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저널 = 선명규 기자) 기업들이 골목상권으로 몰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시장을 잠식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상공인과의 상생, 즉 골목상권 살리기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동통신사들이 활발하다. 소규모 식당 중심의 ‘맛집 지도’를 발간한 KT, 작은 상점들과 할인혜택 제휴를 맺은 LG유플러스가 눈에 띈다. 동네 사장님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서울 지도를 펼치고 벤 다이어그램을 완성해보자. 행정구역상 서대문구, 중구, 마포구가 잇닿아 있는 지점을 형광펜으로 칠한다. 아현동 일대가 물들 것이다. 이 동네만을 조명한 지도가 최근 발간됐다. 길만을 알려주려는 목적은 아니다. 특이한 안내가 돼있다. 청록색 표시는 한식, 파란색은 일식, 주황색은 중식, 빨간색은 양식. 그리고 점점이 즐비한 식당 이름들. KT가 최근 제작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한 ‘아현주변 100대 맛집’ 지도는 주로 소상공인들의 식당을 소개하는 다양한 입맛의 길잡이다.
‘100선(選)’은 KT 직원들이 추렸다. 실제 검증의 결과물이다. 시작 계기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KT 아현지사 화재. 당시 서비스 장애로 불편을 겪은 인근 식당들을 위해 KT는 광화문사옥 구내식당 문을 한시적으로 닫았다. 피해 입은 주변 상권을 도우려는 조치였다. 그때부터 임직원 약 4800명은 점심과 저녁 식사를 화재 피해지역 근처서 해결했다. 약 두 달 간 ‘직접 먹어보니 맛있어서’ 추천하는 식당이 지도에 망라됐다.
찜 당한 식당들의 주종목은 국적 불문이다. 한식 65곳, 일식 14곳, 양식 11곳, 중식 10곳. 직장인 점심 메뉴로 인기 높다는 부대찌개, 돈가스부터 3500원짜리 ‘가성비 갑’ 메뉴까지 다양하다.
최호창 KT 그룹커뮤니케이션단장(상무)은 “식당 방문은 임직원들이 솔선수범해 아현 인근 지역 소상공인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시작됐지만, 몇 번에 그치지 않고 점점 단골손님이 된 직원들이 많아졌다”며 “이번에 만든 ‘맛집 지도’로 지역 소상공인에게 힘을 보태는 한편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가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제휴 맺는 것은 흔하지만, 자영업자와 협력하는 경우는 드물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0월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이른바 ‘서촌’에서 새로운 실험을 했다. 여기에 있는 소상공인의 음식점과 상점에 방문하는 모바일 고객들에게 최대 50% 할인, 1+1 행사, 경품 이벤트 등을 진행한 것. 통신사가 골목상권에서 제휴혜택을 선보인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효과도 컸다. ‘U+로드’라는 이름으로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지역 상점들의 평균 매출은 기존 대비 126% 증가하고, 고객 수는 137% 늘었다. 일부 점포는 음식 재료가 조기 소진돼 영업을 일찍 마쳐야 했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LG유플러스는 한 달 뒤, 참가 상점을 확대해 두 번째 ‘U+로드’를 진행했다.
고진태 LG유플러스 로열마케팅 팀장은 “‘U+로드’를 진행하며 통신사와 소상공인의 상생 제휴 가능성을 봤다”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해 골목상권 활성화에 지속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에서 촉발된 소상공인과의 상생 분위기는 정부 부처의 대책 마련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청와대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150여명을 초청해 두 시간 동안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현직 대통령이 자영업자·소상공인만을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기 때문. 문 대통령이 민생 현장을 듣겠다는 취지로 연 만큼 참석자들의 민원과 정부 관계자들의 답변이 쉴 새 없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도 자영업 대책 마련 ‘속도’
청와대는 간담회에서 제안된 의견을 작년 말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영업 종합대책’에 반영키로 하고 닷새 뒤인 19일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날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각 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자영업 대책의 개별 정책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해 효과가 현장에서 조속히 나타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자영업을 독자 정책 영역으로 담은 중장기 정책 로드맵은 자영업 현장의 목소리로 계속 살을 붙여가겠다. 현장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정책에 반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