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금융 계열사 중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카드를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카드‧보험업계에 새로운 지각 변동이 일 조짐을 보인다. 롯데그룹이 두 회사의 매각을 추진하는 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금융계열사 매각이 필수적인 때문이다. 롯데카드와 롯데손보의 인수 후보로는 우리금융, BNK금융 등 금융권 기업들과 MBK파트너스, 한화그룹 등이 거론된다. 과연 이들 중 어떤 기업이 두 회사의 새로운 주인이 될까?
금산분리 원칙 준수 위해 카드‧손보사 매각
지난 11월 27일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롯데지주가 “지난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 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한 끝에 그룹 내 금융 계열사 중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을 외부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두 회사의 매각 방침이 공식화됐다.
새로운 인수자 선정 기준으로는 ▲두 회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큰 성장과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롯데와 전략적 방향을 같이 하며 ▲롯데 임직원들을 보호하고 존중해 줄 것 등을 제시했다. 두 회사의 매각 주관사로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 선정됐다.
롯데카드는 지난 1989년 설립된 동양그룹 계열의 동양카드가 모체다. 이 회사는 2002년 롯데그룹에 인수돼 롯데백화점 카드와 통합되고, 이후 롯데멤버스, 롯데포인트 등과 통합되면서 롯데그룹 전반을 아우르는 카드사로 성장했다. 2017년 기준 약 65조 원의 이용실적을 기록해 카드업계 5위인 약 10.8%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으며, 직원 수는 약 1700여 명이다.
롯데손해보험은 지난 1946년 설립된 대한화재가 모체로, 2001년 대주그룹 계열 대한시멘트에 인수됐다가 2008년 2월 롯데그룹에 인수되며 롯데손해보험으로 재출범했다. 2017년 매출액 5793억 원으로 손해보험사 중 10위인 약 3.1%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직원 약 1700여 명과 101개 지점 1300여 명의 모집인을 두고 있다.
롯데캐피탈‧롯데오토리스도 매각 대상?
앞서 밝힌 것처럼 롯데지주가 두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과거 롯데그룹은 복잡하게 구축된 순환출자 구조로 인해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지난 2017년 10월 12일 롯데지주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지주사 체제전환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공정거래법 상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지주사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는데 롯데그룹은 카드사, 보험사 등 수많은 금융 계열사들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가 됐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설립 2년 후인 2019년 10월까지 롯데지주 및 롯데지주의 자회사 등이 보유한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매각대상을 특정하자면, 롯데지주가 보유한 롯데카드 지분 93.78%, 롯데지주가 보유한 롯데캐피탈 지분 25.64%와 롯데지주의 손자회사인 롯데건설이 보유한 롯데캐피탈 지분 11.81%, 롯데지주의 자회사인 롯데역사가 보유한 롯데손해보험 지분 7.10%, 롯데지주의 증손회사인 롯데렌탈이 보유한 롯데오토리스 지분 100% 등이다.
이 중에서 롯데캐피탈과 롯데오토리스는 이번 매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먼저 롯데캐피탈은 롯데손해보험 등과 달리 일본 주주가 많고, 매년 1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는 등 장기렌터카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매각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오토리스의 경우 롯데지주의 손자회사인 우리홈쇼핑이 롯데오토리스의 완전모회사인 롯데렌탈의 지분 8.63%를 보유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홈쇼핑이 롯데렌탈의 지분 8.63%를 롯데지주나 롯데지주의 자회사가 아닌 계열사에 매각할 경우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이같은 해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도 롯데지주는 BNK금융지주 899만 3606주(2.76%)와 신한금융지주 45만 111주(0.1%) 등 다양한 투자목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주식들도 어떤 식으로든 모두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BNK금융‧우리금융‧MBK파트너스 인수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이번에 매물로 나온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은 어느 기업으로 소속이 바뀔까?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이번 매각 발표에 앞서 두 회사를 한꺼번에 묶어 팔기 위한 사전 수요조사를 진행했는데, 인수 의향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우리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 한화그룹과 MBK파트너스 등 4곳이다. 이외에 신한금융과 하나금융, KB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등도 잠재적 인수후보로 거론된다.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히는 기업은 BNK금융지주다. BNK금융지주는 롯데쇼핑과 롯데지주 등 롯데 계열사들이 BNK금융의 지분 11.1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롯데그룹이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제휴도 수월하다. 임직원의 고용 안정과 처우 보장을 신경써야 하는 롯데 입장에서 더없는 상대다. BNK금융도 지주사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카드사와 보험사 보강이 필요한 상황인데, 부산 지역 사용자가 많은 롯데카드를 인수하면 시너지가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리금융도 롯데카드와 롯데손보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금융은 내년 초 지주사 체제로 전환될 예정인데, 현재는 우리은행 비중이 99% 수준으로 지나치게 높아 비은행 계열사를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것. 하지만, 지주사 체제전환을 마무리하지 못해 아직 조직체계가 안정화되지 않았고, 우리카드의 위상도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KB금융도 신한금융과의 덩치 경쟁을 위해 롯데카드나 롯데손보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것도 강점이다. 특히 롯데카드를 인수할 경우 카드사 점유율 4위인 국민카드가 신한카드를 누르고 업계 1위로 등극할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MBK파트너스도 인수에 적극적이라는 후문이다. 인수합병의 귀재 김병주 회장이 이끄는 MBK파트너스는 그간 수차례의 빅딜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금융 분야에서도 오렌지라이프(구 ING생명)를 인수해 신한금융지주에 되팔아 27%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거뒀다.
다만, 최근 카드업계와 손해보험업계의 업황이 심상치 않고, 롯데카드와 롯데손보 모두 실적이 좋지 못한 점은 흥행에 악재로 꼽힌다. 롯데카드의 경우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유통채널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세컨드 카드’로 인식되고 있고, 롯데손보 역시 업계 10위에 머무르며 지난 10년 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적이 없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두 회사를 합해 약 2조 원 내외의 매각가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수자들은 두 회사의 가치를 약 1조 5000억 원 내외로 판단하는 분위기”라며 “마침 시장을 둘러싼 환경도 좋지 않아 롯데그룹 입장에서 제 값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