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4-625합본호 정의식⁄ 2019.01.18 15:54:11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조합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시공사 지위를 박탈하면서 초대형 재건축 수주전이 다시 개막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대형 건설사 8곳이 모두 입찰 참여 의지를 드러냈는데, 이는 반포3주구가 강남의 노른자 부위에 위치해있고, 총 사업비가 8000억 원에 달해 이 사업을 수주한 건설사가 단박에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8개 건설사 중 어떤 기업이 2019년 재건축사업의 ‘성배’를 차지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초대형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원점으로
지난 8일 반포주공1단지 3주택지구(3주구) 재건축조합이 조합원 임시총회를 열고 ‘HDC현대산업개발 시공자 선정 취소의 건’을 가결하면서 지난해 최대 규모의 재건축사업으로 주목받던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3주구의 시공사 선정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조합 측은 “총 1622명의 조합원 가운데 857명(서면결의서 제출 포함)이 참석했고 745명이 찬성해 HDC현대산업개발의 시공사 지위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앞서 반포3주구 조합은 시공사 공개경쟁입찰을 진행, 두 번의 유찰 끝에 지난해 7월 수의계약 방식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시공사 선정 당시부터 조합원들의 의견이 상충해 논란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특화설계안과 공사범위 등 세부 계약조건을 두고 재건축조합과 현대산업개발이 좀처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수주 계약을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들이 시공사 선정 취소를 위한 조합원 총회를 8일 개최했고, 이날 총회에서 과반의 찬성으로 시공권 취소가 의결된 것이다. 조합은 새로운 건설사를 다시 선정해 수의계약을 진행하겠다는 안건도 의결했다.
이후 대림산업이 가장 먼저 입찰의향서를 제출했고, 이어 대우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GS건설, 삼성물산 등이 잇따라 합류해 반포3주구 재건축 수주전은 국내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상위 10개 기업 중 8개 기업이 역량과 자존심을 겨루는 한판 대결의 장으로 변모했다.
강남 노른자 노리는 건설사들, 치열한 각축전
반포 3주구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965번지 일대에 위치한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중 3주구를 지칭한다. 총 정비면적은 271만 4011.2㎡ 중 122만 2818㎡로 이 중 실사용 주택용지는 약 9만 2168.6㎡다. 1973년 11월 준공된 아파트 34개동(5층) 1490세대(22평형)와 상가 3개동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 9호선 구반포역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하고 반포초·반포중·세화고 등이 주변에 있어 교육환경도 우수한 지역으로 꼽힌다.
재건축 계획의 골자는 현재의 구조를 지하 3층~지상 35층 17개 동에 총 2091가구가 입주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총 사업비는 8087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한 해 실적을 좌우할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향후 2~3년 간 강남지역에 굵직한 재건축 사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인 것도 주요 건설사들로 하여금 너나없이 수주전에 뛰어들게 만든 이유다.
강남의 노른자위 땅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건설사들에게 매력적이다. 10여 년 전 인근의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반포 자이 등의 재건축사업이 성공하며 삼성물산, GS건설에 엄청난 브랜드 이미지 상승 효과를 안긴 것을 감안하면 반포3주구 역시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랜드 간 치열한 영토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반포3주구 수주전에 가장 적극적인 건설사로 꼽히는 건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GS건설이다. 모두 반포 지역에 대단위 브랜드 아파트를 보유했거나, 보유할 예정인 건설사다.
먼저, 삼성물산은 그간 반포3주구 인근에 ‘래미안 퍼스티지’에 이어 ‘래미안 에스티지’도 보유한 반포의 터줏대감이다. 다만 삼성물산은 지난 2015년 12월 서초 무지개아파트 이후 3년 넘게 강남 재건축시장에 참여하지 않아 이번 입찰 참여가 이채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전 참여로 그간 거론되던 래미안 브랜드 매각설, 주택사업 철수설 등도 잦아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반포 자이’를 보유한 GS건설 역시 반포를 대표하는 건설사 중 하나로 반포3주구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현재 인근에 신반포 센트럴자이, 신반포 메이플자이 등의 재건축사업을 수주해 한창 짓고 있는 상황에서 반포3주구까지 확보할 경우, 반포의 대표 브랜드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은 반포의 신진 강자다. 지난 2017년 무려 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 수주를 모두 따낸 덕분이다. 1‧2‧4주구에 이어 3주구까지 확보할 경우 반포 일대는 ‘현대타운’으로 변모하게 된다. 현대건설은 반포3주구 재건축사업을 수주하게 되면 프리미엄 브랜드 ‘디에이치’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 대림산업도 인근의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와 함께 아크로 브랜드의 확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은 수주에 성공할 경우 자사의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롯데건설의 프리미엄 브랜드 명칭은 지난해 말 상표출원한 ‘인피니엘’로 알려졌지만,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푸르지오 서밋’에 이은 프리미엄 브랜드 명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조합원 간 내홍 심각… 재건축사업 무한 표류 가능성도
입찰 경쟁이 격화되면서 업계에서는 그간 논란이 됐던 ‘재건축 비리’가 다시 불거질 거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이전 같은 비리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간 거액의 사업비가 걸린 강남 재건축사업은 조합의 유력 간부를 매수하거나 주민들에게 금품을 선물해 수주 경쟁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수주 관련 비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도정법 개정안에 따르면, 각 지방자치단체는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가 재건축조합원 등에게 어떤 경로로든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할 경우, 형사처벌과 함께 시공권을 박탈하며, 공사비의 최대 20%에 해당하는 과징금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총 사업비가 8000억 원 규모인 반포3주구 사업의 경우 최대 1600억 원의 과징금이 매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처벌 대상이 된 건설사는 1년 간 입찰 참가가 금지되며, 용역업체를 앞세운 경우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된다.
이번 반포3주구 수주전은 도정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최초의 수주전이라 이전보다 한결 국토부, 서울시 등 관계당국의 감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수주전이 무효화돼 8개 건설사가 모두 ‘물을 먹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앞서 입찰 권한을 박탈당한 HDC현대산업개발이 ‘반격’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미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조합의 결정에 불복해 즉각 총회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총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사의 권리 보호를 위해 총회효력정지가처분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시공사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며 20일에 조합장 해임 총회를 열겠다는 방침이다. 만약 이 총회가 열리고, 총회에서 현 조합장이 해임될 경우 7일 총회의 효력은 사실상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HDC현대산업개발이 계속 시공권을 유지하고, 입찰전은 전면 취소된다. 반면, 20일 총회에서 조합장 유임이 결정되면 시공사 재입찰 절차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20일 해임 총회가 열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 7일 총회 결과를 기반으로 한 8사 수주전 경쟁의 향방은 현재로선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HDC현대산업개발 측이 이 문제를 법정까지 가져갈 경우 재건축 일정은 한없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