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3호 옥송이⁄ 2019.01.11 10:43:53
‘회사 안의 회사’ 사내 벤처가 주목받고 있다. 사내 벤처는 말 그대로 회사 내부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뜻한다. 이전까지는 주로 IT업계를 중심으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비단 IT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뷰티, 식품, 패션 등의 다양한 유통업계에서도 사내 벤처가 늘어나고 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직원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여러 위험 요소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의 사내 벤처프로그램 ‘린스타트업’, 4기 접어들며 ‘순항 중’
뷰티업계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16년부터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린스타트업’을 통해 ‘될성부른’ 사업에 일찌감치 투자하고 있다. 출범 4년차를 맞은 린스타트업은 1·2·3기를 거쳐 올해 4기를 진행한다. 지난해 3기에는 ‘프라도어’와 ‘큐브미’ 두 팀이 선정됐고, 앞서 1~2기에는 ‘아웃런’ ‘가온도담’ ‘브로앤팁스’ ‘스테디’ 등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린스타트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지난 1·2·3기 브랜드들의 시장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린스타트업 사내 벤처들의 특징은 명확한 브랜드 컨셉과 타겟 소비자층을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었다.
1기 아웃런은 스포츠 전문 선케어 브랜드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트렌드가 확산된 데 비해 스포츠 환경에 맞는 전문 선케어 제품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탄생했다. 2기 마스크팩 브랜드 스테디는 국내 최초 마스크팩 정기 배송 서비스를 선보였고, 해당 서비스는 출시 3개월 만에 목표 고객 수 대비 200% 초과 달성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 측에 따르면 직접 사내 벤처프로그램을 육성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서, 나머지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시장조사기관 월드데이터랩에 따르면 전세계 밀레니얼(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인구는 세계인구의 4분의 1 수준인 18억 명에 달하며, 2020년 이후 세계 노동인구의 35%를 차지할 전망이다. 따라서 2020년 이후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 활동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한류와 K뷰티에 관심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들이 K뷰티 소비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는 스마트한 소비를 즐기는 새로운 고객층으로, 트렌드에
빠르고 민감하다. 이 때문에 기존 자사가 가진 접근 방법으로는 고객의 변화에 따른 개선책을 실행하기 어렵다고 느꼈다”며 “린스타트업을 통해 민첩한 개선책을 찾는 동시에 창조적인 브랜드와 제품 신규 개발로 성장 동력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사내 벤처의 좋은 예” … 애경 출신 ‘네오팜’
아토피 등 민감성 스킨케어 전문 화장품 ‘아토팜’으로 유명한 기업 네오팜은 현재 잇츠한불 소속이지만, 원래는 애경산업 출신이다. 네오팜은 일찍이 지난 2000년 애경산업의 사내 벤처로 시작했다.
아토피 화장품 시장은 효능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광고비를 쏟아 부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써 본’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아토팜은 급속히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네오팜은 아토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 2007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네오팜의 핵심 기술 MLE(Multi Lamellar Emulsion)은 지속형 피부보호막을 형성하고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지키고 피부 장벽을 강화하는 기술이다. 국제 특허를 획득한 이 기술을 바탕으로 아토팜’, ‘리얼베리어’, ‘더마비’, ‘제로이드’ 등을 보유한 피부과학 전문 기업으로 거듭났다.
애경의 알짜 자회사로 성장한 네오팜은 지난 2016년 현재 몸담고 있는 잇츠한불로 소속을 옮겼고, 잇츠한불 실적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의 사드보복 여파로 인해 실적이 좋지 않았던 잇츠한불의 실적은 2017년 3분기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는데, 자회사인 네오팜의 실적기여도가 컸다. 당시 네오팜의 매출 기여도는 21.8%, 영업이익 기여도는 31%를 기록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대상그룹의 플립‧잇사이트
패션 전문기업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사내 벤처팀 S.I랩이 기획한 패션브랜드 ‘플립(FIIP)’을 공개하고 제품 판매에 나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 벤처는 2017년 10월 사내 공고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지난해 1월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사내벤처를 통해 탄생한 브랜드 플립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품의 기획과 생산 모든 과정을 공개하고 일반 소비자들의 참여를 권장한다. 지난해 출시한 대표 아이템인 구스다운 점퍼 역시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아이디어를 제품에 적용했다.
식품회사인 대상그룹은 사내 벤처기업을 통해 ‘식품 빅데이터’ 시장을 개척했다. 최근 유해 식품 논란이 빚어지면서 식품의 성분을 꼼꼼히 살피는 소비자가 늘어난 동시에, 신선식품이 온라인몰을 휩쓸면서 이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유입되고 있어 식품 빅데이터 시장은 더욱 밝을 전망이다.
이러한 식품 빅데이터의 포문을 연 주인공은 식품정보플랫폼 ‘잇사이트(eat sight)’다. 대상그룹의 IT계열사 대상정보기술의 사내벤처로 탄생한 잇사이트는 국내에 유통되는 가공식품들의 정보를 DB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검색하고자 하는 식품을 낱낱이 분석한다. 식품의 영양성분 함유량과 원재료, 유해성분 유무 등을 분석해주는 해당 서비스는 지난 2017년 네이버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사내 벤처 참여자는 든든한 모기업 덕에 ‘안정적인 연구’하고 기업은 ‘신성장 동력’ 발굴
이처럼 기존 기업에 속해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운영이 가능한 사내 벤처가 각광받는 이유는 참여자와 기업 양쪽에 윈윈 전략이기 때문이다.
사내 벤처참여자 입장에서는 든든한 모기업이 있어 실패할 우려에 대한 부담을 덜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고, 실직이나 자본금 마련 같은 실질적인 창업 위험도 덜 수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도전이 가능한 것 역시 장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즉각 반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거대한 조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사내 벤처가 독립하거나 코스닥에 등록하면 출자지분을 매각해 막대한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신 성장 동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사내 벤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사내 벤처 지원프로그램’ 정책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사내 벤처팀을 발굴하고 지원하면 정부가 사내 벤처팀의 사업화와 분사창업을 지원하는 해당 프로그램은 지난해 10월 2차 운영기업을 추가 선정하기도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사내 벤처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보완하고, 목표한 성과가 이뤄지면 수익을 공유하고 포상하는 등의 보상 제도가 있어 참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며 “기업의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