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손강훈 기자) ‘브랜드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퍼지며 네이밍(naming)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건설사들이 재건축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프리미엄’을 내세운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준비하면서 ‘네이밍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CNB가 건설업계 브랜드 전사(戰史)를 들여다봤다.
우리나라에서 브랜드 아파트 개념을 최초 도입한 건설사는 대림산업과 삼성물산으로 알려져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 2000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의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e-편한세상’을 선보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같은 해 아파트 브랜드(BI) 선포식을 통해 ‘래미안’을 탄생시켰다.
이후 건설사들은 앞 다퉈 아파트 이름짓기에 나섰다. ‘현대건설-힐스테이트’, ‘대우건설-푸르지오’, ‘GS건설-자이’, ‘롯데건설-롯데캐슬’, ‘SK건설-SK VIEW’, ‘포스코건설-더샵’, ‘한화건설-꿈에그린’, ‘호반건설-베르디움’ 등 이제는 아파트 명칭이 해당 건설사를 대표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 부동산 시장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과열되면서 ‘네이밍 효과’는 더 중요해졌다. 서울 지역 대부분은 재건축·재개발 형태로 개발 사업이 진행되는데, 조합원들이 시공사를 선정할 때 추후 아파트 단지 가격이 얼마나 오를 수 있을지를 우선으로 꼽는다. 때문에 아파트 가치를 만드는 브랜드가 중시될 수밖에 없다.
실례로 작년 주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서초 신동아아파트, 반포주공 1단지 1·2·4지구 등 강남권 재건축 조합의 시공사 선정의 경우, 조합원들이 수주 조건으로 ‘건설사 컨소시엄(공동참여) 불가’를 내걸었다. 컨소시엄 아파트의 경우 여러 건설사가 참여하다 보니 단지명이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단일 브랜드 명을 쓰는 것보다 아파트 가치 형성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것.
이에 건설사들은 기존 브랜드에서 ‘고급’을 강조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개발해 재건축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은 각각 ‘디 에이치’, ‘푸르지오 써밋’, ‘아크로’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세워 강남 재건축 경쟁에서 성과를 냈다.
‘새 것 vs 낡은 것’ 기존 입주민 불만
이처럼 네이밍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다른 대형사들도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를 검토 중이다. 입주민 특화 설계를 단지명에 담은 ‘시스니처 캐슬’로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된 롯데건설은 새로운 브랜드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는 지난 4월 ‘건설업 안전보건리더 회의’에서 올해 안에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호반건설은 ‘베르디움’이라는 자사 브랜드가 있음에도 ‘푸르지오’를 확보하고자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든 바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존 아파트 주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건설사가 새 브랜드를 내놓으면 상대적으로 기존 브랜드의 가치는 떨어져 집값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심지어 건설사가 새 아파트 브랜드를 출시할 것이란 소문이 돌자 주민들이 단지명 변경을 추진한 경우도 있다. 새 이름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다. 현행법에 따르면 입주자 4분의 3이상 다수에 의한 집회 결의를 통해 아파트 명칭 변경이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이런 사례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논란을 피하고자 GS건설은 신규 브랜드를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파트 이름이 ‘새 것’과 ‘낡은 것’으로 이원화되면, 기존 입주민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결국 건설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GS건설 관계자는 CNB에 “아파트 명칭이 부동산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지만, 고급 브랜드 론칭으로 기존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급이 낮게 인식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