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렌터카 업계 2위인 SK네트웍스가 3위 AJ렌터카를 인수하면서 롯데렌탈과 1위 경쟁을 하게 됐다.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4위였던 SK네트웍스가 초고속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공격적 경영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이 나온다. 반면, 1위를 수성해야 할 롯데렌탈 측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공석이 길어지며 M&A 등 거시적 전략 구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분간은 롯데렌탈과 SK네트웍스의 양강 구도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업계 1위가 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2위 SK네트웍스, 3위 AJ렌터카를 삼키다
9월 21일 SK네트웍스 이사회는 AJ렌터카 주식 935만 3660주(지분율 42.24%)를 총 금액 3000억 원에 취득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AJ렌터카 측도 같은 날 최대주주인 AJ네트웍스와 일부 특수관계자가 보유 주식 전량을 SK네트웍스에 매도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양측의 합병은 실사와 기업결합 신고, 공정거래위원회 승인 등을 거친 후 오는 12월 31일 최종 주식 양도가 이뤄지면 마무리된다.
국내 렌터카 업계 2위 사업자가 3위 사업자를 흡수하는 대형 M&A인지라 업계에서는 앞으로 국내 렌터카 업계가 1위 롯데렌탈과 2위 SK네트웍스의 양강 구도로 짜여질 것이라 예측하는 분위기다.
증권 분석가들은 SK네트웍스의 공격적 M&A 전략을 높이 평가했다. 손윤경 SK증권 연구원은 “렌터카 시장에서 양강 체제를 형성하게 됨은 물론 잠재적 대형 경쟁자의 등장 가능성을 축소시켰다”며 “렌터카 시장에서 (SK네트웍스의) 경쟁력이 현저히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렌터카 시장 전략이 외형 확대에서 수익성 강화로 전환될 전망”이라며 “SK네트웍스의 고객은 개인과 장기 중심인 반면 AJ렌터카는 법인과 단기 위주라 합병 시너지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최신원 회장 취임 후 급성장… 합병 시너지 기대
전문가들의 예측처럼 SK네트웍스는 AJ렌터카 인수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까?
2018년 상반기 기준 각 사의 렌터카 보유 대수는 1위 롯데렌탈(구 KT렌탈)이 19만 대, 2위 SK네트웍스가 9.4만 대, 3위 AJ렌터카가 7.7만 대다. 이 중 2위와 3위가 합쳐지므로 인수 후 SK네트웍스의 렌터카 보유 대수는 17.2만 대로 늘어나게 된다. 여전히 KT렌탈보다는 조금 적지만 이전의 '크게 차이나는 2위'에서는 탈피하는 셈.
2015년까지만 해도 SK네트웍스가 업계 4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급성장의 이면에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역할이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최 회장이 SK네트웍스 회장으로 취임한 2016년을 기점으로 종전 3위였던 현대캐피탈을 뛰어넘었고, 지난해에는 2위 AJ렌터카까지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1위 롯데렌탈과 비교하면 격차가 10만 대 수준으로 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 회장이 던진 승부수가 이번 AJ렌터카 인수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M&A를 통해 SK네트웍스와 롯데렌탈의 보유 대수 격차는 2만 대 수준으로 줄었다. 점유율도 롯데렌탈 24.3%, SK네트웍스 21.8%(SK네트웍스 12.0%, AJ렌터카 9.8%)로 비슷해졌다. 이에 따라 업계 전문가들은 두 강자가 기존의 외형 키우기 전략에서 수익성 강화 전략으로 방향을 수정할 것으로 예상한다.
SK네트웍스와 AJ렌터카는 주력 시장이 달라 합병 시너지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SK네트웍스는 개인과 장기 고객이 많은 반면, AJ렌터카는 법인과 단기 고객이 많다. 지역적으로 AJ렌터카 점유율이 높은 제주도를 안정적 시장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분야는 중고차 판매다. 그간 SK네트웍스는 운영 대수 증가에 집중하느라 중고차 판매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그 결과 관련 매출과 이익 기여도가 높지 않았다. 반면, 롯데렌탈과 AJ렌터카의 중고차 판매 부문의 매출 비중은 20% 이상이며, 이익률도 10% 내외일 정도로 높다.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SK네트웍스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운영 대수를 확보한 만큼 앞으로는 중고차 판매에서의 구조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는 질적 개선이 기대된다.
롯데렌탈, 신동빈 회장 구속으로 불리
SK네트웍스와 AJ렌터카의 M&A 소식에 가장 긴장하는 건 1위 롯데렌탈이다.
롯데렌탈의 기원은 1986년 설립된 금호렌터카다. 이 회사는 줄곧 국내 렌터카 업계 1위를 유지해오다 2010년 KT에 인수되면서 KT렌탈로 사명을 바꿨다. 이후 2015년 말 황창규 KT 회장의 통신 사업 집중을 위한 구조조정으로 KT캐피탈과 함께 M&A 시장 매물로 나왔다. 1차 입찰까지만 해도 SK와 한국타이어의 경쟁 구도로 보였지만, 최종 승자는 의외로 롯데였다.
당시 KT렌탈의 시장가치는 약 7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신동빈 롯데 회장은 2차 본입찰에서 1조 200억 원을 베팅하는 강수를 썼고, 그 결과 2015년 6월 KT렌탈은 롯데렌탈로 이름이 바뀌며 롯데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롯데렌탈은 롯데그룹의 유통 및 금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순항했다. 2016년엔 창사 이후 최초로 영업이익 1000억 원을 돌파하는 1117억 원을 기록했고, 2017년에도 영업이익 1297억 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전망은 그닥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선보인 신차 장기렌터카 온라인 다이렉트 서비스인 ‘신차장 다이렉트’가 호평받는 등 영업은 순항 중이지만, 상반기 실적이 예년보다 저조하다. 올 상반기 롯데렌탈의 영업이익은 548억 원인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2% 줄어든 수치다. 3년 연속 영업이익 1000억 원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세는 꺽일 우려가 있다.
영업이익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은 경쟁 격화다. 매출은 성장하고 있지만 렌터카 시장의 경쟁 심화로 인해 영업 비용이 늘어난 것. 지난해 상반기 영업 비용은 8283억 원이었지만, 올 상반기는 8849억 원이다. 문제는 SK네트웍스의 AJ렌터카 인수로 하반기에는 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영업 비용을 줄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지난 2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구속수감된 것도 불리한 요인이다. 앞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KT렌탈 인수전을 벌일 때 신동빈 회장의 베팅이 승부를 갈랐던 것처럼 이번 AJ렌터카 인수에서도 최신원 회장의 추진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현재는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롯데그룹 전체의 M&A 등 대형 투자 계획이 올스톱된 상황이다.
렌터카 업계 관계자는 “이번 AJ렌터카 인수로 국내 렌터카 시장은 롯데와 SK가 수위를 다투는 대기업 간 경쟁 구도로 바뀐 형국”이라며 “양측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경우 총수의 손발이 묶인 롯데그룹이 여러모로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