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도기천 기자) 편의점기업 미니스톱의 매각이 백지화 되면서 유통공룡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롯데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신세계는 안도하고 있고, 일본 기업과 더불어 미니스톱 지분을 팔려했던 대상그룹은 한숨이 깊어졌다. 인수후보 ‘0순위’에 올랐던 롯데그룹은 허탈한 모습이다. CU, GS25 등 기존 선두주자들은 다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이들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현재 편의점 업계 순위는 점포수 기준으로 BGF리테일의 CU가 1만3169개로 1위, GS리테일의 GS25가 1만3107개로 2위다. 이어 코리아세븐(롯데)의 세븐일레븐 9555개, 신세계의 이마트24 3564개, 미니스톱이 2533개 순이다.
미니스톱이 비록 선두주자들과는 격차가 크지만 롯데가 인수할 경우 단번에 1,2위를 위협할 수준이 된다. 이마트24를 통해 가장 늦게 편의점 시장에 진출한 신세계에게 넘어갈 경우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편의점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통적인 오프라인 시장이 쇠퇴하고 있는 점은 상대적으로 편의점 사업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매출이 역신장 단계까지 접어들었고,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백화점 빅3 또한 최근 몇 년간 매출증가율이 1~3%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편의점은 온-오프라인의 생활거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미래먹거리로 꼽힌다.
실제로 편의점들은 택배 서비스는 물론 주유소, 전기차충전소, 온라인몰 물류거점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GS리테일은 GS25, GS수퍼마켓 등 40여 점포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시설을 올해 100개로 확대하고 2025년에는 50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24는 주유소에 편의점이 입점하는 형태가 아닌 편의점이 주유소를 직접 운영하는 ‘주유소편의점’을 통해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고객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문한 상품을 주유소편의점에서 자기 차량으로 직접 수령해 가는 시스템이다.
세븐일레븐은 롯데닷컴과 함께 스마트픽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롯데닷컴을 통해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을 주변의 세븐일레븐에서 찾아갈 수 있다.
이처럼 편의점은 전국에 수만 개의 점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확실한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 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교두보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작년 하반기에 미니스톱이 매물로 나오자 물밑 인수전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미니스톱은 일본 이온(AEON)그룹이 지분 76.06%를 보유한 대주주인데, 지분 전량을 시장에 내놨었다.
롯데그룹(세븐일레븐)과 신세계(이마트24), 사모펀드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가 입찰에 참여했고, 롯데 측은 최고액인 4000억원대 중반 금액을 입찰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온그룹과 롯데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최근 매각이 무산됐다. 이온그룹은 매각 대신 자체 운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대만큼 몸값 안올라 ‘무산’
이온그룹이 매각의 9부 능선을 넘어 놓고도 막판에 결단을 내리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편의점 사업의 몸값을 예상보다 높게 봤을 가능성이다.
편의점 가치는 통상 ‘점포당 1억원’으로 평가받는다. 전국의 미니스톱이 2500여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가 써낸 4000억원대 중반 가격은 시장의 예상을 넘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온그룹 입장에서는 미래가치와 한국 유통기업들 간의 경쟁구도 등을 고려했을 때 눈에 차지 않았을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CNB에 “유통 앙숙인 롯데와 신세계가 신경전을 벌이면서 (미니스톱의) 몸값이 치솟는 것이 이온그룹에게 가장 좋은 그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온의 이런 기대는 롯데와 신세계 간의 오랜 유통전쟁이 배경이 되고 있다. 양사는 면세점, 온라인, 마트, 백화점 등 모든 분야에서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특히 수년 간의 소송전 끝에 최근 롯데쇼핑에게 넘어간 신세계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은 신세계로서는 뼈아픈 사례다. 인천의 핵심상권을 통째로 롯데에게 뺏긴 신세계는 설욕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따라서 편의점업계 후발주자인 이마트24(신세계)가 미니스톱 인수전에 참여한 점은 이온그룹을 고무시켰을 수 있다. 하지만 신세계는 이온의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금액을 써내 탈락했다.
결국 제대로 된 경쟁구도가 형성되지 못해 몸값이 기대만큼 오르지 못하면서 매각이 백지화 됐다는 분석이다.
日시장 경쟁구도 롯데에 ‘불똥’
이온그룹이 롯데의 세븐일레븐을 내심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도 매각 취소의 배경으로 꼽힌다.
세븐일레븐은 미국 제빙업체 사우스랜드가 1946년 탄생시킨 브랜드다. 이후 일본 유통시장의 거목인 ‘세븐 앤 아이 홀딩스’가 인수해 일본 전역에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세웠다. 우리나라의 세븐일레븐은 1989년 롯데가 일본에서 브랜드를 들여와 시작됐다.
이온그룹과 세븐 앤 아이 홀딩스는 중국·일본·동남아 등에서 경쟁적으로 편의점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니스톱이 롯데에게 넘어가면 세븐일레븐과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고, 이는 이온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적에게 무기를 넘겨주는 셈이 될 수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온이 미니스톱을 롯데에 넘긴다는 것은 삼성전자가 LG전자에게 TV브랜드와 판권을 넘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올해부터 시작된 근접 출점 제한제도도 매각 백지화의 일부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종사자들의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일정한 거리 안에는 신규 편의점이 문을 열 수 없도록 했다.
따라서 편의점 수가 과거처럼 급증하기 힘든 환경이 됐고, 이는 상대적으로 기존 편의점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온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나중에 파는 게 낫다는 얘기다.
신세계 ‘안도’, CU·GS25 ‘표정관리’
한편 이번 매각 무산으로 관련 기업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한국미니스톱 지분 20%를 보유한 대상그룹은 내심 이번 매각이 성사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상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니스톱의 최대주주(75%)였는데, 이후 보유지분 55%를 이온그룹에 매각했다. 이후에도 잔여지분 20%를 추가로 매입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대상은 남은 지분을 팔아서 생긴 자금으로 주력인 식품사업을 강화하려했지만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유통업계에서는 향후 대상이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기보다는 이온과의 공조를 통해 최대한 미니스톱의 몸값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세계는 한숨 돌린 분위기다. 롯데가 신세계의 인천터미널점과 주변 부지를 인수해 인천 상권 장악에 나서는 동안 신세계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미니스톱 마저 롯데에게 넘어가게 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뻔했다. 다행히 다시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1·2위를 다투는 CU, GS25도 안도하는 분위기다. 자칫 시장 판도가 바뀔 경우 ‘O2O’ 전략의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할 뻔 했지만, 한동안은 차질 없이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