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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북한 소설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갈등 없어야 하는 북한에서 소설 쓰는 번거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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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19호 최영태 기자⁄ 2018.12.24 09:54:20

(CNB저널 = 최영태 기자) 근대 이후 어느 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데는 소설만한 게 없다. 소설이란 문학 장르가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과 함께 시작됐다는 이른바 ‘근대문학의 기원설’(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등 철학서에서 거론된)에 비춰봐도 그렇다.

근대사회가 끝나면서 소설의 역할도 사라졌다는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론이 한때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됐지만, ‘북한에서도 그럴까?’라는 의문은, 이제 남북한 개방 무드에 따라 본격적으로 생성될 조짐이다.

어느 사회든 겉살과 속살이 있고, 그 둘은 다르다. 한국으로 치자면, 이른바 이명박근혜 시대에 “대한민국의 국격이 이렇게 높아졌다”는 정권의 장단에 맞춰 언론들이 깨춤을 췄지만, ‘4대강 녹조라떼’와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단 한 방에 드러났듯, 그 시기 한국 사회는 속속들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겉살이 국격 상승이었다면, 속살은 썩어문드러짐이었다.

북한도 그럴 것이다. 아니,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어머니 당’이 지배하는 사회니만큼 겉은 더 화려하되 속은 더 썩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고 신간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를 집어들었다. 북한에서 영화 작가로 이름을 날려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사장까지 지냈다는 리희찬이 2016년 펴낸 근작 소설이다.

소설의 끝에 오태호 경희대 교수의 소개 글이 실렸다. 오 교수는 “소소하게나마 드러나는 가출과 폭언 등의 일탈적 갈등이 기존 북한 소설의 ‘무갈등적 서사’의 흐름과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겉살이 지상낙원’인 사회에서 갈등을 근대소설적으로 심각하게 드러내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이 읽혔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스토예프스키 류의 ‘자본주의 근대소설’이 갈등을 극한대까지 밀고나가 갈등이 해결되거나 또는 갈등 탓에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한다면, 리희찬의 이 소설에서는, 오 교수의 소개대로 소소하게나마 갈등이 노출되기는 하지만, ‘너무 갈등적인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북한 자체의 한계 탓인지, 해결의 복선을 끊임없이 깔기에 갈등이 갈등스럽지 않다.

즉, 남자 주인공 홍경식의 일탈적(자유주의적 또는 마마보이스러운) 행동이 갈등의 중심축이지만, 갈등의 발생 초기부터 작가는 ‘홍경식은 원래 좋은 청년이야’라는 복선 역시 끊임없이 깔기 때문에, “이 갈등은 갈등이되 심각한 갈등은 아니야”라고 작가가 끊임없이 얘기해주는 것으로 읽힌다. 수령과 당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지상낙원에서 심각한 갈등이란 있을 수 없고, 인민들은 근본적으로 명랑하고 건설적임을 보여줘야 하는 작가의 의무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갈등은 갈등이되 너무 심각한 갈등이면 안 된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 류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이 북한 소설에서 느낄 수는 없다. 물론 그러면 그런대로 이런 북한 소설을 읽어야 할 필요 또는 재미는 존재한다. 소설을 통해 드러나는 북한인 등장인물 개개인의 속사정(로동신문 등의 공식매체를 통해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을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스토리다. 여자 주인공 최기옥의 부모가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72쪽)에서다. 제대군인 최국락이 나이 들어 대학에 들어갔는데 화학-외국어 실력이 딸리는 그를 도우라고 직통생(고등중학교 졸업 뒤 바로 대학에 진학한) 오순이를 붙여주고 오순이는 성심으로 최국락의 공부를 돕지만 최의 학기말 성적이 저조하자 오순이가 “제 혼자 최우등이나 하면 그래 마음이 편안한가. 개인리기주의자”라는 공개 비판을 당한다는 스토리다. 한국 대학으로 치자면 남자 복학생을 돕느라 여대생이 배정되고 복학생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여대생이 이기주의자라고 비판을 받는 형국인지라 남한인의 상식으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바로 이처럼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와는 얼마나 다른지, 즉 같은 한국말을 쓰기에 소설 독해는 쉽게 되지만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데 이 소설의 의미가 있고, 북한 문학과 예술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리희찬 지음 / 아시아 펴냄 / 568쪽 /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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