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김영두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부이사장) 그가 돌아왔다. 얼마만인가. 그는 10여 년 간격으로 출현과 잠적을 반복해왔다. 10여 년 전, 그때도 골프라운드를 했었다. 이맘때 가을날이었다. 내기를 했는데, 따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가 약간 땄다. 삐쳤는지, 그 후로 그는 또 어디론가 가버렸다. 물론 작별의 인사도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듯, 전화선 저쪽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오고는 했다. 외계인의 교신 같은 이방인의 목소리를 세 번쯤 들은 후에,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내 주소록에서 삭제했다. 이메일은 차마 못 지웠다.
지난 봄, 내가 책을 냈다. ‘북 콘서트’ 행사를 열면서 그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뜻밖에도 그의 이름과 축하글이 실린 리본을 달고 화환이 참석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었단 말이냐, 풀렸던 인연의 끈이 또 맺어졌다.
며칠 전, 교외에서 새벽 골프 라운드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운전 중이어서, 음성으로 ‘오케이’ 답장을 보냈더니, 그가 뛰어나왔다. 잿빛으로 구겨진 하늘에는 술기운이 가득 끼어있었다.
“거긴 비 안 왔어?”
10년의 세월이 빠르게 역류했다. 그는 술이 고팠는지 서둘러 맥주부터 주문했다.
“재밌었어? 몇 타나? 동반자는 누구?”
아직 골프 이야기로 즐거운 모양을 보니, 나하고는 진즉에 끝난 허니문이, 골프하고는 꽤 오래 지속되나보다.
“그러니까 우리 둘만 한 번 치자니까.”
내가 오늘의 라운드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그가 식탁을 탁 내려치며 말했다.
“누가 싫댔냐고.”
우리가 자주 접하는 영화나 책 속에서는 혼자 혹은 둘이 골프 라운드를 한다. 나는 미국의 동네 퍼블릭 골프장에서 하루 종일 혼자 골프로 노닐었던 적도 있다. 한 라운드 그린 피가 30달러쯤 했다.
나도 그도 ‘우리 둘만’ 골프 라운드를 하고 싶다는 소원은 일치한다. 아직 못다 갚은 은혜와 원한이 남아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소원성취의 길이 열리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들르는 골프장마다 은밀하게 물어본다.
“2인 플레이 안 되나요?”
언제나 거절의 답이 돌아온다.
“음침한 숲으로만 보내지 말고 곧게 사는 법을 배워봐”
그가 나와 둘만의 골프 라운드를 극구 주장하는 까닭은, 자신의 골프 실력이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쫌 거시기하다고 한다. 여자 앞에서 부끄럼도 탄다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댄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비천한 실력을 다 품어 안아 줄 만만한 상대이며, 또한 그는 내 앞에서 부끄럼도 안 타는, 나는 여자도 아닌 거시기 머시기란 말인가.
10년 전에도 그는 거의 매 홀 화려한 OB를 날렸다. 나는 그에게, 안 해도 되는 힘 자랑 하려다 음침한 숲으로 공 보내지 말고, 반듯이 곧게 사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했었다.
“한국에서는 2인 플레이 어려워. 다른 2인과 조인을 한다면 모를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했었지만, 그의 돈을 따먹어서 기분이 으샤샤 좋았었다. 그는 그 원한을 풀자 함인가.
“나는 너의 동반자가 되고 싶어, 소울메이트. 아냐… 우리 골프 이야기 해…”
구겨진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그의 목소리는 술로 젖어있다.
“나도 그대의 좋은 골프 라운드 동반자가 되고 싶어. 말뿐이 아닌.”
나는 그와 지나온 매 홀을 더듬어 본다. 내가 진정 그의 좋은 동반자였나 반성도 해본다. 그리고 어찌하면 당신의 더 좋은 동반자가 될까… 화두를 붙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