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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80년대생 작가들이 절망-냉소-희망의 시선으로 읽은 오늘

학고재 청년작가 단체전 ‘모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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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8호 김금영⁄ 2018.12.07 09:34:24

‘모티프’전이 열리는 학고재 신관 전시장 1층 전경.(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80년대생 작가들이 바라본 오늘날의 현실, 절망과 냉소, 희망이 뒤섞인 이야기들이 전시장에 펼쳐진다. 로와정(노윤희, 정현석), 배헤윰, 우정수, 이은새, 이희준 작가가 참여하는 ‘모티프’전이 학고재 신관에서 12월 3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직관’ 그리고 지난해 열린 ‘직관 2017’전에 이어 학고재가 선보이는 청년작가 단체전이다. 지난 전시에서 예술의 첫 번째 창작 요건인 직관이 화두가 됐다면, 이번 전시는 ‘모티프’를 통해 동시대 청년 작가들의 논리와 서사를 살펴본다. 학고재 측은 “모티프는 서사의 출발점이자 창작의 동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독자적인 관점과 표현 기법이 갓 움트기 시작한 청년세대의 관점으로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 중 왜 특히 80년대생 작가들에게 집중했을까?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지난해 열린 ‘직관’전은 70~80년대생 작가들과 함께 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었지만, 워낙 이야기가 방대하다보니 다소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있어 아쉬운 측면도 있었다. 이번엔 80년대생 작가들에 집중해 그들의 모티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80년대생은 특별한 시대적 조건에서 자랐다. 6.25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남북분단의 잔재를 몸소 겪으며 자랐고, 60년대 군사정권의 몰락과 경제 급성장, IMF 외환위기를 겪은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촛불혁명 등 격변의 시기를 경험했다. 또한 아날로그 시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디지털 시대까지 모두 접한 세대로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고 짚었다.

우 실장은 “또한 현재 80년대생 작가들은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만큼 작업에 쏟아내는 열정이 대단하고, 현 시대에 관한 관심과 통찰력도 작품에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며 “과거 현실 최전방을 표현한 것이 민중미술이었다면 지금은 80년대생 작가들이 시의성을 띤 작품으로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희준 작가는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 연작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변모하는 주택가에 시선을 옮긴다. 시대와 목적에 따라 변화하는 주택가의 색상과 이미지를 참고해 화면을 구성하며 근래의 도시 미감을 포착한다.(사진=학고재)

이번 전시엔 전체적으로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디자인적인 미감이 돋보이는 이희준의 ‘어 쉐이프 오브 테이스트’ 연작은 산뜻한 느낌에서 시작된다. 트렌디한 색상으로 추상적인 화면을 구상했다. 하지만 여기 담긴 이야기는 밝지만은 않다. 홍대 인근, 연남동, 한남동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된 주택가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한 뒤 해체, 재구성한 화면이다.

이희준은 “평소 걸어 다니면서 보는 풍경 곳곳에 녹아든 디자인적 미감에 관심을 둔다”며 “이번엔 시대와 목적에 따라 변화하는 주택가의 표피를 살피면서 근래의 도시 미감을 포착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박미란 학고재 큐레이터는 “이희준은 도시 풍경을 살피며 발견한 시공간의 층을 시각화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사람의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띤 주택가가 변화하는 양상을 살피고, 이를 재구성해 생활양식에 따른 미적 선택의 변화 양상까지 살핀다”고 설명했다.

변화에 민감한 80년대생 작가들

 

배헤윰 작가의 근작 ‘클라비에’는 건반 악기 위에서 벌어지는 음의 구조적 운동을 표현한 작품이다.(사진=학고재)

배헤윰은 오늘날 실험적 예술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회화에 대한 고전적 질문으로 회귀하는 시도를 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근작 ‘클라비에’는 건반 악기 위에서 벌어지는 음의 구조적 운동을 표현한 작품이다.

운동하고 유동하는 형상을 정지된 화면 위에 담으려는 시도는 3차원과 2차원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동시에 회화의 본질적 딜레마를 회화를 통해 시각화하겠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박미란 큐레이터는 “87년생인 작가가 모더니즘 시대에 이어지던 질문, 즉 회화의 본질을 고찰하며 이를 현대적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아티스트 듀오 로와정(왼쪽 정현석, 노윤희)은 실크스크린 망사, 자작나무 합판, 거울 등 상이한 투명도와 반사도를 지닌 서로 다른 매체들의 결합을 통해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사진=학고재)

아티스트 듀오 로와정의 작품에서는 현 시대에서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인다. ‘폴딩 스크린’은 병풍의 형태를 참조한 설치물이다.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프레임들이 경첩으로 연결돼 서로를 지탱하며 서 있는 형태다. 가장 우측의 거울 표면엔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한 도돌이표가 보이는데, 시선을 처음으로 되돌리듯 차곡차곡 접혀 하나가 될 수 있는 병풍식 구조물의 형태를 암시한다.

로와정은 “실크스크린 망사, 자작나무 합판, 거울 등 상이한 투명도와 반사도를 지닌 매체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녔다. 다양한 매체들의 결합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필연적인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조율과 타협의 과정이 필연적”이라고 밝혔다. 박미란 큐레이터는 “현실의 모티프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작가들이 전시장에 모인 것 또한 관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폴딩 스크린’은 이번 전시의 초상에 빗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각종 미디어, SNS를 통해 소재를 수집하는 이은새 작가는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미지와 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진다.(사진=학고재)

이은새의 화면은 냉소적이다. SNS 사용에 익숙한 세대인 그는 각종 미디어, SNS를 통해 소재를 수집한다. ‘응시하는 눈’의 경우 눈 부위가 훼손된 정치인의 포스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눈 부위가 뜯어졌음에도 자신을 조롱한 상대를 향해 다시 한 번 경고하듯 까맣게 타오르는 눈이 인상적이다. ‘다가오는 여자’엔 하의를 탈의한 채 불안정한 자세로 선 여자가 등장한다. 술에 취한 채 노상방뇨를 하던 여자가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자 오히려 상대방을 위협하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피해자로 움츠리기보다는 ‘그래서 어쩌라고?’ 식으로 상대방을 다시 응시한다.

이은새는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이미지가 떠돌아다닌다. 이중 사실과 왜곡되게 표현되는 인물들의 모습도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 및 인물을 화면 위에 재현해 미디어가 생산하는 이미지와 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정수 작가의 ‘프로타고니스트_로즈핑크’ 연작은 거세게 파도치는 바다 위 표류하는 작은 배의 형상을 그린 작품이다.(사진=학고재)

현실에 대한 냉소와 고찰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정수는 그럼에도 밝은 미래를 바라보려는 시도를 한다. ‘프로타고니스트_로즈핑크’ 연작은 거세게 파도치는 바다 위 표류하는 작은 배의 형상을 그린 작품이다. 우정수는 “비극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희극을 읽는 걸 좋아한다. 무의미할 수도 있는 대사들이 쌓여 세상에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이번 작업에서는 화면에 우리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부조리극 요소를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면 속 작은 배는 당장이라도 거센 파도에 삼켜질 것 같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물 위에 떠 있다. 우정우 실장은 “우정수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면에는 분명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럼에도 작은 희망도 같이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바다에 집어삼켜질 듯 떠 있는 작은 배의 존재는 위태롭다. 그럼에도 항해를 멈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이 배의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는 맑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세상을 비관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예술로 발걸음을 이어나가는 이번 전시 작가들을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 또한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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