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위치한 갤러리퍼플은 11월 2일~12월 15일 조현선 작가의 개인전 ‘반달 색인’을 연다.
작가는 주변의 건축물과 지리적 특성에서 영향을 받아 작업한다. 이것은 시간과 장소, 경험, 그리고 기억을 맵핑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작가가 ‘역사’라고 부르는 겹겹의 시간이 담긴 장소에서의 경험들을 모양, 색, 형태로 옮겨, 그 시간들의 연약함과 덧없음에 주목한다.
작가는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 시간의 흔적이 엿보이는 장소들, 파편들, 혹은 길에 덩그러니 남겨진 무언가를 작업실로 옮겨온다. 손에 들 수 있는 물건, 사진 또는 드로잉된 것들인데 이렇게 옮겨오는 것들을 스케치하고, 여러 조명 아래 설치해보고, 특정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확대하기도 하는 면밀한 작업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은 종이 작업으로 만들어지거나, 작가만 보고 없애버리는, 즉 브레인스토밍의 과정으로서의 순간적인 생각, 색, 모양 등의 모음으로 잠시 동안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캔버스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작가가 색인(index)이라고 부르는 단계로 철저하게 선택된, 직관적이지만 동시에 의도적인 선택들의 모음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전의 반달 색인을 이용해 단어를 찾듯이 지난 몇 년 동안의 작업들을 하나의 사전으로 보고 그 안에 있는 이미지, 색, 형태, 제스쳐 등을 발췌해 새롭게 펼쳐놓는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색인 펼쳐보기’ 과정은 ‘위장된 오렌지(Camouflaged Orange)’(2015) 작업들을 모체로 삼아, 그 작업들에서 파생된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2016~2017) 작업들, 그리고 이번 전시와 같은 제목으로 지난해에 먼저 그린 ‘반달 색인 드로잉들(Thumb Index Drawings)’(2017) 작업들을 거쳐, 올해 갤러리 퍼플 입주작가 개인전에서 전시하는 ‘반달 색인’(2018) 페인팅 작업들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험한 대상들의 지시체로서의 상징적 역할을 탈락시키고 인덱스들을 위계 없이 한 화면에 모아 놓은 것이 2015년까지의 작업이었다면, 이후의 작업들은 대상을 내 작업 자체로 정하고, 이미 존재하는 그림 속 메모들을 따로 발췌해 드로잉과 페인팅으로 재구성하고 다시 그리기한 과정의 모음이다”라며 “이번 전시는 원본 작업으로 돌아가기와 떨어져 나오기를 반복한 작업 과정의 결과물들을 통해 추상 그리고 드로잉과 페인팅을 사유하고자 한 시도로, 이전에 그려진 작업들을 소환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동반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기존 작업들에 비해서 레이어와 색감이 단순해진 게 특징이다. 비슷한 형태가 반복되기도 하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추상과 회화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추상과 회화라는 거대한 몸체에 불안하게 정차한 상태로 그것을 은유하고, 묘사하고, 구체화시키고, 예를 들고,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제시하고, 취소하고, 돌아가고, 보완하기를 반복하며, 만들기(creating)와 수정하기(editing) 사이를 끝없이 오가며 미완의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즉 수많은 레이어들이 쌓인 작품에서 작가만의 방식으로 펼쳐내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선택된 최소한의 형태와 색들이 반복돼 드러나는 것.
갤러리퍼플 측은 “조현선 작가는 사전적으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회화와 추상의 개념을 사전의 반달 색인을 펼쳐 찾듯 자신의 작품을 펼쳐 은유하고, 묘사하고, 수정, 보완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가로서 추상회화에 대한 의미를 사유하고자 했다. 이런 작가로서의 신중하고 면밀한 행위를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