넓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시차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 내부의 문화 간 격차에서 발생됐다”고 말했다.

 

좀펫 쿠스위다난토, '온 파라다이스' 시리즈. 2002년 202명의 사망자와 209명의 부상자를 낸 발리 폭탄 테러범이 만든 음악이 6분 30초짜리 영상에 흘러나온다.(사진=아라리오갤러리)

‘파워 유닛’은 1998년 민주화 운동으로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 하야하던 시기 여러 논쟁이 오갔던 인도네시아 내부의 혼란된 상황을 담은 작품이다. 파리가 앵앵대는 것 같은 소리를 배경으로 여러 복장의 티셔츠에 확성기를 들거나 박수를 치고 깃발을 흔드는 등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형상화했다.

 

좀펫은 “당시 민주화 바람과 동시에 새로운 정권을 꿰차려는 세력의 욕심이 충돌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 모든 행위엔 직접적인 실체가 존재하지 않아 마치 유령처럼 떠돌며 메아리 같은 목소리들이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말을 마구 뱉어내기에 바빴다”며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시대에 적응하려 끊임없이 애썼다”고 설명했다.

 

주 시앙민은 중국 동시대 젊은이의 모습과 행태, 그리고 그들의 감정 상태가 심리적 불안감을 포착한다. 해당 그림엔 권투 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사진=김금영 기자)

‘온 파라다이스, 온 러브’는 논쟁적 작품이다. 2002년 202명의 사망자와 209명의 부상자를 낸 발리 폭탄테러의 테러범이 만든 음악이 6분 30초짜리 영상에 흘러나온다. 좀펫은 “테러리스트가 감옥에서 죽기 전까지 남긴 시, 노래 등을 바탕으로 작업한 작품이다. 이 테러리스트가 ‘테러는 분명 잘못됐으나 인도네시아의 삶 자체가 테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상황 속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좀펫은 한쪽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하기보다는 극과 극의 상황 속 지점에서 존재하는 시차에 집중했다.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시차적응’

 

주 시앙민의 작품이 전시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주 시앙민은 정치·경제적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중국 동시대 젊은이의 모습과 행태, 그리고 그들의 감정 상태나 심리적 불안감을 포착해 그림으로 그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권투를 하거나 문신을 한 사람의 신체를 부각한 작품을 선보인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이 눈길을 끈다.

 

그는 “내 작업의 주제는 저항에 있다. 중국 청년들에게서 저항 문화의 흐름을 읽었고, 이를 상징하는 매개체를 인간의 신체에서 발견했다. 사람들은 인간을 작은 존재로 인식해 작게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듯 작게만 봤던 인간의 신체에서 발견한 힘이 흥미로웠다. 이런 모습을 권투를 하거나 문신을 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심래정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해 온 '식인왕국'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를 펼친다.(사진=김금영 기자)

아라리오갤러리 측은 “작가는 몸에 문신을 한 젊은이들의 형상을 느리고 나태하게 표현하는 반면, 권투하는 젊은이들은 마치 너무 빠르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은유하듯 속도감 있고 거칠게 표현한다”며 “회화라는 특정 매체를 통해 중국 동시대에 존재하는 시차를 사유하는 작업이 돋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작가 심래정과 백경호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온 노력들을 작품으로 선보인다. 심래정은 지난 3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는 ‘식인왕국’의 세 번째 이야기 ‘식인왕국: 심령수사’를 선보인다. ‘식인왕국’ 시리즈가 천착해 온 이야기는 바로 ‘삶과 죽음’이다. 그는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삶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시차적응법이었다”며 “삶과 죽음은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식인왕국’ 시리즈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심래정의 '식인왕국: 심령수사'가 설치된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첫 시리즈에서 식인행위를 하는 작은 섬 이야기를 보여줬고, 두 번째 시리즈에선 식인왕국에서 사람들을 식재료로 삼아 돌아가는 공장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육 통조림의 식재료로 쓰인 희생자 모넬라를 통해 죽음 이후 사후세계까지에 대한 관심을 벽화, 드로잉, 영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품 속 모넬라는 이미 죽음에 이른 존재이지만, 그 역동적인 모습은 생생한 삶의 역동성과도 닿아 있다. 서로 반대의 개념 같지만 맞닿아 있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심래정은 자신이 발견한 시차에 접근한다.

 

백경호는 동그라미, 네모 캔버스를 분절 및 조합하며 전시장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작품이 녹아드는 과정에 집중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백경호는 공간과 캔버스의 특징을 살린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처음 시차적응법이라는 주제를 듣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낼까 고민했다. 그 결과 내 작업실에 있던 작품들이 전시 공간으로 옮겨져 와 새로운 공간에 적응해 가는 과정 자체에서 시차적응법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세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한 나름의 시차적응법, 특히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보여준다면, 작가는 작업을 할 때 새로운 매체를 맞닥뜨리고 이에 적응해 나가는 시차적응법을 표현하는 것.

 

백경호의 '스마일 피규어'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그림들.(사진=김금영 기자)

백경호는 회화라는 큰 구조 안에서 이미지나 색채들을 거침없이 매치하고, 인간을 형상시키는 동그라미, 네모 캔버스로 캔버스를 분절 및 조합하며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시차적응법에 주목한다. 분절된 동그라미와 네모틀의 간단 조합이 만드는 윤곽은 천사 혹은 인간이라는 구상적 형상을 보는 즉시 명확히 제시하지만, 그 윤곽선 내부를 가득 채운 색채, 질감은 지극히 추상적이다. 그 즉각적 대비는 추상과 구상, 표출과 자제, 자유과 규율 등의 경계와 그로 인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작가가 2011년부터 발전시켜오고 있는 시리즈 ‘스마일 피규어’는 멀리서 보면 동그란 캔버스가 얼굴, 네모난 캔버스가 몸통을 연상케 해 마치 인간이 서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는 “특정 고정화된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을 실험하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과정을 현재도 거치고 있다”며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여기서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조차 새로운 시차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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