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9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12.24 09:54:2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아직 살아 있다’의 제목에는 결의와 다짐, 절박함과 희망, 경고와 경계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감정들이 함께 한다. 주어가 무엇이 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지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주어가 없는 이 문장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현재와 긴밀한 주어를 넣어가며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 전시된 작품들을 마주하면 생각은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아직 살아 있다’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다. 개인이 마주하는 거대한 사회, 이 세상을 유지시키고 작동시키는 시스템과 규칙에 대한 질문들이 가득하다. 작가들은 이주와 정착, 민족성과 혼종성, 문화의 전승과 잊힘, 개발과 파괴, 권력에 의한 예속과 억압 등의 내러티브를 풀어낸다.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기에 일어나는 충돌 속 조화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이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간다. 서로 다른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 의무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지키게 되는 규범과 윤리들이 있다. 물론 그 규칙들이 항상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완벽히 들어맞는 하나의 규칙이란 불가능하다. 보편적 규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양성의 보장도 필요하다. 어려운 문제다.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이유다.
[청주시립미술관 김복수 학예연구사와의 대화]
“궁금하게 만드는 전시 노렸다”
- 전시 ‘아직 살아 있다’의 기획 의도를 들려주면 좋겠다. 전시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주어에 어떤 단어를 넣는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뒤집힌다.
올해 1월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부임한 뒤, 내가 오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전시 ‘부드러운 권력’을 진행했다. ‘아직 살아 있다’는 내가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온전히 기획한 첫 전시다. 그래서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그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해온 주제였던 ‘당연한 기준과 권력을 향한 질문’을 다루는 작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시된 작품들 중 일부는 신작이 아니다. 일부러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요청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청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은 작가 섭외가 완료된 후 확정했다. 문장 자체가 비장한 분위기를 갖는데, 아직 ‘미술이라는 언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전시의 목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다. 많은 작가들이 아직 살아 있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 동시대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는 주제의 전시다. 작품 하나하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들이 엮어내는 큰 이야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추상 미술보다 오늘날의 미술이 더 어렵다는 관객들도 많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가?
일부 관객들은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너무 쉬운 일반적인 주제와 형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술관을 채울 수는 없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이다. 전통적인 전시장의 이미지가 아니어서 느끼게 되는 낯섦이 호기심으로 이어지도록 기획하려 노력했다.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리플릿의 소개 글은 최대한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했다. 전시를 본 뒤 도슨트 혹은 기획자에게 질문을 하거나 미술관 홈페이지를 검색할 정도의 동기 부여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이완 작가의 작품 ‘우리가 되는 방법’(2011)을 보면, 물건이 올라가 있는 저울의 수치는 5.06kg으로 완벽히 고정되어 있는데 그 위의 이미지는 다양해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완은 대부분의 작업에서 우리를 둘러싼 기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는 대표적인 작가다.
-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직간접적으로 담아내는 작업들이 많이 포함되었다. 오늘날 미술이 담론을 과잉되게 담아낸다는 비판도 있다.
그저 정치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를 주제로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을 생성해내는 작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첨예한 대척점에 있는 이념들을 그대로 담아내는 작업들이 최근 늘어나다 보니 오히려 이분법적인 대립이 강조되고, 작가별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고체와 고체가 나란히 놓이는 것이 아니라 용해되고 섞여 새롭게 응고되는 창작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치적인 이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과 그것에 대한 태도)에 관한 탐구로 확장되면 좋겠다.
- 동시대 미술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가 장르의 해체 혹은 넘나듦이다.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갖는 작가들을 한 자리에 전시하다 보면 시각적 조화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전시 공간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이나 방식이 있는가?
작품이 들어가기 이전 상태인 빈 전시장의 공간을 몸으로 많이 체험하고 느낀 뒤 시뮬레이션 한다.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전에 작가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작품이 놓이는 실제 공간에서의 교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논리적 계산과 즉흥적 감각이 모두 필요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작품들이 만들어내는 전체 이미지가 어떻게 공간에 스며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아직 살아있다’전에서는 사실적인 형상이 그려진 회화와 매우 모호해 보이는 설치처럼 시각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불협화음 속의 화음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건강이다(웃음). 건강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물론 공부도 해야 한다. 공부한 것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순간 대처 능력도 필요한데, 그것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작가를 충분히 이해하려는 노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
[참여 작가 이완과의 대화]
“프레임 따라 의미 달라지는 작품을 추구”
- 얼마 만에 ‘우리가 되는 방법’ 전체가 전시되었는가?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진행된 전시 ‘레슨 제로’에 작품 전체가 전시되었었다.
- ‘우리가 되는 방법’을 제작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모든 오브제를 잘라 재조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울의 눈금을 보면 60개 오브제의 평균무게인 5.06kg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이전에 진행했던 ‘쓸쓸한 기준’(2010)에서부터 이어진 작업이다. ‘쓸쓸한 기준’은 내 주변의 물건들을 모아 한 쪽 단면을 자른 후 ‘거울’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맞는 물건이 되도록 연마한 작업이다. ‘우리가 되는 방법’과 작업의 방식은 다르지만 그 과정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쓸쓸한 기준’은 하나의 기준을 적용시켜 서로의 다름을 드러낸다. 즉,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한 가지 기준을 적용시키니 망치와 같은 금속은 거울처럼 빛나지만 플라스틱이나 나무, 벽돌 등은 아무리 노력해도 거울이 될 수 없다. 하나의 기준에 부합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결과적으로 서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되는 방법’은 같은 무게라는 기준을 사물들에 적용시켰다. 그러다 보니 무게라는 부분에서는 모두가 동등해졌지만 상처가 가득한 우리가 되었다. ‘이것이 진정으로 등등한 상태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 같은 작품이라 해도 매번 다른 시공간에서 전시된다. 처음 작품을 완성한 이후에 작품을 다시 볼 때마다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나 생각이 조금씩 바뀔 것 같다. 전시 ‘아직 살아 있다’를 준비하면서 이 작품에 대해 새롭게 떠오른 생각이 있는가?
나는 이 작품이 굉장히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한국 사회의 사람들은 아직도 극단적으로 양분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다. 그 이슈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쪽과 저쪽, 왼쪽과 오른쪽’ 중 한 쪽을 반드시 골라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다른 선택지의 종류와 범위가 넓음에도 귀결되는 종착지는 항상 둘 중 하나다. 사실 양분되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는 매우 큰 간극이 있고, 둘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둘 중에 딱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당연히 종착지에 이르는 길의 경사가 급해질 수밖에 없다. 다양성도 줄어든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이 섞여서 나오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다. 서로 다른 프레임(관점)으로 봐도 모두 말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왼쪽의 프레임으로 봤을 때 생성되는 의미, 오른쪽의 프레임으로 봤을 때 생성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는 작품이다. 나의 다른 작업들도 그렇지만 ‘우리가 되는 방법’은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는 세상, 서로 다른 것들이 섞여 있는 모습, 모순된 것들이 공존하는 상태 등을 모두 담아낸다. 관측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상황들이 함께 한다.
- 작품을 설명하면서 ‘다양성, 서로 다른 것들이 섞인 상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작가가 말한 다양성이란 개별적 특수성이 모두 살아 있는 공존인가? 아니면 혼종적인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까지를 말하는가?
그것마저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 부여가 가능할 것이다. 화창한 하늘을 보고도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서로 다른 여러 의미, 심지어 양극단의 의미들을 한 작품 안에 넣어 관객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감상되고, 매번 다른 의미가 생성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내 작품을 통해 리플렉션(reflection)이 일어나길 원한다.
- 이번에 참여한 전시의 제목인 ‘아직 살아있다’를 보고 무엇이 떠올랐나? 지난 11월 22일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작가와의 대화에서 전시 참여 작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술 발전으로 현대인들은 굉장한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다. 과학기술은 사람과 사람이 더 쉽게 연결되도록, 유대관계가 더 편하게 지속되도록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편해진 만큼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있다. 페이스북을 열면 마주하는 많은 친구들은 진정으로 연결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저 서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관계일 뿐이다. 시각적인 창조물도 마찬가지다. ‘아직 살아있다’는 시각적인 볼거리가 넘쳐나 예술가와 예술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누군가에게는) 생각되는 오늘날, 예술가들의 행위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직 유효함을 말하는 것 같다.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는 제목이다. 모든 것이 다 소진되고 황폐화된 세상 같지만 아직 전할 이야기들이 남아 있기에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태울 수 있는 불씨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