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4호 윤지원⁄ 2018.08.31 12:03:37
일자리 창출의 중심 축이 바뀌고 있다. 하반기 공채 시즌이 시작되면서 대기업들의 채용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일부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인력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져 일자리 문제 해소에 큰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일자리는 규모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대기업 못지 않아 우수한 인재들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기업협회와 제주시가 공동 주최한 제18회 벤처썸머포럼이 29일 하얏트 리젠시 제주에서 개막했다. 이날 개회식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고용의 축이 대기업에서 벤처-스타트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대기업은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일자리는 벤처에서 만들어지고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진다. 다수의 1000억 벤처가 등장할 때 한국경제는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일부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기업 못지않게 많은 인력을 채용하고 있어 꽉 막힌 정부의 일자리 현황판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O2O 스타트업, 1년 만에 직원 수 2배 늘린다
가장 눈에 띄게 고용을 늘린 벤처-스타트업 기업으로는 최근 빠르게 성장한 음식 배달 및 숙박 등의 온·오프라인 연계(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 앱 업체들이 꼽힌다.
음식 배달앱 ‘배달의민족’과 프리미엄 외식 배달앱 ‘배민라이더스’ 등을 서비스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약 200명을 채용한 데 이어 올해는 약 40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가 선정·시상하는 ‘2018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100개 기업에 선정된 기업인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매출 1626억 원, 영업이익 217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91.6% 성장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아홉 배 가까이 늘었다. 심지어 2년 전엔 적자가 200억 규모였다.
회사가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할 때 김봉진 대표 포함 직원이 5명에 불과했으나, 올해 드디어 1000명을 넘길 예정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달 건수가 약 1800만 건으로 늘면서 서버 개발자 등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인공지능(AI)·자율주행 등 기술 투자를 확대해 전에 뽑지 않던 분야의 전문가들도 대거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박 및 액티비티 예약 앱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은 올해 초 목표로 내세웠던 200명 신규 채용을 지난 8월 조기 달성하고 지난 30일 150명을 추가로 채용하는 하반기 공채에 돌입했다. 이 회사의 임직원 수는 이달 현재 350명을 넘긴 정도인데, 올해 말이 되면 1년 만에 임직원 수가 2배 이상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위드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시장 지배력을 다지기 위해 하반기 대규모 채용에 돌입한다”며 “빠른 사세 확장에 따른 채용 규모의 확대 필요성이 예상보다 커졌기 때문에 당초 목표했던 채용 규모를 지난 8월 초과 달성했고, 종합 숙박과 액티비티, B2B 등 사업 확장에 속도가 붙고, 글로벌 사업 준비 작업이 빠르게 가시화되면서 인재 확보에도 속도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배달 앱 ‘요기요’와 ‘배달통’, 프리미엄 외식 배달 앱 ‘푸드플라이’ 등을 운영하는 알지피코리아도 올해 250명의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체 채용 규모는 이보다 더 늘어날 예정이다. 알지피코리아의 임직원 수는 배달 라이더를 제외하고 650명 정도인데, 신규 채용이 완료되면 인력 규모가 급격히 커지므로 현재 사옥이 위치한 강남역 부근 KG타워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12월 서초역 부근의 마제스타시티 건물의 현재보다 3배 넓어진 공간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숙박 앱 ‘야놀자’도 지난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1005억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대규모 인력 충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280명을 채용한 데 이어 올해도 R&D 직군 상시 채용 외에 사업 개발, 마케팅, 영업 기획, 건축 시공, 디자인, 경영 지원 부문 등에 총 300여 명을 목표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히트작’ 낸 신진 게임사, 일자리 창출 일조
나날이 성장해가는 게임 업계도 올해 채용이 늘었다. 그동안 연간 수백 명을 채용하는 사례는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게임즈 등 대형 게임사에 집중됐으나 글로벌 흥행작 출시가 이어지면서 신진 게임사들도 일자리를 대거 쏟아내고 있다.
PC MMORPG ‘검은사막’과 모바일 MMORPG ‘검은사막 모바일’을 서비스 중인 펄어비스는 하반기에 약 200명을 목표로 신규 채용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분기 ‘검은사막 모바일’ 출시 효과로 매출 1127억 원, 영업이익 548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한 만큼 내년 출시 예정의 신규 프로젝트 및 2021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 등에 개발 인원을 충원할 필요가 있어서다. 펄어비스 관계자는 6월말 기준 직원 수가 513명인데 올해 말 700명까지 늘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작년과 비교하면 두 배 규모다.
배틀로얄식 게임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펍지의 모회사 블루홀스튜디오도 이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 3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끈 데 힘입어 대규모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 블루홀은 지난해 400명을 채용한 데 이어 올해에도 300여 명 채용을 목표로 인재 확보를 이어가고 있다.
상장 중견기업·일부 대기업보다 벤처-스타트업 채용 많아
이들 벤처-스타트업의 채용 규모는 기업별로 수백 명 수준이다. 국내 20대 기업이 하반기 공채에서 신규 채용하는 인원이 3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적은 수로 보인다.
하지만 한꺼번에 수천 명 이상 1만 명대의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은 10대 그룹에서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그룹 등 몇 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기업들은 앞서 소개한 벤처-스타트업과 고용 규모가 별반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포스코의 하반기 공채 예상 규모는 900명 정도고, 대한항공은 하반기 채용 목표가 600명, 신입 공채 인원이 200명이다.
인크루트가 국내 2258개 상장기업의 하반기 채용 계획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장기업의 신규 일자리 수는 4만 7580개이며 이중 93.8%인 4만 4648개가 대기업 채용이다. 상장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채용은 각각 전년 대비 65.2%, 54.8% 줄어든 1780명과 1152명에 불과하다. 앞서 예로 든 6개 스타트업만으로도 상장 중견기업·중소기업의 전체 채용 규모를 넘는다.
이들 스타트업의 채용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은 대부분이 지난 1~2년 사이 임직원 수를 2배 이상 늘릴 정도로 공격적인 채용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 규모를 비교하면 대기업과 상대가 안 되는 스타트업들이 이처럼 인원수에서 대등한 대규모 신규 채용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여러 관계자들이 밝힌 것처럼 ‘빠른 성장세’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를 반대로 대기업에 적용해보면, 임직원 수만 명씩 거느린 대기업 상당수가 일자리를 대규모로 늘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성장세가 둔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홍 장관이 지적한 ‘대기업의 한계’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신규 채용을 주저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경영 상황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 규모가 큰 만큼 리스크도 크기 때문에 규모 확장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좋은 직장 문화로 우수 인재 몰려
벤처-스타트업은 이미 국내 산업의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국내 벤처 기업 종사자는 2016년 기준 76만 4300명이다. 이는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 등 총자산 기준 6대 대기업그룹의 총 종업원 수를 합친 규모와 맞먹는다.
상당수 벤처-스타트업들은 일자리의 질도 대기업 못지않게 좋다. 게임업계 상위 업체들의 직원 평균 연봉은 5000만 원 가까이 된다.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신입 개발자에게 초봉 5000만 원을 제시했으니 급여 수준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창의력을 극대화시키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나 ‘워라밸’ 트렌드를 주도한 사내 복지는 거의 모든 성공한 벤처-스타트업의 공통된 강점이다. 우아한형제들과 위드이노베이션 등은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전부터 주 4.5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데다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 보장된다. 도서 구입비나 헬스 비용 무한 지원, 전문 요리사의 사내 식당 식사 무료 제공 등 사내 복지와 직원 자기계발에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80%가 벤처-스타트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문화와 사내 복지 등이 주된 이유로 꼽혔지만,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는 성취감도 중요한 동기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드이노베이션 한 구성원은 “첫 직장이 소위 잘 나간다는 언론사였으나, 이직하면서 이 회사를 꼭 내 손으로 상장시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의욕적으로 밝혔다.
위드이노베이션 관계자는 200명의 올해 채용 목표를 조기 달성하는 과정에서 1~7월 평균 입사 경쟁률이 지난해 동기 대비 4배 가까이 올랐으며, 개발/기획 직군은 6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직무는 경쟁률이 1300 대 1을 넘었다고 밝혔다. 우수한 인재 선발로 기업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늘어난 일자리에 다시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ICT 스타트업 관계자는 “구글, 페이스북 등 현재 글로벌 시총 톱클래스를 장악한 기업 대부분이 스타트업에서 급격히 성장한 기업들이며, 네이버, 카카오 등의 국내 기업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며 “전체 규모 면에서도 이미 몇몇 대기업과 맞먹는 벤처-스타트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제를 이끌 주역일 뿐 아니라, 고용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